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미(人間味)와 인간성(人間性)

<강용원 편지>

“인간미(人間味)가 인간성(人間性)을 덮는다”

– 에세이를 쓰면서 생각한다 –

인간미는 인간성에 맛을 더한 말이다.

똑 같은 인간인데 인간미가 있는 인간이 있고 인간미 없는 사람이 있다.

똑 같은 사람인데 사람 맛이 나는 사람있는가 하면 화려한 학벌과 경력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껄껄하게 모래알 씹히는 사람맛이 메말라 빠진 인간도 있다.

만나면 정감이 흐르는 친밀감이 이는 사람이 있고 썰렁한 얼음판 같은 사람도 있다.

인간성이라는 어려운 정의를 내릴수는 없다. 인간성이 본래 악이냐 선이냐는 인류의 시작부터 논란이 된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있다.

………………………………………

나는 문단에 정식 데뷔 한 적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글을 써 온지 60여년이 되는것같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느끼고 배워가는 것이 많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인가도 새삼 깨닫는다.

어쩌다가 글을 쓰게 되었는지 어떨 때는 처량해진 자신을 한탄한 적도 있다. 한때는 여기저기 한 달에 6편의 새 글을 써서 8곳에서 활자로 찍혀 나온 적도 있었다. 국민학교 때부터 여름방학 숙제로 한 일기 쓰기,  짧은 글짓기로  시작 해, 중고때, 백일장에서 입상해 미제 파커만년필을 상으로 받은 경력밖에는 없는 처지다. 글을 쓰면 쓸수록 어려워지는 것임을 배운다.

나 자신을 쏙 빼고, 비판적인 글이나, 새로운 지식의 정보에 관련된 글,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해야된다는 글은 하루 내내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포함된 내 인격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옮겨 쓴다는 것은 내 자신을 발가 벗기지 않으면 써 질 수 없다.

특히 “방송에세이”를 쓰면서, <행복만들기>주제에 관련된 글을 쓰자니, 하루에 12번도 변덕을 부리고, 조그마한 일에도 신경이 걸리면, 화장실부터 가야하는 나의 체질에 한 주에 한번 쓰는 엣세이가 1년동안 나를 수련해준 훈련관이었다. 마감시간을 초를 재며 시험을 치르듯 자신을 다지는 시간들이었다. 다른 글과 함께 지난 한해 100여편의 에세이를 쓸수 있었던 것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은 다른 사 람에게 함께 나눌 수 있는 격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써야 하기 때문에, 쓰기 전날부터 마음가짐, 감정관리를 잘하고 있어야만 글다운 글이 되는 것을 안다.

글을 쓰는 칼럼형태의 글도 그렇다. 그것도 쓰 고 싶을 때 쓰는 글이 아니라 고정된 마감시간을 앞에 놓고는 더욱 그렇다.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종 중에 하나가 신문기자, 그래서 기자생활을 한 사람의 평균 수명이 가장 짧다고 한다.

인간의 본성을 악(惡)이라고 한 순자의 이론도 있고, 인간의 본성이 선천적으로 선(善)하다는 맹자의 설도 있다. 기독교에는 원죄성이 있고 불가에는 불성이 있다고 한다. 나는 솔직히 어느 학설도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오래전 한국KBS의  인기프로그램 “열린 음악회”를 보았다. 사회정치 어디에나 문제의 현장에 가장 한가운데 앉아 있는 존경하는 김수환추기경이 음악회에 있었다. 음악회에 나온것만으로도 감동을 주었는데, 사회자의 요청으로 독창을 부탁했다. 김추기경은 서슴없이 마이크를 받아 들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애모’라는 유행가를 프로급에 가깝게 불러 주었다. 나는 눈물이 핑돌았다.

그 노래의 내용에 얽힌 사연도 슬펐지만, 나를 감동케 한 것은 김추기경의 사람같은 인간미의 모습이었다. 카토릭의 신부 그중에서도 로마교황청의 추기경 평민인 우리와 거리가 날수밖에 없는 추기경이다.

그런데 그날 김추기경은 그순간에 옆집 밭을 같이 가는 머슴아저씨같이 가까워짐을 느꼈다. 민생속에서 민생과 함께 애환을 노래 할 줄 아는 김추기경이 더 한층 존경 스러웠다. 강론이 날카로와 강남의 부유층 신자들을 향해 ‘금모으기운동’의 강론이 끝나자 마자 7백50명이 참여 51Kg 가량, 싯가 6억8천여만원이 일시에 모아졌다.

“머리와 입으로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나는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사람같은 고백이었다.

나 자신이 기독교에 입문한 동기는 교리가 아니었다. 한 목사의 따스한 인간미였다. 내 평생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김준곤목사님이 있다. 60년대 초 그때는 외국의 유명한 명작이라야 떳떳이 극장에라도 갈 수 있는 고상한 취미로서의 영화관람 그런 분위기의 상황이었다.

목사님은 나를 데리고, 허장강, 김승호, 김지미등이 주연으로 나온 한국영화를 함께 가서 보여주었다. 때때로 당시의 유일한 낭만의 주말여행은 교외선 기차를 타고 백제 송추를 한번 돌고 오는 것이었다.

교외선 아무데서나 내려 시골길 논두렁을 같이 걸으며, 아무 집이나 찾아가 ‘토종닭’을 한 마리 잡아 달라고 해서 농촌향수에 흠뻑 젖어 돌아오기도 했다.

미국에서 초청강사로 만나 호텔 방에서 당신이 즐겨쓰시던 당시에도 지금도 명품 고가인 은장 파카만년필을 손에 쥐어주시던 자상한 스승의 정이었다. 당시도, 지금도 수 십만의 대학생들의 황량한 가슴속에 칼날 같은 메시지를 퍼부어 대던 분이었다. 나는 모든 감화를 그분으로부터 받았지만,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과 내가 매력을 느낀 것은 그분의 사람일수 밖에 없는 사람의 정 인간미 (人間味)였다.

가신지 오래된 고인, 그분이 주셨던 편지들 한구절 한구절에 묻어나는 사람냄새를 다시 맡으며 사람이었기에 느꼈을 외로움과 배신과 세상의 부조리 구조에 함께 묻혀있기도 한다.

때때로 암울한 인간성을 만나고 당할 때마다 나는 나 자 신의 본래 모습으로 환원해 버리고 만 자신을 보면서도, 나의 스승, (그분에게도 결점은 있을지 모른다.) 이 보여준 인간미를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은 풀 수 없는 모순 속에 두 개의 자아, 선성과 악성이 싸우다가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피겨 올림픽을 본다. 가장 잘 미끄러지는 눈과 빙판 위에서, 가장 잘 미끄러지는 신발을 신고, 인간의 총체묘기를 연출해 보이고 있다. 미끄러지기 쉬운 세상 속에 서도 인간성을 다듬은 인간미가 오늘도 내게서 올림픽의 인간발휘처럼, 아름다운 인간미로 피어 나면 좋겠다.

험한 세상 살고, 살벌하기만 인간들의 관계 속에 ‘사이먼과 가핑걸’의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 어…>의 노래가 읇조려지는 시간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인간미가 다리가 되는 세상을 기다려 본다. 그래서, 늑대 이리떼 같은 인간성에게 할퀸 상처도 고운 인간미로 아물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그냥 하고 싶은