60년이 흘렀습니다.

1964 / 2024

이 작은 책자는 formal 한 성격은 못됩니다. 1960년에 창설된 HCCC 1기가 60년이 흐른 2024년 지금까지 그맥을 이어 모임을 가지고 있기에 그 흔적들을 모은 것입니다.

물론 1기생들도 모두 이제는 70대후반의 늙은이들이 되었지요. 그러나 저희들의 스승이었던 강용원 선생님과의 소중한 추억들을 조금씩 모으고 1기들의 글 몇 개를 올려서 사진과 함께 만든 정말 간단한 Personal Booklet입니다.

그리고 화려한 Digital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옛 아나로그방식으로 만든 것입니다.

비록 초라하지만 저희 1기들이 그간 맺어온 끈끈한 정과 강용원 선생님과의 만남을 다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작은 책자를 만든 것만으로도 행복한 마음입니다.

한라산의 구름

남상우

제주에 내려온지 어느새 5년째. 은퇴 후 제주에 사는 것을 로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지만, 나의 제주살이는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해방 후 제주 4.3항쟁 와중에 집사람 친척 중 한두 분이 희생되자, 장인을 포함한 3형제가 고향을 떠나 일본에 정착하였다. 장인은 딸들이 일본 남자와 엮이는 것을 절대 볼 수 없다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모두 한국으로 떠밀어 보냈다. 맏딸인 집사람을 시작으로 세 딸 모두 서울에서 1년 어학연수 후에 해외동포 입학 특례로 대학생활을 시작하였다. 집사람 한국어 실력은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겨운 수준이었다. 그런데 내 가까운 친구가 간간이 집사람의 부족한 한국어를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후임으로 나를 소개한 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나의 제주와의 첫 대면은 신혼여행이었다. 신혼여행이라기보다 집사람 친척들과 이웃 에게 인사하는 것이었다. 조촐하지만 족히 이틀에 걸친 통과의례가 피곤했던 탓인지, 제주의 풍광 같은 것은 그다지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은퇴를 전후하여 이러저 러하게 그려본 노후생활의 그림 속에도 제주살이는 들어있지 않았다. 집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몇 년 전 장인께서 제주에 돌아와 뼈를 묻겠다고 선언하시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70년 넘게 일본에 사셨지만 귀소본능은 어쩔 수 없으신가보다. 그간 두 처제가 일본에서 부모님 이웃에 살면서 보살폈으니 이젠 우리가 모시는 것이 마땅하다. 친아버지를 나이 여섯에, 어머니를 고3 때 여읜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장인이 50여년 전에 제주에 밭을 사서 조성한 감귤밭이 있었다. 그간 멀고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들이 손을 바꾸어가며 경작해 왔으나 근년에는 관리해줄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농산물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품종개량이 안된 감귤은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 수확도 예전 같지 않은데다 농사일 품삯은 해마다 올라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수년 전 감귤밭을 가로질러 애월과 조천을 잇는 마지막 구간 도로 공사가 시작되면서 경작면적이 거의 반토막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 졸지에 집사람과 내가 과수원을 떠맡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장인. 장모는 낙담하셨으나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격리의무가 풀리는대로 오겠노라고 몇 번이나 확언하셨다. 헌데 격리 상황이 해를 거듭해 이어지고 장인이 90세를 훌쩍 넘기면서 거동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수 십년간 거의 매일 아침 해오시던 동네 골목 청소를 중단하셨단다. 드디어 코로나가 진 정되었으나 도꼬-제주 직항이 열리기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신다. 최근 한 두 개 저가항 공사가 금년 하반기에 직항을 재개할지 모른다는 소식이 들린다. 집사람은 항공사의 휠체어 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될지, 부모님의 제주 정착이 과연 순조로울지 걱정이 커 지고 있다.

우리가 이곳에 이주한 후 한 해에 고작 두어번 찾아오던 서울 사는 큰 딸 니가 근래에 부쩍 제주를 자주 내려온다. 그런데 3의 관심은 부모보다 우리가 키우는 강아지 똘똘 이인 것 같다. 3년 전 누군가에 의해 과수원 돌담 밑에 버려졌던 놈이다. 부슬부슬 봄 비가 내리던 3월초 택배상자 속에서 울고 있던 생후 한두달 되었을까 하던 놈이다. 정 신없이 나대지만 제법 머리가 있는 것 같아 똘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두 살 이 되면서 제법 준수하고 점잖아졌다. 이곳 지인들에 의하면 제주에 흔히 보이는 진돗 개 믹스견일 거란다.

똘똘이는 요즘 J가 만드는 동영상 모델 일을 제법 잘 해내고 있다. 동영상 제작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는 J가 과제물로 제출하기 위한 것이다. 수시로 휴대폰을 셀카봉에 고 정하고 감귤밭 잡초 위 혹은 농가주택 데크에 앉아있거나 잠자고 있는 똘똘이를 30분 이고 한 시간이고 계속 촬영한다. 이런 유튜브를 누가 볼까 싶지만 많은 이들에게 적 잖은 힐링이 된다는 것이다. 힘겨운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이나 도시생활에 찌든 어른 들에게도.

J가 유튜브 채널을 열게 되면 우리 감귤밭을 고정 배경으로 하겠단다. 그러니 감귤밭 에 적당한 이름을 하나 지어달라고 한다. 그런데 일찍이 이 감귤밭은 이름이 있었다, 나운(祭雲, 한라산 구름)농원이라고. 네이버 지도에서도 검색되어 나온다. 나운은 장인을 대신하여 과수원을 관리하던 집사람 할아버지의 필명이다. 할아버지는 일평생 한량으로 사시면서 서예와 한시에 능하셨던 것 같다. 國展에서 입상하시기도 했다고 한다. 詩를 읽을 줄 아는 자식이 없어서 어떡할까 했는데 -. 하시면서 두어 개 한시 액자를 집사람과의 결혼 선물로 주시기도 했다.

농원이라고 하기엔 남세스런 규모지만 이는 나운농원 이름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아마도 詩的이고 목가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리라. 산 정상을 희롱하며 유유히 노니는 흰구름이나 산 허리며 골짜기를 흐르는 몽환적인 안개구름 같은 – 하지 만 한라산은 이렇게 평화롭고 여유로운 모습을 그리 쉽사리 보여주지 않는다. 한라산 의 구름은 세차게 비를 뿌리며 어둡고 험하고 거센 얼굴로 다가오기 일쑤다.

오랜 옛날 여러번의 화산분출로 형성된 한라산은 제주도의 전부라고 할 정도다. 이곳 척박한 땅에 생계를 위해 돌과 바람을 숙명처럼 안고 씨름하며 가흑한 부역에도 시달리던 토박이들의 고단한 삶이 이어져 왔다. 바다에서는 수많은 뱃사람들이 거친 풍랑에 휩쓸려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외침도 있었다. 몽고의 침입에 마지막까지 버티다 산화한 삼별초 항쟁에 뒤이은 제주 지배 100년. 아직도 산재해 있는 일제 치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주요 군사시설 잔재들. 임금님의 노여움을 사 땅끝으로 내쫓긴 많은 유배자들의 인고의 한숨. 기적같이 다가온 건국을 전후한 부질없는 편가름으로 안타깝고 허망하게 쓸어져 간 숱한 4.3항쟁의 주검들. 靈山이라하여 해마다 산정에서 국태민안을 비는 山祭를 지냈다는 한라산의 구름은 이것들 모두를 똑똑히 목도하였으리라.

집사람 할아버지가 바라본 한라산 구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떤 생각으로 본인의 필명을 나운이라 지으셨을까? 한라산 정상에 걸친 구름처럼 세상을 넓은 시야로 내려 다 보며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는 예지를 가지셨을까? 아들들을 모두 일본으로 보내고, 큰아들은 조총련에 맞서는 民團의 간부로 오래 활동하였다. 그런데 집사람 할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종종 외롭고 한스러웠을지 모르는 내 아버지의 상상 속 마지막 모습이 오버랩되곤 한다.

아버지는 충청도 소도시의 면사무소 말단직원이셨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인천 앞 먼바다 이작도라는 섬 초등학교에 선생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해 가셨다. 마땅찮아 하시는 어머니를 딱 1년만 살다 오자고 어렵게 설득하셨단다. 월급이란 학부모들이 수확하여 조금씩 가져다 주는 보리, 옥수수, 감자, 고구마 등이 전부였다. 섬 아이들을 10년 넘게 성심껏 가르치던 어느 여름날 북한 군함이 선착장에 정박하고 군인들이 학교 건물을 막사로 쓴다며 점유하였다. 6.25가 발발한 것이다. 그런데 번갈은 후퇴와 수복의 와중에 누군가 밀고를 한 모양이다. 인민군을 도왔다는 혐의로 육지에 호송되어 얼마간의 옥고를 치르셨다. 휴전을 몇 달 앞두고 풀려나신 후에는 가족들을 섬에 남겨둔 채 홀로 강원도 산골의 한 초등학교로 부임해 가셨다. 그러나 옥고 때문인지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어 객지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으신 것이다.

2005년 우리 정부는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서로를 할퀸 상처를 어루만지고 화해의 포옹으로 밝은 미래를 열어가자는 바램에서, 그래서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기여하고자. 하지만 또다시 불어닥친 신냉전 기류와 격화된 한반도의 이념 대립으로 그렇게 갈망해온 평화는 더 요원해진 듯 싶다. 이해가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길목에 제주도는 여전히 아픔과 갈등의 섬으로 떠있다.

집사람과 나는 최근에 J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주문하였다. 한라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나운농원 완만한 언덕에 새로 지을 집과 기존 돌집 내부 리노베이션을 설계하는 것이다. 집 지으며 10년을 늙는다는데 이 나이에 집을 짓다니! 애초에 제주살이가 길어야 10년 아니겠냐던 집사람이 돌변하여 새 집 짓는데 흥분되어 있는 것이 사뭇 놀랍다. 언젠가는 이가 나운농장의 주인이 되어있을까? 그 즈음 J가 바라보는 한라산 정상의 구름은 오늘보다 더 해맑고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 좋겠다.

한류(韓流)

한류 열풍이 아시아 중화권과 동남아를 넘 어 중동 아랍문화권까지 강타하고 있 다고한다.

지난 2월 서울 공관장 회의에서도 한류가 큰 화두가 되었는데 중동에 근무하는 C대사 얘기에 따르면 우리 TV드라마가 저녁 늦은시간에 방영되는 바람에 많은 주재국 사람들이 늦잠을 자게 되어 직장에도 지각사태가 많이 빚어지고 있다는 애교어린 불평을 듣고 있다고 한다. 우리 문화 정서가 단순히 아시아인들에게 만 어필하는 것을 넘어 다른 문화권에도 먹힐 수 있다는 증거다.

좁은 의미의 한류 열풍은 주로 우리나라 영화 TV드라마 대중음악 공연 등 대중 예술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하겠다.

아시아인, 나아가서는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한류에 공감하는 것은 그들이 우 리 문화에 대한 우월성과 상품가치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문화 그리고 우리보다 한 발 앞서 경제 발 전을 이룩한 일본문화보다 왜 우리 문화에 특별히 공감하는 것일까. 또 여자 양궁, 쇼트트랙(빙상), LPGA프로골프 무대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계속 세계를 제패하는 현상과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고속 인터넷 보급 세계 1 위 등 IT산업 선도국이 된 사실은 한류 열풍과는 전혀 무관한 일일까.

필자는 우리 젊은이들이 특정 분야에서 세계적인 두각을 나타내는 현상도 넓은 의미에서 한류 범주에 포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한류 열풍이 과연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회의적으 로 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필자는 다른 생각이다. 한류가 지금 이 시기에 주목을 끌게 된 데는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동북아 문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중국문화는 5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사회 주의체제라는 족쇄 때문에 과거 찬란했던 문화적 위상을 되찾는 데는 만만치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 분명하며, 일본문화는 일본열도 밖에서는 공감대가 별로 높지 않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빚어낸 조상들 손자락에서 비롯된 우리 문 화의 우월성과 경쟁력은 당분간 많은 세계인들에게 공감을 받으면서 한류 열풍 외연을 넓혀 나갈 것으로 믿는다.

[임성준주캐나다대사]

임성준 주캐나다 대사

찔레꽃 향기

꽃에 따라 향기가 나듯이 사람따라 나는 냄새같은 인품의 향기기가 다르다.

냄새중에 가장 악취는 사람 썩는 냄새라고 한다. 그보다 더 고약한 악취는 인품이 훼손되는 썩는 냄새 일것이다.

사람마다 나는 냄새가 있다. 어떤 향기일까

찔레꽃향기는 순수하다. 어딘가 외로운듯 어딘가 수줍은듯 슬픈듯이 사람의 눈을 피하고 싶은 곳에 숨어 피는꽃이다. 고운 여인의 소복입은 순정같다.

찔레꽃 향기

초여름 숲속에 피는 찔레꽃을 본다. 화려한 봄꽃들이 한바탕 제 자랑을 하고 간 뒤 ,숲속 어디 선가 풍겨오는 향기가 있다. 순수한 향기, 순박하면서도 어떤 품위를 높여 주는 향기다. 인간의 언어로는 그 향기를 표현할 수가 없다. 아련한 향수를 온 산천에 뿌려 놓는다.

나는 찔레꽃 향기가 휘날리는 여름밤이 행복하다. 코를 가까이 대어야 맡을 수 있는 꽃향기도 있지만 찔레 꽃은 아무도 모르게 온 숲속을 헤치며 그 향기를 뿌리고 다닌다.

화려한 장미과의 족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도 숨겨둔채 찔레는 순박하게 가냘픈 작은 꽃으로 소복의 흰색으로 수줍게도 핀다. 찔레를 보면 나는 어쩐지 순정(純情)이라는 옛이야기 같은 향수에 젖는다.

찔레꽃을 미국에서 보면서, 찔레꽃은 우리 한국에서 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해본다. 찔레는 죽은 가지에는 월계관을 씌워주고, 가냘픈 나무는 신부의 레이스를 입혀 격려해 주는 꽃이다. 무리를 지어 팀웍으로 얽혀 살고, 꺾일수록 잘릴수록 더욱 뻗는 찔레의 끈질김이 있다. 도둑을 막아주는 담장을 만들어 악을 저지할 때 가시를 쓸 줄 아는 꽃이다.

눈 속에 피어나는 매화, 서리 맞고도 피는 국화, 진흙 속에 피는 연꽃, 그리고 사시사철 푸르고 곧기만 한 송죽(松竹)은 뜻이나 절개가 그 화품이요, 치자, 동백, 사계화 등은 깐깐한 기골이 그 화품이요, 모란과 작약은 부귀(當貴)가 화품이며, 해바라기, 두충(杜;’中)은 충(忠)과 열(烈)이 화 품이고, 박꽃, 맨드라미, 봉선화는 절개와 성실함이, 진달래 개나라는 분명한 거취가 그 화품이다.

동물을 인간성의 야욕성에 비교하고, 꽃은 인간성의 품위를 상징한다. 인간의 성격도 품위도 꽃 향기 만큼 다양하다. 늑대나 여우갈은 사람성품이 있는가 하면, 옥잠화 같고 달맞이꽃 같은 향기를 발하는 인품이 있다.

꽃에 따라 향기가 나듯이 사람따라 나는 냄새같은 인품의 향기기가 다르다.

냄새중에 가장 악취는 사람 썩는 냄새라고 한다. 그보다 더 고약한 악취는 인품이 훼손되는 썩는 냄새 일것이다.

사람마다 나는 냄새가 있다. 향기일까 악취일까 찔레꽃향기는 순수하다. 어딘가 외로운듯 어딘가 수줍은듯 슬픈듯이 사람의 눈을 피하고 싶은 곳에 숨어 피는 꽃이다

호수에 물방울 하나 일렁일 때 내 마음도 같이 출렁이고, 풀잎하나 바람에 흔들릴 때, 들꽃 하 나 반겨줄 때 내 마음도 덩달아 미소짓는 자연과의 대화 없는 인간성은 잔혹할 수밖에 없는 문명이 만든 괴물에 불과하다. 밤하늘 별들과 속삭일 줄 모르는 인성벙어리 마비, 철근 콘크리트에 철판을 깐 심장으로 어찌 인간들끼리인들 훈훈한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것인가.

200리길 찔레꽃 피어 있는 먼 이국땅, 미국의 허드슨 강변을 달리며 오늘 따라 차창이 몇 번이 나 짙게 흐려지고 있다.

글. 강용원

경산 과수원

조경호

내가 태어난 곳은 대구이다. 말하자면 내 고향은 대구라는 말이다. 그런데 대구보다 더 마음에 깊이 새겨진, 그야말로 마음의 고향이 있다. 그곳은 경북경산의 와촌이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성장하여 대학 시절까지 거의 해마다 여름방학이면 가곤 했다. 사촌오빠의 와촌 과수원이다.

1950년대 중반이엇으리라. 대구 초등학교에 다니던 꼬맹이 초등 1년생 무렵부터 무더운 여름이 오면 친척 조무래기들은 의례, 와촌 과수원으로 몰려가곤 했다. 지금은 대구시로 전입되었지만, 그 무렵에는 기차로는 30분, 버스로는 거의 1시간을 가야 하던 먼 곳이었다.

대구시 외곽에 있던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자주 있지도 않은 경산행 버스를 시간 맞추어 타려면 한참 동안 기다려야 했다. 좁은 버스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만원이었기에 꼬맹이들은 앉기는커녕, 손잡이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이리저리 밀리면서 가야 했다. 기차로 가면 하양역에서 내려서 다시 와촌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데, 자주 다니지도 않는 버스 시간을 맞춘다는 것은 어려운 시기였다.

버스가 한 시간정도 달려서 내려준 와촌면이다. 온 힘을 다해 짐 보따리를 끌어내며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확 끼치는 논의 비릿한 내음이다. 사방은 온통 초록빛 논이다. 이어서 들려오는 것이 개구리들의 왁자지껄한 합창 소리인데, 엄청 시끄럽다. 그래도 팔을 벌려 숨을 크게 쉬면 정말 기분이 좋다. 와촌이라는 작은 면은 어찌 보면 씨족 마을이다. 거의 20, 30호가 못 되는 마을의 사람들은 ㅁ두가 인척으로 얽혀있다. 좁은 마을 황톳길을 들어선다. 마을 집들이 풍기는 냄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황토 흙냄새에 볏짚냄새를 더하고, 소죽 끓이는 냄새를 다시 더하고, 마지막으로 독한 곰방대 담배 냄새를 더했다고 하면, 비슷한 냄새가 되리라. 악기로 치면 높은 바이올린이 아닌 낮은 첼로의 느낌을 주는 쏴 하고 몸을 뚫고 지나가는 묘한 시골의 냄새다. 그런데 이런 지독한 냄새가 싫지 않다. 어른들은 이 냄새를 구수한 냄새라고 했다.

뜨거운 땡볕 아래로 다져진 황톳길을 따라.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황톳 길은 가끔 금싸라기가 박혀있기라도 하듯, 햇빛에 반짝였다. 마을의 낮은 흙벽 담은 진흙에 볏짚을 섞어서 만든 것인데, 키가 낮아서 나 같은 꼬맹이도 까치 발을 들면 집안 툇마루나 외양간이 보일 정도였다. 작은 마을의 골목길을 나서면 저 멀리 가므스레히 사촌오빠의 과수원이 보인다. 온 사방이 진녹색의 논밭 인데 과수원의 색만은 조금은 은회색을 띤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조심해야 한다. 당시에는 농지 구역 정리가 되지 않았던 터라, 논밭의 경계는 마치 미로의 거미줄같이 엉켜져 있었다. 좁은 논둑길을 바로 찾아 들어서야 한 다. 자칫 잘못된 다른 논둑길을 들어서면 과수원이 바로 앞에 보이는데도 엉뚱 한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특히 보름달이 뜬 밤에는 맞는 논둑길을 찾기는 정 말 어렵다. 모든 논에 보름달이 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고수와 함께 가야 한다.

구불구불한 논둑길을 지나 과수원 문 앞에 다다르면 탱자나무 울타리의 냄 새가 향긋하다. 사촌오빠의 집은 과수원 가운데에 잘 지어진 그야말로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다. 안채, 사랑채. 2개의 광, 돼지우리, 외양간, 행랑채 그리고 디딜방아가 있다. 특히 사랑채는 방 끝에 누각처럼 마루를 깔고 주위는 예쁜 나무로 난간이 장식이 되어있다. 보통 사극영화에서 대갓집에 손님을 맞이할 때 술상을 내가서 손님과 대화를 나누는 아늑한 공간이다. 누각의 지붕은 버선 발같이 기와의 모퉁이가 올라가 있어서 정취가 더 하다.

광 하나는 작은 규모인데 주로 농사지은 곡물이나 콩, 팥, 찹쌀, 곶감 등을 저장하는 곳으로, 항상 맹꽁이자물쇠가 걸려있었다. 다른 광은 상당히 규모가 크다. 이곳은 수확한 사과를 궤짝에 넣어 상품으로 내가거나, 지하에는 사과를 저장하는 곳이다. 많은 나무 궤짝과 볏단이 쌓여 있었고, 지하로 내려가는 입 구를 들여다보면 사과 향기에 취할 정도로, 짙은 사과 냄새가 코를 찔렀다. 행 랑채는 일꾼들이 머무는 곳이다. 옛날에는 머슴들이 머물렀으리라. 문짝은 너 무 낮고 방의 벽은 온통 담배 진으로 검게 찌들어,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방 에는 몇 개의 목침이 뒹굴고 있었다. 디딜방아는 위에 걸린 밧줄을 잡고 널뛰 듯 발로 방아나무를 디디면서. 절구에 담긴 곡식을 찧는 식이었다. 꼬맹이들은 키가 작아서 밧줄을 잡을 수가 없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디딜방아를 지나 집 뒷문으로 나가면, 앞에 나타나는 것은 바로 ‘새보’이다. 새보는 사촌오빠께서 과수원에 댈 물을 마련하려고, 인공적으로 땅을 파서 만 든 보다. 그런데 이 보가 너무 명물이다. 길이는 약 100m가량 되고, 폭은 넓 은 곳은 10m 좁은 곳은 5-6m 정도이니, 얼마나 멋진 수영장인가. 폭이 넓은 끄트머리 쪽은 깊이가 2m 정도로 깊지만, 다른 곳의 물 깊이는 1-1.5m 정도 이다. 물이 땅에서 솟아나다 보니, 여름에는 물이 차갑고, 겨울에는 따뜻해서 겨울 아침에 새보에 나가면, 물 위로 나즈막이 물안개가 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욱이 새보 곁에는 둑이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막아주고, 둑을 넘으면 상 당히 넓은 모래사장(강변)이 있다. 낙동강 줄기가 조금씩 흘러서 발목까지 물 이 흐르기도 한다. 모래사장을 건너면 야트막한 산이 자리 잡고 있어서, 강변 에서 놀다가 산에 오르면, 멀리 낙동강 줄기가 은빛처럼 흐르고 있었다.

새보는 조무래기들의 너무 좋은 멱 감는 수영장이 되고, 해 질 무렵이면 동 네 아낙들이 종일 일하고 땀에 전 몸을 씻어내는 곳이 되기도 한다. 새보의 제 일 끝부분에는 갈대가 자라서 여인네들이 숨어서 몸을 씻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새보에서 멱을 감고 둑을 넘어 백사장에서 뒹굴다가 산으로 올랐다. 산딸기 를 따 먹은 입술에 붉은 칠을 한 채로, 조무래기들은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내 려온다. 부엌에서 일하는 언니가 내가는 참에는 간 고등어구이와 뚝배기 위로 솟아오른 계란찜도 있었다. ‘와, 점심 맛있겠다.’ 잔뜩 기대로 부풀어서 고모가 밥 먹으라는 소리가 나기만을 기다렸다.

경산과수원 사촌오빠 집

‘’밥 먹어라.” 우리를 부르는 소리와 함께, 주르르 안방 대청마루로 달려갔다. ‘오잉! 이게 뭐람!’ 우리의 점심 밥상의 모습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커다란 놋 양푼에 가득 담긴 보리밥, 그 위에 꽂힌 숟가락 몇 개, 그리고 열무김치도 없고, 된장찌개도 없다. 수박껍질 안쪽 흰 부분만 긁어서 대충 고춧가루만 뿌 려 만든 수박 나물이 전부였다. 젓가락도 짝이 맞을 리가 없다. 처음에는 못 먹을 것 같던 한심한 점심상도 시간이 지나자, 달려들지 않으면 금세 보리밥이 동이 나기에 놋 양푼에 빠른 속도로 숟가락을 들이밀 정도로 익숙해졌다. 밤이 되면 모기향을 피우고 감자, 옥수수 그리고 수박은 제대로 먹을 수 있었다.

시골의 여름밤 하늘은 그야말로 별이 쏟아질 듯, 찬란하다. 그믐날이 다가오 면 달이 보이지 않아서 정말로 밤은 어두웠다. 장난기 많은 작은 오빠는 저녁 을 먹은 후 조무래기들을 데리고 강변으로 나갔다. 달이 없는 어두운 밤, 강변 에는 벌레 소리와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뿐, 정말 고요했다. 이 분위기에서 시 작되는 오빠의 귀신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던 조무래기들은 “으악 !”

하는 오빠의 소리에 너무 놀라서 오줌을 잘금잘금 싸기도 하고, 울음을 터뜨리 는 놈도 있었다. 오빠가 즉석에서 지어낸 귀신 얘기지만, 조무래기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모두 오빠의 옷 한 자락씩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마치 소 대장을 따라 들어오는 패잔병 모습이었다.

밤이 깊어 자야 할 시간이다. 사랑채에 고모가 던져준 것은 두 어장의 삼베 이불뿐이다. 베개가 제대로 있을 리 만무하다. 차가운 방바닥에서 서로 이불 한 자락이라도 발을 넣으려고 잡아당기고 있다. 그야말로 흥부네 가족의 모습 이다. 그래도 낮 동안 멋대로 뛰어다닌 터라, 모두 잠에 곯아떨어진다. 한밤중 문득 눈이 떠지면, 한지 여닫이창에 비치던 푸른 달빛이 어찌나 신비롭던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거꾸로 자는 놈, 남의 얼굴에 다리를 올리고 자는 놈, 정 말 가관이었다.

한낮의 재미 중 하나는 메뚜기를 잡는 일이다. 둑길을 따라 내려가면 풀숲에 팔딱거리는 메뚜기가 있다. 이놈들은 풀 색깔과 거의 같아서 바로 앞에서도 못 알아보는 경우도 많았다. 기다란 잎줄기에 각자 잡은 메뚜기를 꾀어들고 집으 로 달려오면 일하는 언니가 가마솥에 들기름을 두르고, 소금을 쳐가며 메뚜기 를 구워준다. 사내놈들은 그래도 몇 마리 먹지만. 나 같은 어린 막내는 고작 한, 두 마리 얻어먹는 것이 고작이다. 고소하던 메뚜기의 맛!

한여름에 밤중에 가끔 센 비바람이 몰아칠 때가 있다. 이튿날 아침이 되면 우리는 모두 망태기 하나씩을 메고, 바람에 떨어진 사과를 주우러 나간다. 양 이 엄청나다. 이런 날은 해 질 무렵이 되면 동네 아낙들이 소쿠리를 기지고 와 서 떨어져 흠이 생긴 사과를 받으러 온다. 이런 사과가 더 맛이 있어서다.

개학날이 돌아오면 우리는 모두 사랑채 누각 마루에 배를 깔고 누워. 밀린 방학 숙제를 해야 했다. 모범답안지는 모두가 그대로 베껴 썼지만, 아무도 탓 하지 않았다. 이윽고 대구 집으로 돌아가는 날, 우리는 고모가 조금씩 싸준 곡 물 보따리를 안고, 둑길 10리를 걸어서 하양 기차역으로 향했다. 버스는 다니는 시간도 일정치 않아서 하양 역까지 가서 기차를 탔다. 당시의 기차는 그야 말로 칙칙폭폭 기차다. 기차 창밖에서는 대여섯 개의 사과를 그물망처럼 생긴 주머니에 담아서 팔고 있다.

“능금 사이소. 맛있는 능금 사이소. 찐 달걀도 있어예”

딱딱한 나무 의자와 더 두꺼워 보이는 나무 등받이에 흔들리며, 그리운 집으로 간다. 대구역에 내리면 모두 눈에 검정 안경테를 두르고 있었다. 목탄 연기가 눈가에 계속 묻은 것이다. 아무도 이를 보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눈에 검은 테 안경을 썼으니 말이다.

꿈에도 그리던 이 와촌 과수원은 사라지고 없다. 사촌오빠가 대구에서 사업을 할 생각으로, 이 아름답던 과수원을 팔아버리고 말았다. 세월이 많이 흘러 내가 50대 나이에 들어섰을 때 대구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어서 가보자 와촌으로.’ 택시를 타고 와촌을 얘기하자, 기사 분이 지금은 대구시의 외곽이란다. 어렵게 도착한 옛 과수원은 너무나 변해 있었다. 맑은 물이 항상 솟아나던 “새보”는 물이 말라버려서 이제는 연탄재를 버리는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사과 향으로 넘쳐나던 큰 사과 광은 젖소를 키우는 장소로 변해서 악취가 나고 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작은 규모의 과수원은 왜 그리 초라해 보이던지. 주민들은 “새보” 물이 마른 것은 주인이 바뀌어서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정부에서 낙동강 줄기 물길을 바꾸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차라리 가지 말 것을… 첫사랑은 늙어서 다시 만나지 말라는 말이 맞나보다.

나는 여전히 와촌 과수원이 그립다. 잠이 안 오거나, 무서운 치과병원 의자 에 앉았을 때, 나는 눈을 감고 와촌 과수원을 떠올린다. 가슴 가득 햇살이 들어와 안긴다. 그리운 내 마음의 고향이다.

짜증스런 벚꽃

(전)대구가족상담센터 소장 김영호
2016.04.09. 영남일보 게재

활짝 핀 벚꽃이 짜증스러울 수 있다니 그런 느낌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이라서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울증이 심한 나이든 부인을 뒷자리에 태우고 목적지로 가고 있었다. 마침 벚꽃이 만개해서 온통 꽃 세상을 이룬 벚꽃나무 밑을 나풀나풀 떨어지는 꽃잎을 피해 가듯이 조심스레 운전을 하면서 속으로는 “아! 참으로 아름답다!”고 연발로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조용한 차안의 정적을 깨고 뒷좌석의 부인이 “아휴! 벚꽃이 뭐 저렇게 짜증스럽게 피었어!” 하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벚꽃이 짜증스럽다니! 순간 귀를 의심했으나 바로 다음 순간 이 부인이 깊은 우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떠올라 다소 이해가 되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토록 화려하고 아름다운 만개한 벚꽃의 장관이 짜증스럽다니! 한편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남아 있었다.

나는 벚꽃이 아름다운데, 저 부인은 어떻게 짜증스럽게 느껴지지? 의문이 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본 것이 맞나 저 양반이 본 것이 맞나? 누구나 자기가 본 것을 진실로 생각하는데, 누가 맞을까? 두 사람 다 맞을 수가 있다. 그럼, 벚꽃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름다운가? 짜증스러운가? 혹시 벚꽃은 짜증스러운데 아름답게 잘못 느끼고 있는 걸까? 마침 비둘기 한 마리가 무심히 공중을 선회하고 있었다. 비둘기에게 벚꽃이 어떠냐고 물어 본다면 뭐라고 답을 할까? 비둘기는 무심하니까 그저 희고 뿌옇다가 바람 불면 펄렁펄렁 떨어질 뿐이라고 할 것 같다. 성철스님께 여쭈었으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하셨으니까 벚꽃은 벚꽃이라고 하시겠지. 맞다! 벚꽃은 벚꽃일 뿐인데 저마다 아름답네 심지어 짜증스럽네 하고 있구나. 생각은 흘러흘러 벚꽃은 벚꽃일 뿐이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하였다.

그런데, 벚꽃은 벚꽃인데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왔고 짜증스러움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냥 벚꽃일 뿐인 것을 나는 아름답게 보았고 이 부인은 짜증스럽게 보았다면 그 느낌의 발원지가 각자의 마음속이라는 점이 확실하다. 나는 내 마음속의 아름다움을 벚꽃에 뿜어 붙혀서 아름답게 보았고 이 부인은 자신 속의 짜증스러움을 벚꽃 에 뿜어 붙혀서 짜증스럽게 본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 자기 마음속을 바깥 세상에 내비추어 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 무학대사께서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인다고 하셨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을 보며 산다. 아름다움이 많은 사람은 아름다움을 자주 보고 짜증이 많은 사람은 짜증을 자주 보는 것이다. 벚꽃을 본다기보다는 벚꽃을 빌미로 자기 마음속을 본다고 하겠다.

벚꽃일 뿐인 벚꽃을 자기 나름대로 보는 방식은 미워하는 아이에게도 적용이 된다. 자식 중에 유독 한 아이가 밉다면 그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이다. 그런데 부모가 그 아이를 밉게 본다면 벚꽃을 짜증스럽게 보듯이 아이를 밉게 본다고 볼 수 있다. 그 아이가 정말로 미운 아이이라면 그 아이는 한 번도 안 미운 적이 없어야 한다.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미운 아이이여야 한다ㅏ. 엄마도, 형제들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학교 선생님들도 모두 미워해야 한다. 그러면 그 아이는 미운 이이가 맞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집에서 부모에게서 미운 털이 박혔겠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귀여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할 지경이고 친구들에게는 “짱!”이고 선생님께는 칭찬도 받는 아이라면 그 아이는 미운 아이가 아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만 미운 아이이다. 마치 벗꽃에 자기 짜증이 부착되듯이 자신의 미움을 아이에게 부착시키고 미워하는 것이다. 자기를 미워하는 모양새이다. 아이만 미운 것이 아니다. 가까이는 남편도 밉고 아내도 미울 수 있다. 이 모두가 자신의 미움을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최선의 좋은 마음을 내보내는 것이 맞다.

우중의 문안

조경호

우리 1기생들이 고2 때였다. 당시 우리를 지도해주시던 강용원 선생님께서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경기도 ‘입석’에서 요양하고 계셨다.

선생님의 안부도 궁금했고, 인사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몇 명이 입석으 로 가기로 했다. 그때가 아마도 한여름 방학 무렵이었을 것이다. 하필 그날 비 가 후드득 뿌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고교생들은 딱히 외출복이라는 것도 없었다. 모두 교복을 입고, 모 자를 쓰고 모였다. 5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남학생 3명과 여학생 2명이 었나?) 시외버스정류장이 근처였을 텐데, 동대문 쪽이었을 것이다.

‘입석’이란 곳은 물도 맑고 공기가 좋은 곳이었다. 우중에 뜻밖에도 제자 몇 명이 들이닥친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너무 반가워하시며, 두 팔 벌려 우리를 맞아주셨다. 아마도 생각지 못한 일이라, 많이 반가우셨던 것 같다.

선생님이 계신 곳은 시골의 자그마한 집이었는데, 마당에는 몇 마리의 닭과 병아리들이 땅을 쪼아대고 있었다. 아마도 당시에는 선생님의 모친께서 선생님 건강을 뒷바라지하고 계셨던 던 것으로 보였다.

재잘재잘. 왁자지껄 수다도 떨고 모친께서 준비해 주신 식사까지 대접받았 다. 말이 병문안이지, 우리에게는 어쩌면 여름철의 나들이였을지도 모른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는데, 비가 너무 세차게 퍼부었다. 선생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돌아가는 버스로 향했지만, 개울물이 너무 세차게 흐르고 불어나서 버 스가 건너가기가 힘들다는 결론이 나왔다. 선생님은 어찌해서든 제자들을 안전 하게 보내고 싶어서, 밧줄을 잡고 손전등을 들고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신 것이 기억에 생생하다. 밤이 늦어지니.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하셨나 보다. 선 생님은 우리 5명을 다시 집으로 데리고 가셔서 하룻밤을 묵게 하셨다. 다행히 다음날 비가 그쳤고. 선생님은 당신 병아리들이 무사히 버스에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시고 돌아가셨다.

내가 ‘입석’ 방문으로, 특히 기억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있다. 점심이었는지, 저녁이었는지, 우리들 식탁에 닭백숙이 올라왔던 일이다. 그것은 아마도 선생 님의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서 마당에서 키우시던 씨암탉을 잡으셨던 것이었으 리라. 이런 사실도 후에야 깨달았으니, 그 때의 우리는 철부지나 다름없었다.

강 선생님과 우리 1기들의 인연 중 잊히지 않는 추억 한 조각이다.

HCCC 1기를 만들며

— 60년이 지난 오늘 —


1964년 서울의 봄은 봄 답지 않았다. 해 넘어가는 석양 줄 끊어진 기타를 들고 끝없는G선 의 엘레지를 타는 우리들 모습이었다. 4.19 태풍이 휩쓸고 간 대학 컴퍼스는 쥐구멍 뚫린 듯 흉흉했다. 이때를 놓칠 세락 북한의 대남공작은 특히 학원가를 중심으로 치열했다. 이데올로기 흑백논리 시대였다.

대학 캠퍼스는 온통 헛간에 구멍 풇린 듯 남파 간첩이 포섭할 인재를 찾아 자신도 모르게 용 공집단에 명단이 올라있고 귀퉁이마다 술렁이는 혼란과 그리고 방황의 시간이었다.
무신론 실존주의 까뮤나 싸르트르가 지성을 과시하던 시절. 어디를 가도 ”이방인”의 망령이 그림자처럼 우리 의식을 따라 붙고 있었다.

그때 우리들은 어디에다 마음 둘 곳을 찾아 헤매 였다. 어두울수록 좋은 침침한 다방 아랫 구석 담배연기 자욱한 음악 감상실이 유일한 쉼터였다. 어두울수록 편안함을 택한 어두운 박 쥐시대를 살고 있었다. 4.19를 전후한 우리 세대의 피잔 한 젊음들의 모습이었다.

그때 미국유학에서 돌아오신 김준곤 목사님은 중구 저동에서 학생 신앙운동을 시작하셨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다 목사님을 만났고 내가 했던 일은 <지성의 귀로>라는 팜플렛 같은 프라이어를 만들어 드리는 평범한 알바생이었다. 학생간사로 목사님을 도와 보필하는 모든 일은 문설같은 설교초안을 만들어 주시면 한글 문법에 맞추어 정리하는 일을 주로 했다.

그러다가 그해 1964년 1월에 “CCC편지”를 정기 간행물로 발행하게 되었다. 그때 표준으로 가리방에 초를 묻힌 초종이를 위에 대고 철필로 글자를 긁어서 프린트를 하던 때였다. 나는 그 시절 부터 요새 말로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저동 회관에서 1주에 한번 정기 집회가 열리고 학생회가 만들어졌고 지금말로 집회 순서지 주보를 Crusade라는 타이틀, 그때 “정신병 초기증세” 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글을 써서 올렸다 –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독선 이요 건 방진 자랑 삼아 올리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를 할곳도 대상도 없기때문에 여기에 한마디 올려 보는 것이다. 양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당시 최상의 질로 해보라는 문장가이면서 유명 설교가인 김준곤목사님의 뜻에 따락 동아출판사 사가 처음으로 독일에서 들여온 하이델 베르그라는 최신 인쇄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목사님은 타고난 글 솜씨에, 시인 김현승과 친구이고 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다.

그당시 인쇄 형편으로는 최고 수준 고급인쇄로 “CCC편지” 를 발행했다. 그때 일반 교회 문 서중에 CCC간사였던 하용조목사가 온누리교회를 시작하고 <빛과 소금>이라는 초호화 잡지를 발행 한 것 말고는 내가 알기로는 최초의 기독교문학의 시도 같은 작은 시작이었다.

나는 그때 두가지 일을 했다. 한달에 2회씩 bi-weekly “CCC 편지”를 발행하는 일과 를 모집해서 지도하는 일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때 부터 Boy Scout를 했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애들을 Boy Scout조직으로 묶어 놓으면 서로 도와주고 친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 단복도 멋이 있어 좋았지만 삼지를 펴고 외우는 3선서 12규율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는 표어가 좋았다. 반조직이 7명있고 반조직 위애 도반이 있었다. 도반이 모이면 대를 이룬다. 나는 반장, 도반장을 거쳐 대장으로 1966년 태릉잼보리 대회 김종필 총재가 되어 대회장을 할 때까지 끝을 냈다.

내가 조직했던 HCCC는 내 머리 속에 있던 Boy Scout 조직이었다. 그래서 반별 모임 대별 모임인 전체 모임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다. 그때 내생각은 앞으로 멀리 보고 이단체가 살려면 이를 뒷받침해서 연결지을 엘리트 그룹이 뒷받침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삼국시대 통일신라를 이끌었던 “화랑도”같은 엘리트그룹으로 생각하고 그런 확신이 있었다.

순론으로 정리하신 목사님은 옛날 사랑방 같고 주막 같은 방의 세포조직 의 원본으로 CCC운동의 핵심 단위로 정리하셨다

나중에 이운동은 순운동이라는 미국 본부에서 CCC운동의 핵심이 된이라는 새로운 운동 국제조직으로 발전시켰다.

나는 Boy Scout조직 화랑도를 의식해서 만들었던 조직이었다. 초기에 이룩된 14000 조직 에 김준곤목사님도 좋아 하셨고 몇차례의 수련회도 적극 참여지도 하셨었다. 지금은 CCC한국 대표이자 국제CCC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박성민박사총재를 맡아 미주KCCC후신으로 활발하게 자라고 있다.

당시 지금도 그렇겠지만 소위 일류고교 6곳, 남자 경기 서울 경복 / 여 여자 경기 이화 숙명에서 학생들을 선발해서 조직이 되었다. 내가 충분한 지도는 못했을 지라도 HCCC 1기는 너무 훌륭한 성장을 이루었다. 한국의 정치. 경제. 과학. 외교. 복지. 제약분야에서 나라의 큰일을 담당하였고 자랑스러운 그룹인물이 된 것이다. 예를 들어도 좋겠지만 당사자들의 사회적 정치적으로 루가 될까 싶어 숨겨두겠다.
물론 지금 HCCC기도 70대 중반을 넘어 노인들이 되었다. 그러나 1964년에 만들어졌던 그룹이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모임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 1964년 문예지에 이어 60년 지난 2024판 기념호까지 발행한다고 한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보람을 여기에서도 찾는다.

나는 평생을 대학 캠퍼스에서 구릅운동을 해온 사람이다. 이런 구릅은 본적이 없다. 그것은 단순한 조직체로서가 아닌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정”이라 할까 끈끈한 접학력 그 위에 위에 있는 무엇이다. 교회적인 용어로는 간단하지만 그것만도 아닌것 같다.
그리고 60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들의 인품은 고상하다. 아주 깨끗하다.

나는 이제 달려 갈 길을 거의 다 온 것 같다. 내가 한일 중에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HCCC1기를 창설했다는 사건이다.
HCCC 1기들은 나의 꿈이요 비전이요 내인생의 보람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들 가슴에 내가 머물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강용원
2024년 봄

사랑병/정신병 초기 증세

60여년 전에 첫 칼럼을(?) 쓰면서 시건방진 제목을 “정신병 초기증세”라는 글을 쓰면서 프시케 혼이 아모레신(사랑)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뭘모르고 그냥 해본 말인데 별로 틀리지는 안했다고 생각도 합니다.

인격이라는 구성요소가 (지정의) 균형을 이루지 못할때 초기증세적 정신병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보았고 그런점에다 놓고 막연한 예수를 전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한번 교통사고로  공포증으로 잠을 잘수가 없어 유태평이라는 친구가 처방해 준 신경안정제 를 몇번 먹고 말아야 할것을 몇년을 계속해서 먹고 중독부작용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서  꼬박 5일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5일동안 입사경험이라 하던가 하는 중에도 신앙적인 경험은 없었고 당시 세계를 전화로 통제하는 AT&T 사장과 Bill Gates 와 Steve Jobs 와 함께 우주의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구의 운명을 함께 붙들고 있는 꿈속을 헤매다가 5일만에 깨어난 상스럽지 못한 꿈속을 헤매다 깨어난 적도있었도 있었지요. 

천국을 보았다느니 그런 경험은 없었지요. 무슨말을 하고 싶은것인가는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위의 모든 내생각과 체험같은 것을 떠나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것입니다.

또한가지 실제 체험은 최근에 경험되어진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그리고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 그말씀이 곧 예수자신이었다는 것도 말씀 자체가 곧 생명이 라는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생기(生氣)와 활력(活力)과 새로움의 원천(源泉)”

[강용원 편지]

“생기(生氣)와 활력(活力)과 새로움의 원천(源泉)”

-신록의 오월은 가감승제미적분(加減乘除微積分) 반복 인생의 원점 생기(原點生氣)다.-

사계의 5월은 새롭기만 하다. 일년 열두 달, 사계절이 돌고 있지만 오월은 항상 싱싱한 새로움으로 찾아온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개성 따라 좋아하는 계절이 있을지라도 오월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오월은 여왕의 나들이에 열두 달이 시녀처럼 따라오는 계절의 환희를 불러주는 생명과 생기와 새로움의 절정이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과 속에 권태를 씻어주는 새로움이 없다면 인생처럼 따분한 동물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반복되는 가감승제미적분(加減乘除微積分)의 일과에 지쳐 있고 쳇바퀴 도는 일상에 싫증이 나기 쉬운 환경에 있다.

그러나 오월의 아침은 권태와 싫증의 각질을 깨부수고 날마다 자고 나면 새 세상을 꽃으로 열어 보여주고 있다. 나이와 환경에 따라 사계 중 어느 계절이 좋아지고 싫어지는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오월을 빼버리면 계절이 없어지는 것과 같을 것 같다.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무거운 겨울옷을 벗고 가볍고 시원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쾌함이 있다. 누더기옷을 새옷으로 갈아 입은 산뜻함이 있다.

살아 있다는것은 생명감각이 활발하다는 것과 같은 말일수있다.

생명감각은 호기심(好奇心)을 불러온다. 호기심, 영어의 Curiosity is a desire to know about something. Oxford 사전은 말하고 있다. NASA가 2011년 화성에 관한 호기심을 풀기위해  화성 탐사 로봇을 보냈는데 그 로봇 이름을 “Curiosity” 로 명명 한적이 있다.

호기심과 생명감각은 같은 가로안에 있는 삶의 변수다.

유람에 있는 갓난 아이의 걸어논 작난감을 만지며 자라고, 어른이 되어 자동차나 집같은 것에 흥미와 호기심으로 가지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고 싶은 것은 건강한 생명 호기심이 살아 있기때문이다.

호기심과 흥미에의 감각은 삶의 권태(倦怠)와 지루함의 누적함수관계다.

바위섬 위에 콩크리트와 철근으로 땅바닥을 세멘트로 물샐틈(?)없이 봉창을 한 뉴욕 만핫탄에서 13년을 사는때가 있었다. 그것도 아파트 22층 지표마져 떨어진 공중에서 잘먹고 잘자고 살면서도

한주간을 겨우 참고 있다 주말에는 바베큐준비를 해서 교외 공원으로 나갔다 와야만 했다.

나가지못한 주간에는 코에서 풀냄새 흙냄새가 나고 꿈속에서 보리밭을 돌다 온적이 많았다.

자연과 생명, 흙과 생명감각은 갈증을 느끼게 하는 생명 요구다.

호기심과 흥미를 살려내어 생명 감각을 살려 내어야만 하겠다.

새것을 새것으로 느낄수 있는 생명감각의 재생이 필요한 시간이다.

새순으로 새로움을 상큼하게 안겨준 오월의 신록에 남산의 흐드러진 아카시아 꽃향기가 황사 덮인 잿빛 서울을 맴돌며 새로움을 휘날리고 있다. 그러나 참 새로움의 원천은 인간 마음에서 온다. 새 마음이야 새 날이 새 날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활 절기마다 미국의 방송은 두 개의 영화를 거의 해마다 반복 방영한다. 하나는 모차르트의 ‘아마데우스’이고 다른 하나는 ‘벤허’였다. 아마데우스 테마곡은 ‘진혼곡’이고, ‘벤허’의 테마곡은 ‘사랑의 흐름’이었다. 모차르트의 천재 재능에 살리에르의 시기가 증오로, 증오가 살인으로 변해, 평생을 자신의 장례를 위한 진혼곡을 들으며 미친 폐인으로 지옥 같은 정신 병동에서 죽어가는 살리에르의 지옥 권태의 죽음의 종말이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명화 ‘벤허’는 사랑의 실체이고, 생수의 원천인 청년 예수가 나타날 때마다 ‘사랑의 테마곡’이 향기처럼 흐른다. 벤허는 자기 어머니와 누이를 처형한 친구 ‘맛셀라’를 죽여 원수를 갚아야 하는 증오로 불타 있었다.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당시 천병(天病)으로 알려진 문둥병에 걸려 격리된 동굴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경기에 이기고 원수 멧살라는 죽었지만 그를 용서할 수 없는 벤허였다. 그때 같은 나이의 젊은 청년 예수가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를 흘리며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저들이 알지 못하옵니다”는 말이 벤허의 귀에 박혔다.

벤허는 알지 못하는 힘에 이끌려 평생의 원수 멧살라를 용서하겠다는 기도를 했다. 그때 그 순간 문둥이가 되어버린 어머니 그리고 누이동생의 몸이 깨끗해지면서 새 살이 났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제 나름대로의 의식 속에 시기, 분노, 증오, 원수가 있다. 이런 의식이 우리를 덮치고 있는 한 우리는 환희의 새로움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지쳐 있고 반복적 만성 권태병에 걸려 있다. 권태의 각질에 두껍게 들들이 말려 있다. 새로움을 깨닫지 못하는 삶의 문둥병에 걸려 있다. 예수 사랑이 생명이 될 때에 삶의 문둥병으로부터 치료될 것이다.

들길 방천에 나가 논두렁길을 걸으며 새로 나는 나물과 들꽃을 보며 마음속의 새로움의 원천과 실체를 찾아보면 좋겠다.

글.강용원

“미국 땅에 작은 텃밭을 일꾸며…”

-강용원 편지-

“붓” -양지은 노래

“미국 땅에 작은 텃밭을 일꾸며…”

오늘도 나는 텃밭에 잡초 하나를 뽑으며,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흙속에서 쉼과 기쁨을 찾고 싶은 이유를 뽑고 있다.-

초여름 동네 집집마다 사람들이 나와 정원을 꾸미고 있다. 갑자기 꽃동네가 된 듯 생기가 돌고, 옆집 이웃과 시새움이라도 하듯 집집마다 정원에 더 고운 꽃들을 심고 있다.

오래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영등포에 있는 누님 집을 가 보았다. 개인 주택이기는 했지만 30평 남짓 땅위에 3층으로 집이 올라갔다. 그 좁은 땅위에 집과 집 사이에 서로의 담을 높이 쌓고 시멘트로 도배하듯 어디를 보아도 흙을 볼 수 없었다. 담 위에 위태롭게 놓인 화분에다 들깨, 고추, 토마토를 심어 올려놓고, 옥상에는 박넝쿨까지 심어 논 것을 보고 울컥 젖어드는 눈시울을 훔쳤다. 지금은 개발되어 최신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지만…

숲 대신 들어선 아파트 빌딩 숲 베란다 마다 채소나 꽃을 가꾸고 있는 것을 그 뒤에 더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서울에 살고 편리한 아파트에 살아도 무엇인가 못다 푼 한을 풀기라도 하듯 흙 속에 자란 식물을 가꾸고 싶은 목마름이 사람마다 있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나라 서울만큼 아름다운 산과 물이 곁들인 도시도 없다. 어디를 보아도…

그렇지만 남산만이 겨우 숨통을 열어 놓고 어디를 보아도 콩크리트 아스팔트로 땅 구멍을 막아버렸다. 서울 가면 숨통이 막힌 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것 같다. 우리 한국의 땅은 너무도 비좁다. 콩나물 시루다.

만핫탄 빌딩 숲에서 자동차 웅얼거리는소리, 거대한 괴물의 신음소리 속에 13년을 살던 우리가 흙이 보이는 이 작은 동네로 옴겨온지 40여년이 된다. 유태인, 이태리인이 대부분인 평범한 동네다. 이사를 하자마자 잔디구석을 잘라내고 텃밭을 만들었다. 첫해는 스무 가지가 넘는 채소를 그것도 한국 토종 씨를 구해 심었다.

LA에서 친구들이 오면 채소밭 옆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갔다. 흙 한줌의 한을 푼 것이다. 집에서 난 채소를 비닐봉지에 넣어 무슨 값진것 이라도 되듯이 동료 직원들에게 옆집 이웃들에게 선물처럼 주었다. 유대인, 이태리인 이웃들과 함께 서로 못 보던 꽃이나 고운 꽃은 모종을 서로 나누고 꽃씨도 주고받는다.

우리집이 하도 열심히 채소를 가꾼 것을 보고 있던 옆집 유대인 이웃도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심었다. 봄철 여름철이면 서로가 밭에서 날마다 만나 그 전에 없었던 대화도 깊어지고 있다. 우리와 다른 점은 그 유대인 이웃은 가꾸는데 만 정신을 쓰고 채소를 먹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도 역시 자신도 모르는 흙에의 본능적 그리움이 의식 깊숙이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88올림픽 후 21세기대통령자문위원으로 있던, 서울의 변호사이자 서울법대 법학박사 친구는 동구 5개국 순방 중 어느 대사 관저에 저녁초대를 받았다. 저녁식사에 오른 채소 맛이 싱그러웠다. 샐러드 맛 칭찬을 했더니 그 대사(大使)의 취미생활이 집안 야채를 가꾸는 일이라고 하면서, 식단에 오른 것이 모두 집에서 직접 키운 채소라고 했다는 말에 감동을 잊지 않는 그였다.

내가 아는 그 친구의 취미도 역시 채소밭 가꾸고 흙과 자연을 좋아하고 그 멋과 낭만을 아는 사람이고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 후 그는 “서울시를 내 집 정원 가꾸듯 아름답게 꾸며 보겠다.” 고 “똑바로 하겠다.” 는 아름다운 꿈의 의지를 보였던 최연소 저 유명한 문민 초기의 “7일간의 서울시장”의 주인공이었다. 집 옆에 인접된 터가 아까워서 거기에 나무를 심은 것이, 흙의 낭만을 아는 사람이 소위 그린벨트 훼손명분으로 당한 생매장이었다.

집 뜰을 일구어 채소를 심을 줄 알고 그것을 행복으로 즐길 줄 아는 정치인과 한국 같은 형편으로는 아직 화려한 귀족취미로, 온갖 비리 음모가 이루어지는 취미인지 허세인지 모를 취미와는 다른 질의 사람취미 이다. 작가 정 연희씨는 이 일을 소재로, 흙을 사랑하는 사람의 < 7일간의 외출>이라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그의 미려하고 섬세한 글로 썼다.

흙 때문에 말썽 난 그 집을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미국 같으면 40평됨직한 땅위에 세운 새집 같은 작은 집이었다. 독일에서 공부한 그가 그 작은 집을 유럽풍 창문을 낸 것 외에는 4명 앉으면 꽉 찬 식탁이 있는 비좁은 집이었다. 

우면동이 지금처럼 개발이 되지 않았을 때 흙이 그리워 그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 그곳은 허허한 계곡이었다. 진입로 포장은 물론 상수도마저 아직 들어오지 않았던 때였다. 나는 그때 그 집을 찾아가 본 증인 중 하나다. 흙을 사랑한 사람의 수난과 수모였다. 

인간의 역사는 땅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땅을 중심해서 모인 사람들이 서로의 땅을 구분하여 그것이 마을이 되기도 하고, 민족의 단위가 되기도 하고 국가를 이루기도 했다. 땅에 사는 사람들이 땅을 서로 빼앗기 위해 전쟁을 했다. 위대한 영웅은 영토 확장을 천하통일이라는 이름으로 강해지면 약한 나라 땅을 침략했다.

시저도, 알렉산더도, 징기스칸도, 나폴레옹도, 일본의 동조 히틀러도 그랬다. 땅을 넓히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치고 박는 싸움도 땅을 놓고 밀고 밀리는 전쟁이다.

땅을 놓고 땅 먹는 부자가 되는 한국의 부동산 투기는 자고 나면 벼락부자를 만들어 사회의 병폐를 만들고 있다. 강남의 벼락부자 졸부문화가 압구정동 오렌지족의 퇴폐풍조를 몰고 왔다.

어쩌다가 우리 고국은 그 작고 좁은 땅마저 역사의 수 없는 수탈 속에 내 땅 내 흙을 잃어버리고 살다가 이제는 그것마저 두 쪽으로 갈라놓고 있는 것일까. 백두산 천지에서 한라산 백록담까지 한줄기로 뻗어 내린 금수강산을 잘라 놓고 같은 민족 같은 땅에서 70년이나 서로가 서로의 살을 찢으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셰계 어느 땅 어느 나라가 우리나라 산세 그리고 삼면 트인 시원한 나라가 있단 말인가.

금수강산 수려한 우리 고국이 세계의 꽃밭으로 가꾸어지기를 바란다. 가요가사처럼 한스럽고 안타깝다. “강물도 바다에서 다시 만나고, 철새도 철 따라 오가는 땅”을 원수 되어 골육도 못 만나는 이 한이 풀릴 날은 언제일까. 왜 우리는 잘린 땅도 원통한대 600기의 핵탄두를 단 미사일을 정조준해 놓고, 우리들의 땅을 불바다로 초토를 만들어 자멸을 자초하고자 하는 것일까.

더욱이나 금수강산(錦繡江山) 반도 삼천리가 금수인간(禽獸人間)의 7천만 썩은 동산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한스러운 남북(南北)분단 79년도 원통한데, 동서(東西)분열 망국(亡國)고질은 웬 말인가.

한 뼘 꽃밭을 가꾸면서 흙 한줌이 주는 고마움과 땅이 주는 서러움도 함께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민족이 섞여 사는, 보이는 동네 정원들의 꽃가꾸기를 보면서 인류마음의 꽃밭을 함께 가꿔야 한다는 깨달음도 오고, 내 울타리를 넘어 아름다움을 나누는 꽃밭이 더 곱고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인종도 국경도 뛰어넘는 꽃밭을 가꿔야 하는 시간에 살고 있다는 것도 깨닫고 있다.

사랑의 꽃이 만발한 꽃동산으로 하나의 정원이 되는 세계 공동체가, 새로 오는 세기의 새 땅으로 다가오는 꿈을 꾼다.

오늘도 나는 텃밭에 잡초 하나를 뽑으면서,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흙속에서 쉼과 기쁨을 찾고 싶어 하는 이유를 함께 뽑고 있다.

아울러 오늘은, 우리 보다 먼저 고인이 된 우리들 그룹, 김상철 서울특별시장을 추모한다.

글. 강용원

HCCC1

HCCC1- 60년 지나고 지금 모습 올려주세요 계속해서 업데이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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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반윙클의 시간” (인생 :보람-1)

Lip Van Winkle painting.Bear Mountain on the banks of the Hudson River in New York, USA.

흐르는 음악
Schumann 의 “Traumerei”(꿈) Borislav Strulev-첼로 연주

잠깐 낮잠 자다 깼는데 꿈같은 세월이 멀리멀리 흘러가고 말았다.
세월은 놓아 버린 살 같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흔적 없이 날아가 허공 속에 묻혀버린 바람 속에 구름 속에 묻히고 만 것 같다.
흐릿했던 아나로그시대는 사라지고 분명하고 확실한 디지털시대로 바뀌어있다.
허드슨 강변 베어마운트에서 신선들과 장귀 한판뒤고 약주한잔에 깨고보니 20여년이 흘러버린 립반윙클이 되고 말았다.

어찌 보면 허망하다. 어찌 보면 허무하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꿈속에서 꿈을 깨니 깬꿈도 꿈이로다. 우리 선조들의 느낌이나.

AI 테크날라지 시대를 사는 우리나 달라진것이 없다.

“그 누가, 나더러 청춘이 바람이냐고 묻거든
나, 그렇다고 말하리니
그 누가, 나더러 인생도 구름이냐고 묻거든
나, 또한 그렇노라고 답하리라”
수녀로 평생을 시로 산 이해인의 시구다.

그렇다고 지나간 세월 돌이커 주며 다시 그삶을 살겠는냐 물은 다면 그것은 더더욱 못하겠다고 하리라

인생은 한번 왔다가 한번 살고 갈뿐 두번 돌려 사는것도 못할 일같다.

그런데도 허탈한 빈공백은 자주 트고 들어온 빗물이 있다.

허무를 깨닫는것이 불가에서는 해탈을 벗기시작 하는 각이라하면 허무는 참된 길로 바로가게 하는 길잡이인것이 분명하다.

성서에 허무를 깨닫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한 말이 맞다면 이제야 인생의 철이 드는 것일까.
나이가 차니 이제 겨우 깨어 철이 드는지도 모른다.

왜 살았고 어떻게 살았고 얻은 것은 무엇이 길래 그렇게도 숨 가쁘게 살았던 것일까. ……

지금 내 손에 들고있는것은 무엇인가.

성공은 무엇이고 또 성취라는것은 어떤것일가.

그것을 물어볼려면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어머니 가슴에다 물어보면 더욱 훤히 보일것 같다.

그 어머니 가슴에 일렁이고 있는 살고 보니 보람이란 형체없는것 그것이 있다.

분명히 있는 확실한 한 아름이다.

그런데 만져지지 않고 보이지도 않은것이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보람이라는 추상명사 그것임을 알게 되었다.

부를쌓아 재벌이되고 학구적 총점을 완성해 박사가 되었다 해도 그것으로 인한 보람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것인가.

나는 오늘 보람을 찾아 함께 헤매 보고 싶다. 보람인생 인생보람을 찾아 꿈길을 함께 헤매고 싶다.

누구나 마지막 직전에 가슴에 안고갈 보람이라는 추상명사를 함께 간추려 보고싶다.

Lip Van Winkle painting.Bear Mountain on the banks of the Hudson River in New York, USA

“립반윙클의 시간” (인생 :보람-2)

흐르는 음악
Schumann 의 “Traumerei”(꿈) Borislav Strulev-첼로 연주

잠깐 낮잠 자다 깼는데 꿈같은 세월이 멀리멀리 흘러가고 말았다.
세월은 놓아 버린 살 같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흔적 없이 날아가 허공 속에 묻혀버린 바람 속에 구름 속에 묻히고 만 것 같다.
흐릿했던 아나로그시대는 사라지고 분명하고 확실한 디지털시대로 바뀌어있다.
허드슨 강변 베어마운트에서 신선들과 장귀 한판뒤고 약주한잔에 깨고보니 20여년이 흘러버린 립반윙클이 되고 말았다.

어찌 보면 허망하다. 어찌 보면 허무하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꿈속에서 꿈을 깨니 깬꿈도 꿈이로다. 우리 선조들의 느낌이나. AI텤크날라지 시대를 사는 우리나 달라진것이 없다.

“그 누가, 나더러 청춘이 바람이냐고 묻거든
나, 그렇다고 말하리니
그 누가, 나더러 인생도 구름이냐고 묻거든
나, 또한 그렇노라고 답하리라”
수녀로 평생을 시로 산 이해인의 시구다.

그렇다고 지나간 세월 돌이커 주며 다시 그삶을 살겠는냐 물은 다면 그것은 더더욱 못하겠다고 하리라

인생은 한번 왔다가 한번 살고 갈뿐 두번 돌려 사는것도 못할 일같다.

그런데도 허탈한 빈공백은 자주 트고 들어온 빗물이 있다.

허무를 깨닫는것이 불가에서는 해탈을 벗기시작 하는 각이라하면 허무는 참된 길로 바로가게 하는 길잡이인것이 분명하다.

허무를 깨닫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한 말이 맞다면 이제야 인생의 철이 드는 것일까.
나이가 차니 이제 겨우 깨어 철이 들는지도 모른다.

왜 살았고 어떻게 살았고 얻은 것은 무엇이 길래 그렇게도 숨 가쁘게 살았던 것일까. ……

지금 내손에 들고있는것은 무엇인가.

성공은 무엇이고 또 성취라는것은 어떤것일가.

그것을 물어볼려면 마지막 임종을 하는 어머니 가슴에다 물어보면 더욱훤히 보일것 같다.

그 어머니 가슴에 일렁이고 있는 살고 보니 보람이란 형체없는것 그것이 있다. 분명히 있는 확실한 한아름이다.

그런데 만져지지 않고 보이지도 않은것이 있음을알았다.

그것은 보람이라는 추상명사 바로 그것임을 알게 되었다. 일한 보람이없으면 허망하고 허탈하다.

부를 샇아 쌓아 재벌이되고 학구적 총점을 이룩해 박사가 되었다 해도 그것으로 인한 보람이 없으면 세상 말로 말짱 헛것이 되고 만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보람을 찾아 함께 헤매보고 싶다. 보람인생 인생보람 같은 성을 찾아 꿈길을 헤매보고 싶다.

부활생명은 환희다

강용원편지

“새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질때…”

“청라언덕과 같은 내마음에 백합 같은 내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 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언땅에 귀를 대고, 귀먹고 작곡한 베토벤의 9심포니, “고뇌에서 환희” 를 듣는다. 눈이 멀고서야 지었을 쉴러의 Ode to Joy-환희의 서사시를 읽는다.

잿빛 흙속에 감추인 찬란한 꽃을 본다

칼리포니아 야생화

겨울 한복판, 앙상하게 들어낸 나목의 수치를 보며 봄노래를 부른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 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마음에 백합 같은 내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 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박태준작곡 이은상 작사 우리 노래 “동무생각”이다.

봄꿈을 꾸는 마음에 봄소식이 초조하다. 비닐하우스에서 피운 복사꽃을 신문 사진에서 미리 보아도 봄은 오히려 멀리서만 느 껴 올 뿐이다. 봄은 아직 긴겨울 눈속에 누어 졸고만 있는 듯, 길게만 느껴지는 올겨울, 얼어붙은 땅위에 서서 꾸물거리고 있는 봄을 조급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앙상하게 뼈만 붙은 겨울나무 가지, 그러나 봄이 오면 피어나고야 말 꽃가지를 그리면서 봄환상의 동면 속에 이 음울한 긴 침묵을 인내하고 있다.

칼리포니아 야생화

무덤 같은 적막한 고요다, 겨울 외톨이 외로움이다,

그런데도 얼어붙은 땅속에서 들려 오는 생명들의 봄 함성이 있다. 조금 있으면 지축을 흔들면서 터져 나오고야 말 생명의 합창을 듣고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잿빛밖에 없는 이 겨울 암울한 회색속에 숨어 있는 찬란한 색의 향연을 기다린다.

겨울은 인생의 실패 같기도 하고, 냉혹한 엄동 바람은, 세상의 냉소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봄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생명 에는 시간이 있고, 흔적없는 땅속에 생명 뿌리를 알기때문이다.

인생에도 겨울이 있고, 봄이 있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생명이기 때문 이다. 인생의 봄이 봄다운 환희를 꽃피우려면 냉엄한 겨울의 시련을 이기고 죽은 듯 기다릴 줄 아는 인내, 절망같은 무덤 속에서 참아야 하는 외로운 침묵도 뚫어야 한다.

올봄이 유난히 기다려 지는 것은 올봄에 뿌려야 핳 꽃씨들을 보 아 두었기 때문일까. 얼어 붙은 캠퍼스 어느구석에 꿈을 심고 왔기 때문일까.

겨울 한복판, 앙상하게 들어낸 나목의 수치를 보며 봄노래를 부른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 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마음에 백합 같은 내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 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인류 공동체의 운명, <네>가 없는 <내>가 있을 수 없고, <네가없는 없는 나>가 있을수없는 생명의 유기적 공동체다. <네>속에서 <내>가 피어 나고 <내>속에서 <네>가 피어나는 몸을 이룬 생명 공공체 예수몸된 교회의 혁명이다.

예수부활은 교회 부활이다. 교회의 참된 부활이 생명이 될때 교회의 참된 부활이 사랑이될때 세상도 살고 인류도 새로산다.

새봄이 꽃밭으로 세상을 덮는다. 암울천지에 꽃의 교향악을 울린다.

우리는 지금 인류역사의 막바지 겨울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의 새봄을 그리며 내가 부활의 존재인가 심각하게 묻고 넘어야 한다.

흘러가는 계절을 왜 초조하게 재고 있는가. 하늘의 시간이 생명의 마디마디를 재고 있다…..

언땅에 귀를 대고, 귀먹고 작곡한 베토벤의 9심포니, “고뇌에서 환희” 를 듣는다. 눈이 멀고서야 지었을 쉴러의 Ode to Joy-환희의 서사시를 읽는다. 잿빛 흙속에 감추인 찬란한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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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내>게서 사랑으로 피어나라고….동무야 친구야, 얼어붙은 너와 나 사이에 살로 다시 엮어지고, 피로 사랑이 흐르게 하 자.

2021년대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질 때,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네>가 <내 >게서 피어나기를 꿈을 꾸듯 기다려 본다..

글. 강용원

당신의 청춘은 아직도 눈부십니다.

김영숙 · (주)칠성산업 두상달 대표이사 사모

1964년 입석 수련회에 처음으로 참석했을 때 부엌에서 열심히 일하는 노경자 간사님을 만났다.

‘아, 간사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먹이는 일에 충성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사무실에서 강용원 간사님을 만났다. 좀 까다롭게 보이는 가느스름한 눈이 인상적 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간사였던가? 간사 말고는 다른 일 에는 서투를 것 같은 사람 같았다.
대학 3학년 때 영문과 2학년이던 안순희 자매와 함께 C.C.C.편지 기자를 하면서 ‘동아출판사’ 를 드나들며 강 간사 님을 도왔다.

그 분은 늘 꿈꾸는 자 같았다. 좀 현실감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 분이 쓰는 글을 좋아했다.

“강 군은 1964년부터 미국으로 건너 간 1971년 11월까지 C.C.C편지의 편집, 교정, 글쓰는 일까지 혼자서 도맡아 해 왔다. 그의 문체와 편집은 애독자들의 깊은 애정을 샀다.
그가 쓴 ‘주님과 나만의 시간’은 C.C.C. 학생들 사이에서 팡세처럼 애독되 었다. 그의 정신계의 하늘이 키에르케고르의 코펜하겐의 하늘 | 우수와 고독으로 물들어 있어 그의 글은 나와 그가 듀엣으로 부른 신앙의 애정시 같은 것인지 모른다. 그와 나는 인생의 노래 곡조가 어딘지 슬프다. 한맺힌 한국인의 노래 가락에다 주님의 피를 묻힌다.”
(김준곤 목사의 ‘강용원 간사를 생각한다.’ 중에서)

그때 우리는 모두 가난했다. 학생들도 가난했지만 간사님들 도 가난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간사는 그런가 보다.’ 라고 생 각했다. 그 분은 가난만큼이나 절실하고 순수한 글을 썼다. 노총각이 되어서도 김 목사님만 따라 다닐 뿐 장가갈 생각은 안하는가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목사님께서 강간사님에게 정추자 자매를 중매했다. 너무나 순진한 그녀는 간사 아내의 삶이 얼마나 곤고할까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분과 결혼하여 두 개의 일을 뛰는 열심으로 아들 하나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몄다.

미국에 살면서도 햄버거는 안 먹는다는 순 한국 토종. CBS에 근무할 때도 한쪽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는게 뭐 자랑인가. 지금이야 미국에도 한국 음식이 지천이지만 당시에는 드물었다. 1984년 어느 날, 그 분의 집에서 하룻밤 묵었는데 사모님은 그 바쁜 와중에도 김치 서너 가지를 담아 냉장고에 넣어 놓고 그 분의 입맛을 챙기는 사랑을 보였다.

외아들 재민이가 뜨거운 국을 먹으며 “아, 시원하다.” 하니 먹는 감을 안다고 좋아하던 강용원 간사님, 잘 나가는 직장,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인 가장 안정적인 직장이던 CBS였는데 그만 모든 걸 다 접고 불혹도 넘은 나이에 다시 C.C.C. 간사의 삶으로 뛰어 들었다.

마치 연어의 회귀 본능처럼 태어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 강 간사님, 그 분이 키웠던 H.C.C.C. 지체들이 한국의 내로라 하는 인물들로 자랐으니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라는 찬양의 가사가 실감난다.

이제 그 분은 ‘왕 간사’가 되어 세계의 심장인 뉴욕에서 이젠 회색빛이 도는 글을 쓰며, 자기의 제자가 아닌 예수의 제자를 키우고 있다. 강 간사님도 아마 빈 둥우리 증후군을 앓을 거다.

그러나 간사님! 당신의 청춘은 아직도 눈부십니다

김영숙 · (주)칠성산업 두상달 대표이사 사모

에러 메시지

“에러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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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용원편지-

“구성 요소 중 하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 하나 하나의 존재는 신묘막측(神妙莫測) 한 신의 작품이다.(시 139:14) 

설악산 울산바위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데, 

“구성요소 중 하나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에러 메세지가 나오면 그 프로그램으로 하려고 하는 일은 더 이상 진행 시킬 수가 없다. 

그 프로그램을 다시 인스톨(Install) 하던지 찾지 못하는 그 구성요소를 찾아 주어야만 한다. 수 백만개로 구성된 개체속의 어느 한 개의 숫자적 디지털 이탈이다.

아나로그 모드에서 디지털로 바꿔진 모드로 바꿔진 세계에서 얻을수 있는 정확한 리포트 점검시스텀이다.

디지털은 손가락이란 뜻의 라틴어 디지트digit 에서 온 말이 다. 이는 모양으로 표시되는 아날로그에 비해 분명하게 1 2 3 을 셀 수 있다는 뜻에서 나왔다. 예컨대 각각의 눈금과 수 치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막대 그래프가 디지털형태라면 아날 로그는 정확히 수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곡선 그래프에 비유할 수 있다.

“구성요소 중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 주는 말이다. 몸으로 비교해서 이 말을 돌리면, 아침에 일어나 “몸의 구성요소 중 눈을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 얼마나 참담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 구성요소중 하나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회, 정치의식, 종교와 윤리의식이 참된 세계화요 민주화요, 인간존엄의 세계 공동체를이루는 성숙된 생명경외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 하나 하나는 없어서는 안될 구성요소로 서로 얼켜 있고 연결되어 살고 있다. 그것을 바로 알고 깨달을 때만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고, 이 역사도 바로 세울 수 있다. 응급실에 실려온 시간을 재는 생명을 놓고 수술 팀은 각각 제 할 일, 제 위치에서 제 시간에 그 맡은 일을 해내야 그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그 자리에는 독자적 계급권위가 없다. 제 할 일이 있을뿐이다.

세계는 지금 다민족 다문화가 얼켜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세계공동체를 모색하고 있다. 컴퓨터의 디지털 화 시대에 지구마을 대화가 안방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촉진시키고 발전시키는 작업이 인터넷을 통해 커뮤니케이션(대화소통)을 열어주고 있다. 다가오는 오는 세기는 이 세계공동체의 숙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다음 세기 지구의 운명이 걸려 있는것이다. 

차원을 바꾸는 비행기 이륙순간은 가슴설래는 흥분이 있다. 비행기 가 이륙할 때 그 탑재한 연료 3분의 1을 소모 한다.  그러나 그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관련된 모든 승무원, 기장, 정비점검사, 콘트롤타워 하나하나가 맡아 하는 일은 그 비행기의 성능 이상으로 그 중 어느것 하나라도 차원을 바꾸는 이륙에 생명이 걸린 중요한 역할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갈수 있도록 인간의 복지를 위해 두 개의 기둥 같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구조다. 하나는 정치 이념구조의 하드웨어, 또 하나는 교육.종교등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다. 하드웨어 틀안에서 디지털 화된 소프트웨어가 프로그램을 작동한다. 아나로그 시대를 벗어나 디지털 시대로 들어와서 그 하나 하나의 구성개체가 숫자로 표현되는 구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숫자로 구성된 하나의 개채는 아나로그화된 시대처럼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그 자리에 그 숫자의 개체가 없으면 멈춰 버릴수밖에 없는 구조다.

쓰레기를 거두어가는 환경미화원이 쓰레기 하나를 그대로 두면 동네는 순식간에 오물냄새가 진동 할 것이다. 파킹랏에서 차를 빼내어 주는 사람, 음식점에서 식사를 날라주는 한사람 한사람, 공사장에서 빨간 기를 들고 교통을 정리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막대한 시간 낭비를 감수해야 할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  지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연주는 시작할수 없다. 그러나 그 대원중 가끔 한두번 울려야하는 심발을 치는 대원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연주는 망치고 만다.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다. 제 자리에 제 할일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 자리에는 없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태어난다. 나 하나가 그 자리를 이탈하면 하늘의 별이 떨어지는, 우주가 흔들리고 지각의 변동이 온다.

나 하나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없어서는 안될 구성요소중 하나라고 깨닳을 때 나도 세상도 정상 가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가는 세상은 <서로>, <함께>, <같이>, <더불어> 사는 <팀웍으로 사는 세상>일 때, 완성된 조화의 아름다움을 볼수 있게된다. 그때 비로서 사람과 사람사이, 아름다운 관계속의 아름다운 인생가꾸기가 꽃을 피울 것이다. 

개체구성요소인 디지털 의식은 팀웍의식이고 세계화의식이다. 인간경영 마인드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서로 존중해 주고 하늘같이 받들어주고 격려해주고 아껴주는 사회 분위기가 아쉽다. 상하 계급사회가 아닌 수평 평등의 공동체 사회의식이 성숙되어야 한다. 특히 정치이념구조에서 그리고 독선과 오만의 종교와 교육 구조에서 이것이 먼저 제 틀을 잡아주어야 한다. 그런대 지금 현실은 어떤가?

노벨문학 수상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수용소 군도>, <암 병동> 같은 그 구조악을 고발하면서 반체제기상 운동으로 살아온 그가 최근 실망과 냉소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 인간성 자체의 탐욕성의 특성이 새로오는 세대를 어둡게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컴퓨터 시대에 우리는 아직도 혈거(穴居-동굴)시대의 법칙에 따르며 삶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을 개탄한다.” 고 탄식했다.

김지하의 오적(五賊)으로 10년의 감옥, 넬슨 만델라의 40년 감옥, 마틴 루터킹의 평등을 위한 죽음이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 있어야 하는 체제구조가 인간을 압살하는 구조로 타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예수는 생살을 찢었고, 석가는 고행을 자초했다. 종교개혁에 불을 질렀던 마틴 루터는 독아적 종교성의 구조적 악에 인간성 뿌리가 짓눌림을 받는 것에 대한 항거였다. 오늘날의 종교구조는 이 디지털 시대에 어디에 와 있는 것일까?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천하는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들 하나 하나의 존재는 신묘막측(神妙莫測) 한 신의 작품이다.(시 139:14) 

작품다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되찾아 오늘 하루가 더욱 풍성해 졌으면 좋겠다.

글.강용원

에러 메시지

“에러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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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용원편지-

“구성 요소 중 하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 하나 하나의 존재는 신묘막측(神妙莫測) 한 신의 작품이다.(시 139:14) 

설악산 울산바위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데, 

“구성요소 중 하나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에러 메세지가 나오면 그 프로그램으로 하려고 하는 일은 더 이상 진행 시킬 수가 없다. 

그 프로그램을 다시 인스톨(Install) 하던지 찾지 못하는 그 구성요소를 찾아 주어야만 한다. 수 백만개로 구성된 개체속의 어느 한 개의 숫자적 디지털 이탈이다.

아나로그 모드에서 디지털로 바꿔진 모드로 바꿔진 세계에서 얻을수 있는 정확한 리포트 점검시스텀이다.

디지털은 손가락이란 뜻의 라틴어 디지트digit 에서 온 말이 다. 이는 모양으로 표시되는 아날로그에 비해 분명하게 1 2 3 을 셀 수 있다는 뜻에서 나왔다. 예컨대 각각의 눈금과 수 치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막대 그래프가 디지털형태라면 아날 로그는 정확히 수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곡선 그래프에 비유할 수 있다.

“구성요소 중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 주는 말이다. 몸으로 비교해서 이 말을 돌리면, 아침에 일어나 “몸의 구성요소 중 눈을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 얼마나 참담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 구성요소중 하나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회, 정치의식, 종교와 윤리의식이 참된 세계화요 민주화요, 인간존엄의 세계 공동체를이루는 성숙된 생명경외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 하나 하나는 없어서는 안될 구성요소로 서로 얼켜 있고 연결되어 살고 있다. 그것을 바로 알고 깨달을 때만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고, 이 역사도 바로 세울 수 있다. 응급실에 실려온 시간을 재는 생명을 놓고 수술 팀은 각각 제 할 일, 제 위치에서 제 시간에 그 맡은 일을 해내야 그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그 자리에는 독자적 계급권위가 없다. 제 할 일이 있을뿐이다.

세계는 지금 다민족 다문화가 얼켜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세계공동체를 모색하고 있다. 컴퓨터의 디지털 화 시대에 지구마을 대화가 안방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촉진시키고 발전시키는 작업이 인터넷을 통해 커뮤니케이션(대화소통)을 열어주고 있다. 다가오는 오는 세기는 이 세계공동체의 숙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다음 세기 지구의 운명이 걸려 있는것이다. 

차원을 바꾸는 비행기 이륙순간은 가슴설래는 흥분이 있다. 비행기 가 이륙할 때 그 탑재한 연료 3분의 1을 소모 한다.  그러나 그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관련된 모든 승무원, 기장, 정비점검사, 콘트롤타워 하나하나가 맡아 하는 일은 그 비행기의 성능 이상으로 그 중 어느것 하나라도 차원을 바꾸는 이륙에 생명이 걸린 중요한 역할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갈수 있도록 인간의 복지를 위해 두 개의 기둥 같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구조다. 하나는 정치 이념구조의 하드웨어, 또 하나는 교육.종교등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다. 하드웨어 틀안에서 디지털 화된 소프트웨어가 프로그램을 작동한다. 아나로그 시대를 벗어나 디지털 시대로 들어와서 그 하나 하나의 구성개체가 숫자로 표현되는 구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숫자로 구성된 하나의 개채는 아나로그화된 시대처럼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그 자리에 그 숫자의 개체가 없으면 멈춰 버릴수밖에 없는 구조다.

쓰레기를 거두어가는 환경미화원이 쓰레기 하나를 그대로 두면 동네는 순식간에 오물냄새가 진동 할 것이다. 파킹랏에서 차를 빼내어 주는 사람, 음식점에서 식사를 날라주는 한사람 한사람, 공사장에서 빨간 기를 들고 교통을 정리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막대한 시간 낭비를 감수해야 할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  지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연주는 시작할수 없다. 그러나 그 대원중 가끔 한두번 울려야하는 심발을 치는 대원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연주는 망치고 만다.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다. 제 자리에 제 할일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 자리에는 없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태어난다. 나 하나가 그 자리를 이탈하면 하늘의 별이 떨어지는, 우주가 흔들리고 지각의 변동이 온다.

나 하나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없어서는 안될 구성요소중 하나라고 깨닳을 때 나도 세상도 정상 가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가는 세상은 <서로>, <함께>, <같이>, <더불어> 사는 <팀웍으로 사는 세상>일 때, 완성된 조화의 아름다움을 볼수 있게된다. 그때 비로서 사람과 사람사이, 아름다운 관계속의 아름다운 인생가꾸기가 꽃을 피울 것이다. 

개체구성요소인 디지털 의식은 팀웍의식이고 세계화의식이다. 인간경영 마인드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서로 존중해 주고 하늘같이 받들어주고 격려해주고 아껴주는 사회 분위기가 아쉽다. 상하 계급사회가 아닌 수평 평등의 공동체 사회의식이 성숙되어야 한다. 특히 정치이념구조에서 그리고 독선과 오만의 종교와 교육 구조에서 이것이 먼저 제 틀을 잡아주어야 한다. 그런대 지금 현실은 어떤가?

노벨문학 수상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수용소 군도>, <암 병동> 같은 그 구조악을 고발하면서 반체제기상 운동으로 살아온 그가 최근 실망과 냉소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 인간성 자체의 탐욕성의 특성이 새로오는 세대를 어둡게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컴퓨터 시대에 우리는 아직도 혈거(穴居-동굴)시대의 법칙에 따르며 삶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을 개탄한다.” 고 탄식했다.

김지하의 오적(五賊)으로 10년의 감옥, 넬슨 만델라의 40년 감옥, 마틴 루터킹의 평등을 위한 죽음이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 있어야 하는 체제구조가 인간을 압살하는 구조로 타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예수는 생살을 찢었고, 석가는 고행을 자초했다. 종교개혁에 불을 질렀던 마틴 루터는 독아적 종교성의 구조적 악에 인간성 뿌리가 짓눌림을 받는 것에 대한 항거였다. 오늘날의 종교구조는 이 디지털 시대에 어디에 와 있는 것일까?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천하는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들 하나 하나의 존재는 신묘막측(神妙莫測) 한 신의 작품이다.(시 139:14) 

작품다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되찾아 오늘 하루가 더욱 풍성해 졌으면 좋겠다.

글.강용원

“진달래꽃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네”

-강용원편지-

“진달래꽃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네”

-꽃처럼 피는 인생, 꽃을 살자-

죽은 말뚝도 봄을 잡고 일어선다.

죽은 땅에서 라이락을 피워낸다.

4월은 혁명의 달이다.혁명은 생명을

담보로 도전하는 용기다.

4월은 부활의 달이다. 좌절도 절망도

다시 사는 달이다.

봄은 생명을 부른다. 생명은 꽃을 부른다.

그래서 절망의 늪 속에서도 꽃은 희망으로 핀다.

눈 속에 묻혀 지난 겨울을 보낸 올 봄은 유난히도 기다려지는 것이 꽃 소식이다.

4월의 봄은 목련이 조심스럽게 수줍은 듯,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기다리던 봄을 가져왔다.

개나리, 수선화, 튤립이 무리 지어 봄 합창을 노래한다.새삼 봄이 오면 우리 가곡이 더 없이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꽃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네” 꽃이 피니 우리 마음도 핀다.  숲 속에 찔레꽃 향기가 닥나무 구름 꽃 위에 무지개로 수놓아 흐른다. 산에도 들에도 숲 속에도 바닷가에도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고 어지러워도 꽃을 보면 알 수 없는 용기와 즐거움이 피어난다. 꽃을 보면 마음속에 즐거운 미소가 피어나고, 막혀 버린 듯 답답한 가슴에 기쁨의 순수한 샘을 흐르게 한다.

화투짝에 그려진 흑사리꽃, 목단, 매화, 난초, 광 사꾸라, 시월 단풍밖에는 모르고 살다가 미국에 와서야 일년 열두 달 절기마다 꽃으로 축하와 슬픔을 나누는 꽃 법석을 보면서, 꽃이 주는 기쁨과 사랑과 위로가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강렬한 마음의 배달자임을 깨닫고 있다.

2월 발렌타인에 장미꽃, 4월 부활절에 백합꽃, 5월 어머니날에 카네이션과

현충일이 있는 5월말 붉은 퍼피꽃, 6월에 다시 아버지날에 카네이션,

11월 감사절에 과일과 곁들인 국화 꽃바구니, 12월 성탄절에 포인세티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도 산모실에 꽃바구니를 들고 가고, 사람이 죽어도

장례식 조문 위로화를 들고 간다.

개업을 해도 꽃이나 기념수를 들고 간다.

기념 연주회, 졸업식에도 해마다 몇 주년 축하 행사에도 꽃을 들고 간다. 공항에 귀빈이 와도 꽃을 가지고 가고 떠나는 귀빈에게도 꽃을 안겨 보낸다.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는 결혼식은 온통 꽃으로 장식되고, 신부는 꽃을 들고 꽃잎 뿌려진 꽃길을 밟고 입장을 한다.

부모님 묘소를 갈 때도 꽃을 안고 간다. 가족의 생일에도 결혼기념일에도 꽃이

없으면 쓸쓸하다.

인생을 마치고 무덤으로 갈때는 꽃속에 묻혀서 간다.

나라마다 국기(國旗)가 있듯이 국화(國花)가 있다. 미국은 주마다 주화(州花)가 있다.

꽃이란 가장 속임 없는 언어다. 생긴 대로 풍겨나는 품성의 향기다. 꽃은 이름 없는 생물의 생명 신기록이다. 꽃을 피우고야 말겠다는 집념의 기록이다.

노래나 시의 사연은 꽃을 연결하여 표현한다. 꽃은 제 마다 꽃말을 가지고 있다.

꽃 따라 전설도 꽃이 피는 사연도 있다.

온실문화 속에 계절을 잊어버린 꽃들이 열두 달 내내 피어 있을지라도, 꽃은 제철에 제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요즈음 한국의 이미지는 화려한 백화점문화와 강남의 호화스런 혼합문화로 옛날과는 달라지고 있을지라도 한국인의 정서는, 초가 지붕 위에 수줍은 듯 청초하게 피는 박꽃, 외로운 사람의 어두움을 달래주는 달맞이꽃, 가는 세월 아까워라 코스모스, 가슴에 맺힌 한을 애써 숨기며 피고야 마는 동백꽃, 격랑의 파도소리를 달래 주는 해당화,

그리고 도라지꽃, 피고 터지는 봉숭화꽃의 나라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

남국에 피는 열대성 꽃들, 북 반부 사계절에 피는 꽃, 고산에 피는 꽃, 습지에 피는 꽃, 화려한 꽃, 청초한 꽃, 제 모습을 뽐내는 꽃, 수줍게 피는 꽃, 아무도 모르게 깊은 산 속에서 홀로 피었다 지는 이름모를 꽃도 있다.

몇 해 전 고국을 방문해 아파트 베란다마다 가꾸고 있는 동양란을 보고, 잊어버린 고국의 서당 붓글씨 향수(鄕愁)가 솟아났다. 동생 집에서 두 그루를 가져와 아무리 정성 들여 물을 주어도 미국으로 건너 온 줄 알았는지 한 잎 두 잎 시들고 말았다. 3년전에 다시 두 그루를 가져와 키웠다. 올해 2월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나니

온 집안에 전에 없던 향기가 맴돌고 있었다.

향기의 출처를 찾아 가보니, 동양란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5년 만의 성취의 꽃이다. 나도 모르게 스미는 눈물을 훔치며 온 집안 식구들에게 알렸다. 온 집안이 축제의 기분에 쌓인 날이었다. 올해 우리 집에 큰 경사가 날 것 같다.

꽃은 아무리 보아도 조물주의 신묘한 신비에 속한다. 흙 속에 숨어 있는 색의 비밀을 온 천하에 알리는 화가 중의 화가다. 꽃을 자주 보면 체내에 엔돌핀 호르몬이 왕성해져 면역성이 강해진다고 한다.

‘무궁화’는 우리 나라 꽃이다. 그 모습이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밝고 기상이 넘치는 꽃이다. ‘꽃 중의 꽃 무궁화꽃, 오천만의 꽃’이다. 살아온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젠 반쪽의 꽃이 되고 말았다.

북한의 꽃 함박꽃이 ‘목란(木蘭)’으로 명명되어 이제 두 개의 국화(國花)가

되었다. 그렇지만 언젠가 남쪽 무궁화의 은근과 끈기 개방적 활달성이 북녘 한복 차림의 함박꽃이 서로 어울려 칠천만의 꽃이 피는 날을 기다려 본다.

무궁화와 함박꽃이 접목되면 ‘무궁란(無窮蘭)’ 새 꽃이 필 것이기 때문이다.

국화 옆에서… 한 송이 통일 꽃을 천둥번개 먹구름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서 평양 가는 길가에 ‘무궁란(無窮蘭)’-통일의 꽃-이 만개해 있으면 좋겠다.

꽃 중의 꽃은 인생 꽃이다. 한번 피고 지는 꽃처럼 한 인생도 피다 지고 가는것이

아닌가..

아름다운 인생의 향기와 기어이 어디서나 피고야 마는 성취 인생이, 꽃처럼 활짝 웃고 피어나기를 바란다.

꽃은 꽃가지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바쳐 꽃을 피운다. 나무도 가지고 있는 모든 진액을 다 뽑아 한해의 나이테를 두르고 더 높이 더 넓게 자란다. 생물은 성장에 기록을 갱신한다.

죽은 말뚝도 봄을 붙잡고 일어서는 힘과 생명의 계절이다. 우리도 삶의 기록을 갱신하는 인생 꽃 계절이 되기를 바라고 싶다.

올해는 서로가 서로에게  꽃 마음을 주고받는 꽃 향기가 되면 더욱 좋겠다.

글.강용원

당신의 청춘은 아직도 눈부십니다.

김영숙 · (주)칠성산업 두상달 대표이사 사모

1964년 입석 수련회에 처음으로 참석했을 때 부엌에서 열심히 일하는 노경자 간사님을 만났다.

‘아, 간사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먹이는 일에 충성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사무실에서 강용원 간사님을 만났다. 좀 까다롭게 보이는 가느스름한 눈이 인상적 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간사였던가? 간사 말고는 다른 일 에는 서투를 것 같은 사람 같았다.
대학 3학년 때 영문과 2학년이던 안순희 자매와 함께 C.C.C.편지 기자를 하면서 ‘동아출판사’ 를 드나들며 강 간사 님을 도왔다.

그 분은 늘 꿈꾸는 자 같았다. 좀 현실감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 분이 쓰는 글을 좋아했다.

“강 군은 1964년부터 미국으로 건너 간 1971년 11월까지 C.C.C편지의 편집, 교정, 글쓰는 일까지 혼자서 도맡아 해 왔다. 그의 문체와 편집은 애독자들의 깊은 애정을 샀다.
그가 쓴 ‘주님과 나만의 시간’은 C.C.C. 학생들 사이에서 팡세처럼 애독되 었다. 그의 정신계의 하늘이 키에르케고르의 코펜하겐의 하늘 | 우수와 고독으로 물들어 있어 그의 글은 나와 그가 듀엣으로 부른 신앙의 애정시 같은 것인지 모른다. 그와 나는 인생의 노래 곡조가 어딘지 슬프다. 한맺힌 한국인의 노래 가락에다 주님의 피를 묻힌다.”
(김준곤 목사의 ‘강용원 간사를 생각한다.’ 중에서)

그때 우리는 모두 가난했다. 학생들도 가난했지만 간사님들 도 가난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간사는 그런가 보다.’ 라고 생 각했다. 그 분은 가난만큼이나 절실하고 순수한 글을 썼다. 노총각이 되어서도 김 목사님만 따라 다닐 뿐 장가갈 생각은 안하는가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목사님께서 강간사님에게 정추자 자매를 중매했다. 너무나 순진한 그녀는 간사 아내의 삶이 얼마나 곤고할까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분과 결혼하여 두 개의 일을 뛰는 열심으로 아들 하나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몄다.

미국에 살면서도 햄버거는 안 먹는다는 순 한국 토종. CBS에 근무할 때도 한쪽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는게 뭐 자랑인가. 지금이야 미국에도 한국 음식이 지천이지만 당시에는 드물었다. 1984년 어느 날, 그 분의 집에서 하룻밤 묵었는데 사모님은 그 바쁜 와중에도 김치 서너 가지를 담아 냉장고에 넣어 놓고 그 분의 입맛을 챙기는 사랑을 보였다.

외아들 재민이가 뜨거운 국을 먹으며 “아, 시원하다.” 하니 먹는 감을 안다고 좋아하던 강용원 간사님, 잘 나가는 직장,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인 가장 안정적인 직장이던 CBS였는데 그만 모든 걸 다 접고 불혹도 넘은 나이에 다시 C.C.C. 간사의 삶으로 뛰어 들었다.

마치 연어의 회귀 본능처럼 태어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 강 간사님, 그 분이 키웠던 H.C.C.C. 지체들이 한국의 내로라 하는 인물들로 자랐으니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라는 찬양의 가사가 실감난다.

이제 그 분은 ‘왕 간사’가 되어 세계의 심장인 뉴욕에서 이젠 회색빛이 도는 글을 쓰며, 자기의 제자가 아닌 예수의 제자를 키우고 있다. 강 간사님도 아마 빈 둥우리 증후군을 앓을 거다.

그러나 간사님! 당신의 청춘은 아직도 눈부십니다

김영숙 · (주)칠성산업 두상달 대표이사 사모

“립반윙클의 시간” (인생 :보람-1)

흐르는 음악
Schumann 의 “Traumerei”(꿈) Borislav Strulev-첼로 연주

잠깐 낮잠 자다 깼는데 꿈같은 세월이 멀리멀리 흘러가고 말았다.
세월은 놓아 버린 살 같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흔적 없이 날아가 허공 속에 묻혀버린 바람 속에 구름 속에 묻히고 만 것 같다.
흐릿했던 아나로그시대는 사라지고 분명하고 확실한 디지털시대로 바뀌어있다.
허드슨 강변 베어마운트에서 신선들과 장귀 한판뒤고 약주한잔에 깨고보니 20여년이 흘러버린 립반윙클이 되고 말았다.

어찌 보면 허망하다. 어찌 보면 허무하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꿈속에서 꿈을 깨니 깬꿈도 꿈이로다. 우리 선조들의 느낌이나. AI텤크날라지 시대를 사는 우리나 달라진것이 없다.

“그 누가, 나더러 청춘이 바람이냐고 묻거든
나, 그렇다고 말하리니
그 누가, 나더러 인생도 구름이냐고 묻거든
나, 또한 그렇노라고 답하리라”
수녀로 평생을 시로 산 이해인의 시구다.

그렇다고 지나간  세월 돌이커 주며 다시 그삶을 살겠는냐 물은 다면 그것은 더더욱 못하겠다고 하리라

인생은 한번 왔다가 한번 살고 갈뿐 두번 돌려 사는것도 못할 일같다.

그런데도 허탈한 빈공백은 자주 트고 들어온 빗물이 있다.

허무를 깨닫는것이 불가에서는 해탈을 벗기시작 하는 각이라하면 허무는 참된 길로 바로가게 하는 길잡이인것이 분명하다.

허무를 깨닫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한 말이 맞다면 이제야 인생의 철이 드는 것일까.
나이가 차니 이제 겨우 깨어 철이 들는지도 모른다.

왜 살았고 어떻게 살았고 얻은 것은 무엇이 길래 그렇게도 숨 가쁘게 살았던 것일까.  ……

지금 내손에 들고있는것은 무엇인가.

성공은 무엇이고 또 성취라는것은 어떤것일가.

그것을 물어볼려면 마지막 임종을 하는 어머니 가슴에다 물어보면 더욱훤히 보일것 같다.

그 어머니 가슴에 일렁이고 있는 살고 보니 보람이란 형체없는것 그것이 있다. 분명히 있는 확실한 한아름이다.

그런데 만져지지 않고 보이지도 않은것이 있음을알았다.

그것은 보람이라는 추상명사 바로 그것임을 알게 되었다. 일한 보람이없으면 허망하고 허탈하다.

부를 샇아 쌓아 재벌이되고 학구적 총점을 이룩해 박사가 되었다 해도 그것으로 인한 보람이 없으면 세상 말로 말짱 헛것이 되고 만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보람을 찾아 함께 헤매보고 싶다. 보람인생 인생보람 같은 성을 찾아 꿈길을 헤매보고 싶다.

워드프레스에서 오디오 화일 실행하는 방법

1. 워드프레스에서 + 기호를 클릭 -> <> 기호를 선택 클 릭한다.

2. 다음과 같이 왼쪽 화면에 <> Code 라는 리스트 뷰가 하나 생긴다.

3. 오른쪽 위 코너에 마우스를 갖다대면 옵션버튼이 나오고 그것을 클릭한 후 중간에 비주얼 에디터에서 “Code Editor”로 전환한다.

4-A. 준비한 Code를 <code>와 </code>사이에 복사해 넣는다.

4-B 또는 왼쪽 List View에서 <> code 를 마우스를 갖다대면 세로로 점 세개가 보이는데 그것을 클릭한 후 ” “Edit as Html”로 전환하여 <Code>와 </Code> 사이에 준비해둔 코드를 복사해 넣는다.

“해넘어가는 석양, 허무의 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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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원 편지-

”해 지는 석양 고아원에 알 수 없는 고아의 울음소리”

– 스승의 달 오월에 생각 나는 교훈 –

<figure class=”wp-block-audio”><audio controls src=”http://www.softwarecybernetics.com/ywk/wp-content/uploads/2021/12/칼렌다인생음악.mp3″ autoplay loop></audio></figure>

해 아래 새것은 없다. 그럴지라도 사계(四季)의 5월은 해마다 새롭기만 하다.

논두렁에 어머니 생각 나는 봄 쑥이 솟고, 동무들과 고향이 생각 나는 개나리

철쭉이 피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벚꽃 유채꽃으로 칩칩했던 긴

겨울을 밝혀주는 황홀한 계절이다.

계절의 여왕은 5월, 인생의 여왕은 어머니다. 오월은 축제의 날이 많이 있는 달이다.

“어머니의 달”이고 “어린이의 달” “스승의 달”이다 .

60년대 초는 ‘반공(反共)을 국시’로 삼은 살벌한 군사정권의 계엄령 하에

이데올로기 흑백논리 시대였다.

대학 캠퍼스는 온통 쥐구멍 뚫린 듯 남파 간첩이 포섭할 인재를 찾아 자신도 모르게 용공집단에 명단이 올라 있고 캠퍼스 귀퉁이마다 술렁이는 혼란과 그리고 방황의 시간이었다.

무신론 실존주의 까뮤나 싸르뜨르가 지성을 과시하던 시절, 어디를 가도

“이방인(異邦人)”의 망령이 그림자 처럼 허무의 그림자로 우리

의식을 따라 붙고 있었다.

어두울수록 좋은 침침한 다방 아랫 구석 담배연기 자욱한 음악 감상실이 유일한 쉼터였다. 4.19를 전후한 우리 세대의 피잔한 젊음들의 모습이었다.

바로 그 시점에 CCC의 한국 캠퍼스 사역이 시작되었다.

미국유학에서 방금 돌아온 30대 청년 김준곤 목사님이 고대(高大) 캠퍼스를 시작으로 캠퍼스 예수운동이 시작되었다. 교문을 서성이다 불청객 문전박대로 우득하니 섰다가 돌아서야 하는 좌절, 거부와 혁명적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허우적 거릴때였다. 그때 우리는 혼미(昏迷)와 방랑(放浪)과 자조적 반항의식

의 몽유병(夢遊病) 환자들이었다.

목사님은 저동 회관에서, 충무로 회관에서 묵정동 회관에서 금식하며 준비한

멧세지로 그때 우리들의 허무를 깨우고 있었다. CCC 정기 주일 모임이

시작되었다. 두 번 반복 할 수 없는 그때의 멧세지들을 그때 군용으로 나온 고물 RCA 릴 녹음기를 CCC 켄 크레머 선교사가 미8군에서 얻어와 녹음을

했다. 거의 한번도 거르지 않고 100개가 넘는 릴에 녹음해서, 나대로

가보처럼 철제 캐비넷에 넣고 잠가 보관했다.

71년 12월 8일 도미하면서 목사님께 선물로 드리고 왔다.

그런데 그 태잎들이 몽땅 없어지고 말았다. 아깝다 너무 아까운 한국

기독교사의 유산이 분실되었다. 지금 그때 음성을 다시 들을 수는 없지만

내 심장 속에 녹음된 목사님의 멧세지를 한 가닥씩 꺼내고 있다.

목사님은 당신이 만든 예화를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을 인용하는 것처럼 들려

줄 때가 많았다.

내 인생의 키를 돌려 준 스승의 가르침을 생각한다.

“-해 넘어 가는 노을진 석양 언덕에 고아원이 있었다.

하루해가 저물고 저녁이 되면 어린 고아 하나가 울기 시작한다. 길에

내다 버린 갓 주어온 두 살 백이 고아다.고아원 보모가 달래도 소용이 없다. 배가 고파 그런가 해서 먹을 것을 주어도 울어댄다. 어디가 아픈가 해서 약을 먹여도 울어댄다. 장난감을 주어도 악을 쓰고 울기만 한다. 옷 속에 벌레가 있어 그런가 싶어 새 옷을 갈아 입혀도 울어댄다. 아무도 고아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아무도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울고 있는 고아도 자신이 왜 우는지 모르고 울고 만 있는 것이다. 해가 지는 시간이 지나면 울음을 멈춘다.

나중에 안 사실로 그 시간에 밭을 매고 돌아온 어머니가 가슴에 품고 젖을

먹이는 시간이었다. 나자신도 인간 개인도 인류 전체도 이 고아의 울음을

가지고 있다. -”

자신도 우는 이유를 모르는 울음, 그 누구도 그 울음을 알 수 없고 달랠수 없는 울음들이 심층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나자신의 울음이고, 인류전체의 울음이다. 통곡이고 절규다. 마셔도 목이 타는 갈증같은 목마름이다.

겉으로 웃고 자기만족에 도취되어 있을지라도 이 깊은 울음은 예수를

만날 때까지 자신을 보채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때 나 자신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울음소리와 함께 내 인생의 키를 돌렸다. 울고 있는 고아는 나 자신이고, 울고 있는 거리의 사람들 통곡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로부터 육십 여 년이 흘러 가버린 지금, 나는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예수를 전하고 있다.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나는 주안에 쉴때 까지 참평안이 없었나이다.”파스칼의 고백처럼 “ 내안에는 빈 공백이 있다. 그 공백은 예수만이 채울수 있는 공백이다”

5월, 신록의 계절에 밤하늘 별을 헤며 어머니를 불렀던 윤동주, 밤 기적 소리를 들을 때 울 쩍 솟아 오른 어머니를 생각하며, 후회 없는 인생의 선택을

열어 준 스승을 생각한다. 인간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터전은 어머니다.

그러나 그 터전이 무너져 어머니도 없고 자식도 없는 시대가 되어 간다.

스승이 없어진 지 오래 되었고 조상의 묘를 식칼로 찌르는 폐륜(廢倫)의 세태다.

어머니와 같은 대지(大地)가 마구 중 금속, 방사성 라돈으로 폐허가 되어

가고 있다. 화학비료, 살충제, 문명이라는 이름의 공장폐수가 땅을

죽이고 있다. 신세대로 가장한 탕아들이 부모와 스승의 가슴에 칼질을

하는 것과 같다.

뉴욕 근교에 세계 제1의 쇼핑몰이 세워져 연일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쓰레기 처리장으로 대지를 죽인 자리 방사성 독극물로 사람도 식물도 살수

없는 땅위에 초호화 쇼핑몰을 짓고 그 위에서 인간의 허영을 팔고 산다.

이 시대의 아이러니다.

어머니 상실문화, 글로벌 고아(孤兒)의 탕자 시대로 신문화인(新文化人) 의 시대가 와서는 안될 말이다.

스승의 달에 인류의 스승들 공자, 석가, 소크라테스, 예수와 함께 나의 스승인

김준곤 목사님을 생각한다.

나이가 들기전에는 미쳐몰랐던 소중한것들이 있다. 떠나 버린 인생의 스승 김준곤목사님이 더욱소중하게 생각나는 계절이다.

자연과 모성(母性)과 그 안에 씨로 자란 스승의 가르침이 환경문화의

타락과 세대감각의 오염으로 함께 몰락해서는 안될 일이다. 외로우셨던

삶, 떠나신 후에 더욱 크게 울리는 스승의 교훈이다.

님은 갔어도 울림은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목사님을 곁에서 모셨던 제자 강군. 강용원 올림

글.강용원

우리의 그때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에덴의 동쪽에서 나온 저항과 반항의 동뿌리를  차야 하는 제임스 딘이었다.

(테스트 메모연습) “허무의 강가에서…허무와 희망사이”

  • 해지는 석양 허무의 강가에서서
  • 줄끊어진 기타로 끝없는 G-선의 에레지로
  • 허무의 만가를 노래하고 있다.
  •  · 

-강용원 편지-

”해 지는 석양 고아원에 알 수 없는 고아의 울음소리” 나의 존재의 내력을 묻고 그의미를 묻고있는 울움이었다.

60년대 초 우리들의 세대는 ‘반공(反共)을 국시’로 삼은 살벌한 군사정권의 계엄령 하에

이데올로기 흑백의 시대였다.

대학 캠퍼스는 온통 쥐구멍 뚫린 듯 남파 간첩이 포섭할 인재를 찾아 자신도 모르게 용공집단에 명단이 올라 있고 캠퍼스 귀퉁이마다 술렁이는 혼란과 그리고 방황의 시간이었다.

무신론 실존주의 까뮤나 싸르뜨르가 지성을 과시하던 시절, 어디를 가도

“이방인(異邦人)”의 망령이 그림자 처럼 허무의 그림자로 우리 의식을 따라 붙고 있었다. 지금도 내용이 햇갈리는 까뮤의 이방인을 들고 싸르트르의 벽을 옆구리에 끼고 숨기 편한곳일수록 좋은곳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우리는 어두울수록 좋은 침침한 다방 아랫 구석 이 편안했다. 담배연기가 자욱할수록 더 포근했다. 음악 감상실이 지성을 가장한 유일한 쉼터였다. 4.19를 전후한 우리 세대의 피잔한 젊음들의 모습이었다. 좌절, 거부와 혁명적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허우적 거릴때였다. 그때 우리는 혼미(昏迷)와 방랑(放浪)과 자조적 반항의식의 몽유병(夢遊病) 환자들이었다.

‘에덴의 동쪽’에서 나와 이유없는 저항과 반항의 돌뿌리를 맨발로 걷어차는 이유없는 ‘제임스 딘’을 자처했다.

(바로 그 시점에 CCC의 한국 캠퍼스 사역이 시작되었다.미국유학에서 방금 돌아온 30대 청년 김준곤 목사님이 고대(高大) 캠퍼스를 시작으로 캠퍼스 예수운동이 시작되었다. 교문을 서성이다 불청객 문전박대로 우득하니 섰다가 돌아서야 하는 좌절, 거부와 혁명적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허우적 거릴때였다. 그때 우리는 혼미(昏迷)와 방랑(放浪)과 자조적 반항의식의 몽유병(夢遊病) 환자들이었다.)

목사님은 저동 회관에서, 충무로 회관에서 묵정동 회관에서 금식하며 준비한

멧세지로 그때 우리들의 허무를 깨우고 있었다. CCC 정기 주일 모임이

시작되었다. 두 번 반복 할 수 없는 그때의 멧세지들을 그때 군용으로 나온 고물 RCA 릴 녹음기를 CCC 켄 크레머 선교사가 미8군에서 얻어와 녹음을

했다. 거의 한번도 거르지 않고 100개가 넘는 릴에 녹음해서, 나대로

가보처럼 철제 캐비넷에 넣고 잠가 보관했다.

71년 12월 8일 도미하면서 목사님께 선물로 드리고 왔다.

그런데 그 태잎들이 몽땅 없어지고 말았다. 아깝다 너무 아까운 한국

기독교사의 유산이 분실되었다. 지금 그때 음성을 다시 들을 수는 없지만

내 심장 속에 녹음된 목사님의 멧세지를 한 가닥씩 꺼내고 있다.

목사님은 당신이 만든 예화를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을 인용하는 것처럼 들려

줄 때가 많았다.

내 인생의 키를 돌려 준 스승의 가르침을 생각한다.)

“-해 넘어 가는 노을진 석양 언덕에 고아원이 있었다.

하루해가 저물고 저녁이 되면 어린 고아 하나가 울기 시작한다. 길에

내다 버린 갓 주어온 두 살 백이 고아다.고아원 보모가 달래도 소용이 없다. 배가 고파 그런가 해서 먹을 것을 주어도 울어댄다. 어디가 아픈가 해서 약을 먹여도 울어댄다. 장난감을 주어도 악을 쓰고 울기만 한다. 옷 속에 벌레가 있어 그런가 싶어 새 옷을 갈아 입혀도 울어댄다. 아무도 고아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아무도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울고 있는 고아도 자신이 왜 우는지 모르고 울고 만 있는 것이다. 해가 지는 시간이 지나면 울음을 멈춘다.

나중에 안 사실로 그 시간에 밭을 매고 돌아온 어머니가 가슴에 품고 젖을

먹이는 시간이었다. 나자신도 인간 개인도 인류 전체도 이 고아의 울음을

가지고 있다. -”

자신도 우는 이유를 모르는 울음, 그 누구도 그 울음을 알 수 없고 달랠수 없는 울음들이 심층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나자신의 울음이고, 인류전체의 울음이다. 통곡이고 절규다. 마셔도 목이 타는 갈증같은 목마름이다.

겉으로 웃고 자기만족에 도취되어 있을지라도 이 깊은 울음은 예수를

만날 때까지 자신을 보채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때 나 자신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울음소리와 함께 내 인생의 키를 돌렸다. 울고 있는 고아는 나 자신이고, 울고 있는 거리의 사람들 통곡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로부터 육십 여 년이 흘러 가버린 지금, 나는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예수를 전하고 있다.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나는 주안에 쉴때 까지 참평안이 없었나이다.”파스칼의 고백처럼 “ 내안에는 빈 공백이 있다. 그 공백은 예수만이 채울수 있는 공백이다”

5월, 신록의 계절에 밤하늘 별을 헤며 어머니를 불렀던 윤동주, 밤 기적 소리를 들을 때 울 쩍 솟아 오른 어머니를 생각하며, 후회 없는 인생의 선택을

열어 준 스승을 생각한다. 인간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터전은 어머니다.

그러나 그 터전이 무너져 어머니도 없고 자식도 없는 시대가 되어 간다.

스승이 없어진 지 오래 되었고 조상의 묘를 식칼로 찌르는 폐륜(廢倫)의 세태다.

어머니와 같은 대지(大地)가 마구 중 금속, 방사성 라돈으로 폐허가 되어

가고 있다. 화학비료, 살충제, 문명이라는 이름의 공장폐수가 땅을

죽이고 있다. 신세대로 가장한 탕아들이 부모와 스승의 가슴에 칼질을

하는 것과 같다.

뉴욕 근교에 세계 제1의 쇼핑몰이 세워져 연일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쓰레기 처리장으로 대지를 죽인 자리 방사성 독극물로 사람도 식물도 살수

없는 땅위에 초호화 쇼핑몰을 짓고 그 위에서 인간의 허영을 팔고 산다.

이 시대의 아이러니다.

어머니 상실문화, 글로벌 고아(孤兒)의 탕자 시대로 신문화인(新文化人) 의 시대가 와서는 안될 말이다.

스승의 달에 인류의 스승들 공자, 석가, 소크라테스, 예수와 함께 나의 스승인

김준곤 목사님을 생각한다.

나이가 들기전에는 미쳐몰랐던 소중한것들이 있다. 떠나 버린 인생의 스승 김준곤목사님이 더욱소중하게 생각나는 계절이다.

자연과 모성(母性)과 그 안에 씨로 자란 스승의 가르침이 환경문화의

타락과 세대감각의 오염으로 함께 몰락해서는 안될 일이다. 외로우셨던

삶, 떠나신 후에 더욱 크게 울리는 스승의 교훈이다.

님은 갔어도 울림은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목사님을 곁에서 모셨던 제자 강군. 강용원 올림

글.강용원

우리의 그때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에덴의 동쪽에서 나온 저항과 반항의 동뿌리를  차야 하는 제임스 딘이었다.

인간미(人間味)와 인간성(人間性)

<강용원 편지>

“인간미(人間味)가 인간성(人間性)을 덮는다”

– 에세이를 쓰면서 생각한다 –

인간미는 인간성에 맛을 더한 말이다.

똑 같은 인간인데 인간미가 있는 인간이 있고 인간미 없는 사람이 있다.

똑 같은 사람인데 사람 맛이 나는 사람있는가 하면 화려한 학벌과 경력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껄껄하게 모래알 씹히는 사람맛이 메말라 빠진 인간도 있다.

만나면 정감이 흐르는 친밀감이 이는 사람이 있고 썰렁한 얼음판 같은 사람도 있다.

인간성이라는 어려운 정의를 내릴수는 없다. 인간성이 본래 악이냐 선이냐는 인류의 시작부터 논란이 된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있다.

………………………………………

나는 문단에 정식 데뷔 한 적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글을 써 온지 60여년이 되는것같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느끼고 배워가는 것이 많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인가도 새삼 깨닫는다.

어쩌다가 글을 쓰게 되었는지 어떨 때는 처량해진 자신을 한탄한 적도 있다. 한때는 여기저기 한 달에 6편의 새 글을 써서 8곳에서 활자로 찍혀 나온 적도 있었다. 국민학교 때부터 여름방학 숙제로 한 일기 쓰기,  짧은 글짓기로  시작 해, 중고때, 백일장에서 입상해 미제 파커만년필을 상으로 받은 경력밖에는 없는 처지다. 글을 쓰면 쓸수록 어려워지는 것임을 배운다.

나 자신을 쏙 빼고, 비판적인 글이나, 새로운 지식의 정보에 관련된 글,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해야된다는 글은 하루 내내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포함된 내 인격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옮겨 쓴다는 것은 내 자신을 발가 벗기지 않으면 써 질 수 없다.

특히 “방송에세이”를 쓰면서, <행복만들기>주제에 관련된 글을 쓰자니, 하루에 12번도 변덕을 부리고, 조그마한 일에도 신경이 걸리면, 화장실부터 가야하는 나의 체질에 한 주에 한번 쓰는 엣세이가 1년동안 나를 수련해준 훈련관이었다. 마감시간을 초를 재며 시험을 치르듯 자신을 다지는 시간들이었다. 다른 글과 함께 지난 한해 100여편의 에세이를 쓸수 있었던 것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은 다른 사 람에게 함께 나눌 수 있는 격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써야 하기 때문에, 쓰기 전날부터 마음가짐, 감정관리를 잘하고 있어야만 글다운 글이 되는 것을 안다.

글을 쓰는 칼럼형태의 글도 그렇다. 그것도 쓰 고 싶을 때 쓰는 글이 아니라 고정된 마감시간을 앞에 놓고는 더욱 그렇다.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종 중에 하나가 신문기자, 그래서 기자생활을 한 사람의 평균 수명이 가장 짧다고 한다.

인간의 본성을 악(惡)이라고 한 순자의 이론도 있고, 인간의 본성이 선천적으로 선(善)하다는 맹자의 설도 있다. 기독교에는 원죄성이 있고 불가에는 불성이 있다고 한다. 나는 솔직히 어느 학설도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오래전 한국KBS의  인기프로그램 “열린 음악회”를 보았다. 사회정치 어디에나 문제의 현장에 가장 한가운데 앉아 있는 존경하는 김수환추기경이 음악회에 있었다. 음악회에 나온것만으로도 감동을 주었는데, 사회자의 요청으로 독창을 부탁했다. 김추기경은 서슴없이 마이크를 받아 들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애모’라는 유행가를 프로급에 가깝게 불러 주었다. 나는 눈물이 핑돌았다.

그 노래의 내용에 얽힌 사연도 슬펐지만, 나를 감동케 한 것은 김추기경의 사람같은 인간미의 모습이었다. 카토릭의 신부 그중에서도 로마교황청의 추기경 평민인 우리와 거리가 날수밖에 없는 추기경이다.

그런데 그날 김추기경은 그순간에 옆집 밭을 같이 가는 머슴아저씨같이 가까워짐을 느꼈다. 민생속에서 민생과 함께 애환을 노래 할 줄 아는 김추기경이 더 한층 존경 스러웠다. 강론이 날카로와 강남의 부유층 신자들을 향해 ‘금모으기운동’의 강론이 끝나자 마자 7백50명이 참여 51Kg 가량, 싯가 6억8천여만원이 일시에 모아졌다.

“머리와 입으로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나는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사람같은 고백이었다.

나 자신이 기독교에 입문한 동기는 교리가 아니었다. 한 목사의 따스한 인간미였다. 내 평생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김준곤목사님이 있다. 60년대 초 그때는 외국의 유명한 명작이라야 떳떳이 극장에라도 갈 수 있는 고상한 취미로서의 영화관람 그런 분위기의 상황이었다.

목사님은 나를 데리고, 허장강, 김승호, 김지미등이 주연으로 나온 한국영화를 함께 가서 보여주었다. 때때로 당시의 유일한 낭만의 주말여행은 교외선 기차를 타고 백제 송추를 한번 돌고 오는 것이었다.

교외선 아무데서나 내려 시골길 논두렁을 같이 걸으며, 아무 집이나 찾아가 ‘토종닭’을 한 마리 잡아 달라고 해서 농촌향수에 흠뻑 젖어 돌아오기도 했다.

미국에서 초청강사로 만나 호텔 방에서 당신이 즐겨쓰시던 당시에도 지금도 명품 고가인 은장 파카만년필을 손에 쥐어주시던 자상한 스승의 정이었다. 당시도, 지금도 수 십만의 대학생들의 황량한 가슴속에 칼날 같은 메시지를 퍼부어 대던 분이었다. 나는 모든 감화를 그분으로부터 받았지만,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과 내가 매력을 느낀 것은 그분의 사람일수 밖에 없는 사람의 정 인간미 (人間味)였다.

가신지 오래된 고인, 그분이 주셨던 편지들 한구절 한구절에 묻어나는 사람냄새를 다시 맡으며 사람이었기에 느꼈을 외로움과 배신과 세상의 부조리 구조에 함께 묻혀있기도 한다.

때때로 암울한 인간성을 만나고 당할 때마다 나는 나 자 신의 본래 모습으로 환원해 버리고 만 자신을 보면서도, 나의 스승, (그분에게도 결점은 있을지 모른다.) 이 보여준 인간미를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은 풀 수 없는 모순 속에 두 개의 자아, 선성과 악성이 싸우다가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피겨 올림픽을 본다. 가장 잘 미끄러지는 눈과 빙판 위에서, 가장 잘 미끄러지는 신발을 신고, 인간의 총체묘기를 연출해 보이고 있다. 미끄러지기 쉬운 세상 속에 서도 인간성을 다듬은 인간미가 오늘도 내게서 올림픽의 인간발휘처럼, 아름다운 인간미로 피어 나면 좋겠다.

험한 세상 살고, 살벌하기만 인간들의 관계 속에 ‘사이먼과 가핑걸’의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 어…>의 노래가 읇조려지는 시간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인간미가 다리가 되는 세상을 기다려 본다. 그래서, 늑대 이리떼 같은 인간성에게 할퀸 상처도 고운 인간미로 아물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그냥 하고 싶은 작은 이야기를 줄거리 없이 푸념처럼 했을 뿐이다.

글.강용원

음악: 김인배 석양 트럼펫

오다 가다 (김억)

오다 가다 (김억)

오다 가다 길에서
만난 이라고
그저 보고 그대로
갈 줄 아는가.

뒷산은 청청(靑靑)
풀 잎사귀 푸르고
앞바단 중중(重重)
흰 거품 밀려 든다.

산새는 죄죄
제 흥을 노래하고
바다에니 흰 돛
옛 길을 찾노란다.

자다 깨다 꿈에서
만난 이라고
그만 잊고 그대로
갈 줄 아는가.

십리 포구 산 너먼
그대 사는 곳
송이송이 살구꽃
바람과 논다.

수로(水路) 천리 먼먼 길
왜 온 줄 아나.
예전 놀던 그대를
못 잊어 왔네.

  • ‘조선 시단’ 창간호(1929.11)수록.
    7.5조를 바탕으로 한 민요풍의 정형시.
    주제는 옛 정을 그리는 한국인 특유의 인정미.
  • 이 작품은 역시 안서의 다른 모든 작품과 마찬가지로 탁월한 시정신이 보이지 않고, 우리말의 리듬에만 반응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저녁에 (김광섭)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나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디지털 코드속에 인코딩된 사랑이야기…

디지털 코드속에 인코딩된 사랑이야기…

특별한 안경이 발명되어서 우리 주위에서 오가는 디지털 코드를 볼 수 있다면 아마도 견디기 힘든 상황이 벌어질것이다.

인터넷의 붐을타고 함께 주가가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문서나 데이터를 암호화하는 크립토그래퍼(Cryptographer)들 이다. 끝없는 코드의 컴비네이션을 사용해서 매 순간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낸다. 이론상으로 보면 절대로 해독할수 없는 그런 코드들도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에 의해 디크립트 되고, 또다시 크립토그래퍼는 헛점을 보강해서 더욱 강력한 코드를 만들어 인크립트 시킨다. 마치 목숨을 건 전쟁을 연상시키는 디지털 정보시대의 숨막히는 싸움이다. 미국 중앙정보부의 홈페이지에도 누군가 들어와서 엉뚱한 메시지를 남겨놓아 개설한지 얼마 안돼는때에 바로 문을 닫고 말았다.

제로(0)와 원(1)의 컴비네이션…. 너무도 간단한 이 두 숫자가 사람의 두뇌보다도 더 빨리 돌아가려고 하는 시대가 오고있다. 인터넷속의 메마른 코드들중에 그 어느 누구도 해킹할 수 없는 강력한 사랑의 코드를 인크립트 시켜야할 긴박한 시대가 오고있음을 알리는 서곡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너무도 강력해서 디크립트시키려는 해커들의 영혼을 녹이고 그 사랑의 코드 앞에 무릎꿇게 하는 그 코드를 인터넷 전체망에 심는 크립토그래퍼의 역할을 담당할 일군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이다.

-박광택-

정보시대…두통시대?

정보시대…두통시대?

중,고등학생시절 아침에 집을 나설때면 확인하는 물품들이 몇가지 있다. 주머니에 버스 회수권이 2장 있는지, 책가방엔 수업에 필요한 책들이 들어있는지, 도시락속엔 젓가락이 들어있는지…. 별로 생각하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세월은 살같이 흘러 강산이 어느덧 두번 변한 요즘…. 어이쿠, 한번 집을 나서려면 보통 힘든게 아니다. 비퍼의 작동상태는 양호한지, 핸드폰의 건전지 충전상태는 어떤지, 자동차 레이더 디택터(남들보다 조금 빨리 운전하는 버릇 때문에 할 수 없이 장만한 장난감)의 소리는 잘 들리는지, 디지털 녹음기는 주머니에 들어있는지, 그리고 외워야할 비밀번호는 왜그리도 많은지… 집주소와 전화번호는 기본이고, 버퍼번호, 핸드폰번호, 크레딧카드 비밀번호, 이메일 비밀번호, 소셜시큐리티번호, 컴퓨터 로그온 비밀번호 (왠 비밀이 이리도 많은지 원~), 보이스메일 비밀번호, 핸드폰 아무나 못쓰도록 잠근거 푸는 비밀번호, 등등… 머리가 아프도록 많은 종류의 물품과 번호들을 한번 점검한다. 가끔 혼자생각하며 히쭉 웃는이유는 문앞에 나가다가 층계에서 넘어져 머리에 충격이라도 가면 그 모든 내용들이 지워질것만같은 불안감(?)에 나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를 내뱉는다.

이젠 요즘시대를 단순한 정보시대가 아니라 정보의 홍수시대라고 부른다. 그 뜻은 잘못 한눈을 팔게되면 무조건 받아들이는 정보에 치여서 그만 그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본전(?)도 못찾고 뒤로 자빠진다는 이야기일것이다. 요즘이야말로 명철한 지혜와 냉정한 판단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홍수와같이 밀려오는 정보속에서 정말 내게 필요한 정보를 얼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추려내는가에 따라서 나의 앞날이 좌우될수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사람들은 그리도 많은 정보관련 전자제품들을 허리에다 차고, 가방에 넣고, 손에들고 다니며 마치 이동 사무실 그 자체인양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인터넷 검색을 하는모양이다.

컴퓨터를 처음 사용하는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컴퓨터에 대한 오해(?)를 하는 것이 있다. 컴퓨터만 있으면 나는 아무것도 안해도 컴퓨터가 알아서 모든일들을 척척 해결해 줄것이라는 야무진(?) 기대가 그것이다. 하지만 일단 컴퓨터앞에 앉아보면 그 모든 기대와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눈앞에 떠오르는 시커먼 절망감에 그만 컴퓨터를 원망하며 “이거~ 내가 넘 않좋은 컴퓨터를 구입했나?” “컴퓨터도 별수 없구먼…” “내가 속아서 샀어~” 등등 다양한 얘기들을 혼자서 중얼거린다.

컴퓨터를 정말 컴퓨터처럼 사용을 하려면 사용자의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컴퓨터의 장점은 아무런 불만없이 한번 가르쳐준 내용은 고장이 나지 않는한 절대로 까먹지 않으며(흠…사탕은 주지말아야겠군),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사용자의 구미에 맞도록 요리를 해서 정리된 깔끔한 내용을 다시 돌려주어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정보를 그때그때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런 장점을 이해하려면 아마도 신세대의 감각이 필요한가보다. 기성세대, 그중에서도 기독교계의 지도자들은 그것을 안다고는 하지만 이해까지는 못하는 현실인 것 같다. 현재가 정보시대란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두통시대라고 착각을 하고들 있는 것은 아닌지 왠지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

21세기를 코앞에 두고서…. 던지고싶은 질문…. “여러분은 21세기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혹시…정보시대를 두통시대로 오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박광택-

“온라인 상점을 개업하려면 모가 필요해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구축된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의 효율성을 잘 알면서도 그에 따르는 고가의 개설 비용과 유지비 감당의 어려움으로 EDI는 중소기업 보다는 자본력이 강한 대기업들의 전용물이었다. 한편 인터넷을 통한 EC(Electronic Commerce)의 보급은 중소기업은 물론 가족단위로 운영되는 소규모 개인 사업체들에게 까지도 EDI와 같은 사업의 디지털화, 자동화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을 들여 온라인상점 개설을 도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새로운 상권을 이루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이러한 E-Commerce의 대중화에 힘입어 수많은 개인 사업가들이 온라인상점 개설을 계획하는 중에 첫째로 대면하는 문제는 대부분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하는지를 모른다는것이다. EC 경영인으로서 온라인상점을 개설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일은, 쉽게 표현해서 자신의 개인 건물을 짓고 그곳에 상점을 꾸며서 종업원을 두고 장사를 할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말은 온라인상점 개설을 위해 인터넷서버와 전용선을 구축하고 그에 관련된 여러가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기술력을 구입하는 동시에 가장 중요한 문제로 든든한 자본력으로 그 모든 설비와 인력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 가장 경제적이면서 손쉬운 방법으로는, 온라인상점을 맨땅위에 처음부터 짓는것보다는, 웹호스팅 서비스, 즉 이미 지어진 건물에 장소를 빌리는것이다. 이 방법은 인터넷상에서 사업의 꿈을 이루고자하는 소규모 사업가들에게 가장 적합한것으로 막대한 투자를 요구하는 인터넷 전용서버, 다단계 고속전용선, 그리고 아직까지도 설치와 관리가 쉽지않은 온라인상점 소프트웨어를 바탕으로하는 인프라구조를 구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있다.

만일 당신이 정말 든든한 자본과 원대한 포부가 있다거나, 또는 전문기술진이 이미 일하고있는 대기업에서 일을하며 자체의 온라인상점을 처음부터 구축하기로 결정했다면 운영하고자하는 상점의 목적에 알맞은 소프트웨어 선정을 우선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웹호스팅 서비스를 받기로 결정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선정에 앞서서 몇가지 그 회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벤더로서의 자격
    • 직원 수
    • 웹페이지 제작자 수
    • 고객 수
    • 기술지원을 위한 회사 운영시간
  • 웹페이지 제작을 위한 기능
    • 허용하는 서버 디스크용량
    • 월별 허용하는 데이터 전송 용량
    • CGI, JavaScript, Java 지원여부
    • 데이터베이스 연결성(현재 갖고있는 DB와의 연결성)
    • 다국어 지원여부
    • 온라인상점 소프트웨어 지원여부
    • FTP, Telnet을 통한 파일전송 지원여부
  • 서비스
    • 금액결재 보안기능 (CyberCash, SSL, VeriSign)
    • 페이지 접속수 통계 및 분석기능
    • 그외 관련 보안기능
  • E-Mail
    • 제공하는 E-Mail 계정 수
    • 인터넷 표준 E-Mail 방식 지원여부 (POP3, IMAP4)
    • 자동 E-Mail 바이러스 검색기능
  • 운영
    • 서버운영환경
    • 웹서버 제작회사, 종류
    • 웹서버 소프트웨어
    • 보장된 서버운영시간 (하루24시간, 주7일, 일년365일)
    • 전용선 종류와 수(T-1, T-3, ISDN)
    • 웹서버 수
    • 웹서버에 개설되어있는 웹사이트 수(평균)
    • 지역서버에 정기적 데이터 백업여부
  • 비용
    • 설치비
    • 유지비
    • 그 외 들어가는 상세한 조목별 비용

-박광택-

“찔레꽃 향기”

강용원 편지-

사람마다 나는 냄새가 있다. 어떤 향기일까

“찔레꽃 순정(純情)의 향기”

꽃에 따라 향기가 나듯이 사람따라 나는 냄새같은 인품의 향기기가 다르다.

냄새중에 가장 악취는 사람 썩는 냄새라고 한다. 그보다 더 고약한 악취는 인품이 훼손되는 썩는 냄새 일것이다.

사람마다 나는 냄새가 있다. 어떤 향기일까

찔레꽃향기는 순수하다. 어딘가 외로운듯 어딘가 수줍은듯 슬픈듯이 사람의 눈을 피하고 싶은 곳에 숨어 피는 

꽃이다. 고운 여인의 소복입은 순정 같다.

– 찔레 향기 휘도는 초 여름 숲속에서 –

초여름 숲속에 피는 찔레꽃을 본다. 화려한 봄꽃들이 한바탕 제 자랑을 하고 간 뒤, 숲속 어디 선가 풍겨오는 향기가 있다. 순수한 향기, 순박하면서도 어떤 품위를 높여 주는 향기다. 인간 의 언어로는 그 향기를 표현할 수가 없다. 아련한 향수를 온 산천에 뿌려 놓는다. 

나는 찔레꽃 향기가 휘날리는 여름밤이 행복하다. 코를 가까이 대어야 맡을 수 있는 꽃향기도 있지만 찔레 꽃은 아무도 모르게 온 숲속을 헤치며 그 향기를 뿌리고 다닌다. 

화려한 장미과의 족보를 가지 고 있으면서도 그것도 숨겨둔채 찔레는 순박하게 가냘픈 작은 꽃으로 소복의 흰색으로 수줍게 도 핀다. 찔레를 보면 나는 어쩐지 순정(純情)이라는 옛이야기 같은 향수에 젖는다.

찔레꽃을 미국에서 보면서, 찔레꽃은 우리 한국에서 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해본다. 찔레는 죽은 가지에는 월계관을 씌워주고, 가냘픈 나무는 신부의 레이스를 입혀 격려해 주는 꽃이다. 무리를 지어 팀웍으로 얽혀 살고, 꺾일수록 잘릴수록 더욱 뻗는 찔레의 끈질김이 있다. 도둑을 막아주는 담장을 만들어 악을 저지할 때 가시를 쓸 줄 아는 꽃이다.

눈 속에 피어나는 매화, 서리 맞고도 피는 국화, 진흙 속에 피는 연꽃, 그리고 사시사철 푸르고 곧기만 한 송죽(松竹)은 뜻이나 절개가 그 화품이요, 치자, 동백, 사계화 등은 깐깐한 기골이 그 화품이요, 모란과 작약은 부귀(富貴)가 화품이며, 해바라기, 두충(杜沖)은 충(忠)과 열(烈)이 화 품이고, 박꽃, 맨드라미, 봉선화는 절개와 성실함이, 진달래 개나리는 분명한 거취가 그 화품이다.

동물을 인간성의 야욕성에 비교하고, 꽃은 인간성의 품위를 상징한다. 인간의 성격도 품위도 꽃 향기 만큼 다양하다. 늑대나 여우같은 사람성품이 있는가 하면, 옥잠화 같고 달맞이꽃 같은 향 기를 발하는 인품이 있다.

꽃에 따라 향기가 나듯이 사람따라 나는 냄새같은 인품의 향기기가 다르다.

냄새중에 가장 악취는 사람 썩는 냄새라고 한다. 그보다 더 고약한 악취는 인품이 훼손되는 썩는 냄새 일것이다.

사람마다 나는 냄새가 있다. 향기일까 악취일까

찔레꽃향기는 순수하다. 어딘가 외로운듯 어딘가 수줍은듯 슬픈듯이 사람의 눈을 피하고 싶은 곳에 숨어 피는 

꽃이다.

호수에 물방울 하나 일렁일 때 내 마음도 같이 출렁이고, 풀잎하나 바람에 흔들릴 때, 들꽃 하 나 반겨줄 때 내 마음도 덩달아 미소짓는 자연과의 대화 없는 인간성은 잔혹할 수밖에 없는 문명이 만든 괴물에 불과하다. 밤하늘 별들과 속삭일 줄 모르는 인성벙어리 마비, 철근 콘크리트에 철판 을 깐 심장으로 어찌 인간들끼리인들 훈훈한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것인가.

200리길 찔레꽃 피어 있는 먼 이국땅, 미국의 허드슨 강변을 달리며 오늘 따라 차창이 몇 번이 나 짙게 흐려지고 있다.         

글.강용원

거짓말 세상 미친 세상


조선일보

http://www.chosun.com/bin/w20_output?199704220222

개 | 자 기

DIGITALCHOSUN 朝鮮日報

4/22(화) 19:13

· 국제 · 문화/생활

거짓말 세상, 미친 세상 – “Back to The Basie” “지금이 이러고만 있을 때인가?” 이런 거짓말에 미친 세상에도, 그러나 돌고있는 팽이는 넘어지지 않는다. 세상이 온통 거미줄에 걸리듯 거짓말에 걸려 있다. 누가 보아도 미친 세상에 제정신 나간 것들에게 민생을 맡겨 놓고 어이없는 허탈감에 주저 앉을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울분과 분노와 배신감에 밤새워 치를 떤 이미 엎질러진 역사다. 그렇다고 우리는 이대로 주저 앉아 있기에는 위기의 파국이 우리 눈앞에 있다. 50여 년을 벼루고 기다리던 민족의 결말이 초 읽기에 들어 갔다. 우리가 떠나온 우리 조국, 눈감아 버릴수도 없고, 귀를 들어 막고 있을 수만도 없는 것이 큰 병이다. 초를 재는 위기감이 긴박감으로 가슴을 조여온다. – 요지음 세상 보기가 하 엮겨워 가신다면 …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말이라도 실컨 지껄이다가 망신당한 내꼴을 지저분한 그대로 텔레비전에 고이 보여 드리오리다. 소원이 아직 살아 있으면 이런 시 감으로 변해 있을까… 한심하다 못해 엮겨운 오늘의 한국의 모습이다. 어쩌다가 이꼴이 되고 말았을까?이제 한국은 다시 한번 세계를 둘러보고 제정신을 차리고 제위치로 돌아 와야 한다.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는 희미해 진 허망한 옛 추억일 뿐이다. 추억은 숨막히는 현실에서는 고비용 사치성 낭비다. 매몰된 추억을 파내는 것보다 오늘 하루의 새로운 일과가 더 시급하다. 과거에 몰두한 그 집착성 편집병에서 벗어나야 산다. 현실은 과거보다 시급하다. 지금이 도대체 몇시인데 달밤에 벗어 부치고, 청문회라는 회괴한 정치 제조나 하고 있을 땐가?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과거만을 파고드는 집착에서는 벗어나야한다. 죽은 무덤을 파헤치는 삽을 이제 다시 새 꽃 모종을 심는 삽으로 바꿔야 산다. 인간의 거짓은 인간성 원죄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인간의 정신 착란도 거짓말에서 초기 증세를 보인다. 몇 년전부터 미국에서만 100만부 이상의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는 정신과 의사, 스캇 펙(M. Scott Peck)의 「거짓의 사람들」-People of The Lie 과 끝없는 방황」 -The Raodless Traveled-은 악의 심리학이 거짓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그가 정신과 의사로 40년 이상 임상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거짓을 뽑을수 있는 방법은 인간자체가 아닌 다른 힘, 하나님의 사랑의 치유에서만 온다고 결론 짓고 있다. 무종교인 그가 기독교로 귀의했다. 거짓말에는 색갈이 있다. 해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슬쩍 슬쩍 흰 거짓말, 동료 사이에 자주하는 알면서도 속는척한 새파란 거짓말, 중국 모택통시절에 자주했던 새 빨간 공산당 거짓말, 북한 김정일이 하고 있는 잡아떼고 뒤집어 씨우기 새까만 거짓말, 요새 새로 생긴 깃털이 몸통으로 둔감한 한보 거짓말도 있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의 거미줄을 쳐야 하는 생리를 가지고 있다. 요새 되어가는 세상은 현란한 거짓말 서커스에서 온통 거짓말 요지경을 보는 느낌이다. 상대주의, 복고주의, 상황 주의가 혼동된 와중에, 이를 호기로 삼고, 밑 빠진 독 같은 자신의 이기주의 욕구충족에 혈안이 된지 오래된 한국 병이다. 누가 누구를 탓할수 있을 것인가. 우리’ 모두는 사실 우리 모두 자신들이 그 웅덩이에 그 올챙이들이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는 모두가 공범자다. 이 혼란의 뒤엉킨 실타래를 인간성 스스로만 풀기에는 너무도 그 뿌리가 깊다. 풀려고 하면 풀려는 것 만큼 얼키고 만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Back to the Basic” 다시 한번 인간의 기본 추구인 진·선·미를 추구하는 지 정의 인격을 세우는 일로 겸손히 인간의 기본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때다. 성서는 인간을 일러 “발끝에서부터 머리털 까지 성한곳이 없다”… “사람의 마음은 천길 물속이라 아무도 알수 없지만, 이 야훼만은 그 마음을

뚫어 보고 뱃속까지 환히 들여다 본다. 그래서 누구나 그 행실을 따라 그 소행대로 갚아 주리라. 부정으로 축재하는 사람은 남이 낳은 알을 품는 자고새 와 같아, 반생도 못살아 재산을 털어먹고 결국은 미련한 자로서 생을 마치리라.” – 공동번역 이 자고새 (partridge)는 레바논과 사해 부근 암벽에만 서식하는 새다. 아랍인들은 이 새는 다른 새가 낳은 새의 알을 훔쳐다 품고 부화시키면 그 아이 새가 다시 어미새에게로 다시 돌아 간다고 한다. 우리는 진선미를 이상으로 추구하며, 인격을 새롭게 가꾸며 살기위해 저마다 종교를 가지기도 하고 국가는 법질서를 만들어 정치구조를 이룬다. 인간의 인간됨을 돕기 위해 생겨난 이 정치구조와 종교구조가 아이러니칼 하게도 인간을 위해서 섬기는 척, <인간 위에서 군림하며 인간됨을 가장 악랄하게 짓밟고 있는 현실이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올가맨 거짓이 탄로되면 죽음으로 몰고가는 종교성 때죽음 파국이 극성하고 있고, 자유와 풍요로운 삶을 미끼로 권력구조악은 사상 유례가 없는 아사직전의 인간으로 생매장 하고 있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그 정신에 거미줄 치듯 한다. 그 다음 거짓말은 실처럼 가늘게 얽어매고, 그 다음은 동아줄로, 그 다음은 쇠줄 고랑이 되어 제정신을 올가메는 것이 정신병이다. 거짓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정신병이고, 그 거짓에서 풀려 나는 자유가 제정신이다. 사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정신병적 거짓 증세가 있다. 과대망상도 있고 열등의식도 있다. 나 한마디의 거짓말은 자신뿐 아니라 동포사회를, 국가와 민족을, 그리고 세계를 온통 미친 세상으로 만들어 갈것이기 때문이다. 돌고 있는 팽이는 넘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원심력과 관성운동의 법칙 이 중력 인력에 저항하며 이길 때 도는 힘으로 서 있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꺼구로 가고, 거짓이 아무리 우리를 올가메고 있을지라도 넘어지지

않아야만 하겠다. 제 정신으로 제 자리에서 제 할일을, 진선미를 가꾸며 제 인격을 지키고 성숙시켜야 살아 남는다. 새로 돋은 새순들이 눈에 싱그럽다. 끊임없는 생명 재생의 원리다. 자연은 새것으로의 노력을 쉬지 않는다. 그것이 쉬면 죽음이 된다. 바람을 타는 연은 떨어지지 않는다.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 다시 달려가자, 인간의 기본 진선미 추구로, 인격의 지 정의의 조화된 제정신으로 삶의 아름다움을 가꾸워 내자. 이런 거짓말 세상 미쳐난 와중에서도, 제 정신으로 돌고 있는 팽이는 넘어지지 않는다. <강용원, 해외 가 E-Mail : ywkdtribeca.i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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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목사 “나는 민족복음화를 위하여 폭탄같이 불덩어리가 되어 왔습니다”

김준곤 목사 “나는 민족복음화를 위하여 폭탄같이 불덩어리가 되어 왔습니다”
한국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가 1976년 동경에서 도미(渡美)한 제자 강용원에게 보낸 서신
 뉴스파워
김철영
이 서신은 한국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가 도미(渡美)한 제자 강용원에게 1976년 동경의 한 호텔에서 쓴 서신을 입수했다.

그는 이 서신에서 “나는 민족복음화를 위하여 폭탄같이 불덩어리가 되어 왔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대학생 사역을 기반으로 “민족의 가슴마다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슬로건을 외치며 전력했던 민족복음화에 대한 비전과 헌신 그리고 열정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짐작케 한다.  

강용원 간사는 고려대CCC 출신으로 CCC 초기에 김준곤 목사를 도와 사역을 하면서 1964년 1월 27일에 창간한 <CCC편지> 초대 편집장을 역임했다.

강 간사는 1966년 3월 8일 조선호텔에서 열린 제1회 대통령 국가조찬기도회를 윤두혁 총무와 함께 준비를 도맡았다. 이후 1971년 12월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CBS방송국에서 10년 근무 후 미주한국대학생선교회(미주KCCC)를 설립해 초대 대표를 역임했다.
강 간사는 김 목사가 “군”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제자였다. 또한 김 목사는 강 간사의 뛰어난 문장력을 칭찬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이 서신에서 “학생만을 위한 채플을 시작했습니다. 샘터, 용광로, 폭풍의 눈, 무엇일지 모르나 만들어보겠습니다.”고 썼다.

이어 “84명의 대학생들이(대전․공주)집단으로 一周(일주)금식을 했고 우리도 3一間(3일간) 금식을 했습니다. 在美(재미) 형제들도 3一間(3일간)만 이번 여름 금식기도 했으면 싶습니다.”면서도 “그러나 무리는 말아야지요. “고 했다. 

특히 이 서신에는 박정희 대통령과의 친분 관계로 인한 “어용목사”라는 시선에 대해서도 토로하고 있다. 김 목사는 “내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어용목사”라는 낙인이 찍혔을 때 ‘주홍글씨’의 女主人(여주인)처럼 수모를 잉태한 채 살기로 결심한 그날부터 나는 강군은 알고 있다고 독백했습니다.“라고 하면서 ”나는 朴大統領(박 대통령)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조국은 사이공 함락 1個月(1개월)이 못되어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라고 썼다. 이어 “사이공에 孟君(맹군)이 들어오는 날 한 女大生(여대생)이 쓴 ‘백기(白旗)’라는 시가 있었습니다. ‘후회라고 쓸까요? 자유라고 쓸까요? 통일이라고 쓸까요? 백기에는 쓸 말이 없습니다.’”라는 시를 인용한 후

“간음한 현장(現場)에 끌려온 여인에게 저마다 돌을 든 독기 서린 무서운 표정들 속에 나는 털이 뜯기우고 상처마다 피가 배고 다리 절며 종로 바닥 아스팔트 위에 소리를 질러보는 한 마리 속죄양 같은 모습이 지금의 나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 CCC 김준곤 목사가 강용원 간사에게 1970년대 동경에서 보낸 편지     ©뉴스파워

 김 목사는 또한 자신의 설교를 카세트 녹음해 보내겠다 했다. 당시 미국에 가 있던 CCC 나사렛형제들은 김 목사의 설교테잎을 듣고 또 들으면서 조국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했다. 이 서신에는 강용원 간사의 교회 육성작업을 격려하고 있다. ‘예수의 유일성’,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 ‘성령 충만 받는 방법’, ‘그리스도 안에서 증거하는 방법’, ‘4영리 전도 방법’ 등 ‘지도자 훈련 과정’(LTC)을 교회에서 실시하는 것을 축하한 것이다.

 그러면서 “성령 충만도 예수 영접만큼 쉽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동남아 一帶(일대)도 예수의 불이 붙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그 교재들을 보냈다면서. “사람을 뭉치게 하시오. 뭉침의 힘, 모임의 힘, 운동의 힘을 키웁시다.”라고 도전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복음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도전한 것이다.

이러한 챌린지에 힘입어 강 간사가 10년 간 근무했던 미국CBS를 그만두고 한인 대학생사역에 헌신하게 만든 동력이 되었다. 강 간사는 미주한국대학생선교회(미주KCCC) 초대 대표간사를 역임했다.


 다음은 서신 전문. 

사랑하는 강군 동남아로 다니다가 동경에 들렀습니다. 나의 전존재를 소파에 던져버리고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에게 편지를 씁니다. 전에도 나는 그런 버릇이 있었습니다. 이럴 때의 나는 어느 때보다 인간적이고 성실합니다. 

오랜 그리움과 외로움, 고달픔, 서러움 같은 것이 의식의 지하실에서 멍이 들었다가 이런 때는 감각증상으로 나타납니다.
강군의 편지를 이번 여행 중 소중한 문서처럼 품에 지니고 다니다가 다시 펴서 읽고 내 고달픈 센티멘털 애수를 달래기도 합니다. 지금은 半白(반백 ) 50을 넘은 歸路(귀로)의 가을 길에 내 인생고락을 밟고 거닐며 향수처럼 그려보는 시간입니다. 

강군과 나만 아는 이야기와 가난과 고통이 있지요 우리는 둘 다 음치였지만 같은 곡조로 부르던 G線上(선상)의 앨리지가 있었지요. 내 눈에 눈물이 고일 때 강군의 눈도 으레 젖어 있었지요. 주님과 조국을 진달래처럼 가난하고 메마른 전라도 황톳길 한하운 씨의 문둥이 문질러 떨어진 발가락 하나 묻어둔 비탈길에 알뜰히 심고 싶은 궁상맞은 못생긴 생각들을 우리는 비전이라고 불렀지요.

강군과 나의 신앙 世界(세계) 속에는 원시의 산야처럼 잡초와 이질의 백화들까지 반발했을 그대로의 우리 나름의 시(詩)였습니다. 

누가 맛있는 젓갈을 가져오면 나는 강군을 안 생각한 일이 사실이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내 설교가 은혜롭기보다는 슬펐을 때 저 청중 어느 구석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을 강군의 모습을 비껴간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 김준곤 목사와 강용원 간사     ©뉴스파워


 내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어용목사”라는 낙인이 찍혔을 때 “주홍글씨”의 女主人(여주인)처럼 수모를 잉태한 채 살기로 결심한 그날부터 나는 강군은 알고 있다고 독백했습니다.

나는 朴大統領(박 대통령)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조국은 사이공 함락 1個月(1개월)이 못되어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이공에 孟君(맹군)이 들어오는 날 한 女大生(여대생0이 쓴 “백기(白旗)”라는 시가 있었습니다.

“후회라고 쓸까요? 자유라고 쓸까요? 통일이라고 쓸까요? 백기에는 쓸 말이 없습니다.”

간음한 현장(現場)에 끌려온 여인에게 저마다 돌을 든 독기 서린 무서운 표정들 속에 나는 털이 뜯기우고 상처마다 피가 배고 다리 절며 종로 바닥 아스팔트 위에 소리를 질러보는 한 마리 속죄양 같은 모습이 지금의 나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나와 강군은 가난했지만 치사한 것이 싫었습니다. 나는 강군이 알다시피 사실은 내 못된 성격 때문에 아내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때로는 아무대도 주소가 없는 떠돌이이기도 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서서 내 영을 외치고 싶습니다.
나는 민족복음화를 위하여 폭탄같이 불덩어리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한국 민족의 망국병은 자기보다 잘하는 일을 찢어 발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운명을 각오해야 합니다. 깊은 고독의 참 의미는 예수님의 골고다 옆에 서보면 알 수 있지요.

강군과 나는 못내 모질고 사특하지는 못했습니다. 강군이 커서 모든 얘기를 하게 됐군요. 내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리고 내게서 내가 세상에서 받은 모든 울분을 모조리 강군에게 퍼부었던 아픔을 받으면서도 강군은 너무도 내게 관대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一生(일생) 강군에게 사랑의 부채자였습니다.

유언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내가 죽으면 강군이 맨 앞에서 내 관을 매주십시오. 미국인의 은혜는 기쁨과 행복과 平安(평안)이었지만 우리들의 은혜는 항상 눈물 속에 있었지요. 강군은 고난과 가난의 바닥까지 알고 있지요. 강군은 나의 나쁜 것까지 닮아 걱정입니다.

돌아가면 고대 앞에 강군의 모교이기도 한 고대 앞에 방을 얻고 나는 개인 전도를 시작할 작정입니다. 학생만을 위한 채플을 시작했습니다. 샘터, 용광로, 폭풍의 눈, 무엇일지 모르나 만들어보겠습니다. 84명의 대학생들이(대전․공주)집단으로 一周(일주)금식을 했고 우리도 3一間(3일간) 금식을 했습니다. 在美(재미) 형제들도 3一間(3일간)만 이번 여름 금식기도 했으면 싶습니다. 그러나 무리는 말아야지요. 카세트 녹음해 보내겠습니다.

일본의 新國肉彈(신국육탄)처럼 성상문, 박팽년 사육신의 충성처럼 열녀춘향의 절개처럼 주님과 조국과 우리들을 위한 뭉침이 50명만 미국서 굳어질 수 없을까요. 기도해보십시오. 강군, 그것이 100명이면 더욱 좋습니다. 생명공동체인데 어찌하여 자라지 못할까요. 헌금운동은 마음을 묶는 귀한 수단이고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약 50%는 한국 나사렛이 담당합니다. 회관을 수익성 사업으로 만들려고 계획 중입니다. 그리되면 외상으로라도 경제자립하고 싶습니다. 

강군의 교회 육성 작업을 축하합니다. 성령 충만도 예수 영접만큼 쉽게 해야 합니다. 동남아 一帶(일대)도 예수의 불이 붙고 있습니다. 그 교재들 보냈습니다. 경수는 귀한 사람입니다. 박원배 군도 귀한 사람입니다. 강군, 사람을 뭉치게 하시오. 뭉침의 힘, 모임의 힘, 운동의 힘을 키웁시다. 

김준곤   


인생의 베틀 같은 세월의 다리를 건넌다…

강용원편지-

인생의 베틀같은 세월의 다리를 건넌다.

-헝크러진 희망의 실타래를 물고-

“다리를 가만히 보면 옛날 우리 어머니가 베틀에 앉아 한 올 두 올, 북채를 왼쪽 오른쪽으로 왕복시키면서 발로 그것을 다져 가며 베를 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어머니는 명주실로 비단도 짜시고, 삼베도 짜셨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저마다 자기 인생의 베틀에 앉아 저 나름대로의 옷감을 짜다 간다. 다리를 건너면서 나는 오늘도 밑에 흐르는 허드슨 강물을 보면서 베 옷감으로 짜여지고 있는 내 인생을 본다. 비록 그것이 무명베라도 내가 짠 것이기에 더욱 귀하게 보인다. 오늘도 다리를 건너면서 나의 꿈을 짠다”

▲오늘도 나는 행복의 다리를 건너간다    

뉴욕에는 다리가 여러 개 있다. 밤에 보면 더 아름다운 다리들이다. 스테이튼 아일랜드를 잇는 베르자노 브릿지는 우아한 자태의 여성상이고 뉴저지를 잇는 조지 워싱턴 브릿지는 기상이 넘치는 남성상이다. 다리 건축사의 명물로 150년이 넘은 브루클린 브릿지는 고운 레이스를 걸친 신부의 가려진 얼굴 모습이다. 롱아일랜드를 잇는 드록넥 브릿지를 안개 낄 때 건너가면 어느 천상의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이 다리들을 건너가고 건너오고 있다. 쓸데없는 일로 다리를 건너가고 건너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뉴욕같이 비싼 브릿지 톨을 내면서는 더욱 그렇다. 다리를 생각하면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 〈콰이강의 다리〉가 생각난다. 그 주제음악도 좋아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내 기억 속에 35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한 연합군의 다리 파괴작전이다. 마지막 그 다리가 폭파되면서 그 다리를 통과 중인 일본 기차가 산산조각이 되어 공중에 나뭇잎 날리듯 산화되는 장면을 보고 영국군 장교가 외쳤던 말이었다.

“미쳤다. 미쳤다. 우리 모두는 미쳤다.” 같은 인간들끼리 목숨을 걸고 만든 다리에 목숨을 걸고 다이너마이트를 장착해서 그 다리를 지난 사람이나 그 다리를 파괴한 사람이 거의 모두 함께 죽어 없어지는 라스트 신이었다.

다리를 건넌다는 말은 운명적인 결단의 동의어로도 쓰인다. ‘돌아 갈 수 없는 다리’-no return bridge-가 판문점에 놓여 54년 간 남과 북을 갈라놓고 있다. 다리는 건널 수없는 곳을 이어 주고, 끊기어진 절망을 잇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경의선 복구에 돌아 올 수 있는 다리를 기대하다 지친 나는 최근 북쪽군 용역부대가 철수했다는 소식에 절망감이 가슴을 에이고 있다.

나는 뉴욕에서 50년째 살면서, 13년은 뉴욕에서 밖으로 나가면서 다리를 건넜고 40여년은 뉴욕을 들어가면서 이 다리들을 건너고 있다. 뉴욕의 다리들 중 나는 특히 조지 워싱턴 브릿지를 가장 좋아한다. 특히 허드슨을 가로질러 세계의 중심 맨하탄이라는 바위섬과 미국의 대륙을 잇고 있는 이 다리는 그 이름부터가 상징적 미국의 미래를 이어주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허드슨 강변은 초봄의 기운에 가장 예민하다. 웨스트사이드 하이웨이 강변 도로는 워싱턴의 벚꽃을 가장 먼저 받아 피게 하고, 강변의 개나리는 2백 리 길 웨스트포인트까지 끝없는 찬란한 봄축제의 꽃길을 강변으로 치장을 하기 때문이다. 허드슨 강을 따라 베어마운틴을 중심으로 미국 현대 문학의 산실로, 워싱턴 어빙의 ‘립반윙클’ 같은 20년 세월이 술 한 잔 속에 흘러버린 신비로운 꿈의 세계가 펼쳐지는 곳이다.

RIP VAN WINKLE 이야기 유화

이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가고 건너올 때마다 나는 어떤 행복감에 젖게 된다. 지금까지 이 다리를 몇 번이나, 무엇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건넜던 것일까?! 다리를 가만히 보면 옛날 우리 어머니가 베틀에 앉아 한 올 두 올, 북채를 왼쪽 오른쪽으로 왕복시키면서 발로 그것을 다져 가면서 베를 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어머니는 명주실로 비단도 짜시고, 삼베도 짜셨다. 다리 위를 왕래하는 수많은 자동차들은 마치 저마다 실 꼬리를 물고 왼쪽 오른쪽으로 왕래하는 실 북처럼 보인다. 조지 워싱턴 브릿지는 베틀이고, 그 밑에 도도하게 흐르는 허드슨 강은 계절 따라 짜여지고 있는 옷감이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저마다 자기 인생의 베틀에 앉아 저 나름대로의 옷감을 짜다 간다. 다리를 건너면서 나는 오늘도 밑에 흐르는 허드슨 강물을 보면서 베 옷감으로 짜여지고 있는 내 인생을 본다. 비록 그것이 무명베라도 내가 짠 것이기에 더욱 귀하게 보인다. 오늘도 다리를 건너면서 나의 꿈을 짠다. 그리고 다시 희망의 미래를 비단 옷감으로 짜고 싶은 것이다.

행복의 옷감을 짜고 싶은 것이다. 행복은 자신이 짜고 있는 인생 속에 결과로, 의미와 보람으로 안겨지는 것이지, 행복을 목적 자체로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쯤 서울은 가로수 은행나무마다 새 순이 나고, 이제 곧 인왕산과남산에 아카시아 꽃향기가 휘감고 돌 것이다.

생명의 보람은 고난을 통과해서 왔다. 우리의 행복, 생명은 고난 속에서 영글어진다. 행복의 라일락 꽃을 함께 피워 가는, 함께 나누는 고난과 행복 신록의 절기가 되기를 바라고 싶다.

그래서 나는 끊어질지도 모르는 조바심을 안고라도, 행복을 짜 내려가는 강물을 보며 오늘도 이 다리를 건너가고 있다.

글. 강용원

흐르는 음악은

Beethoven Violin Sonata No 5 in F Major Op 24 Spring  2 Adagio molto espressivo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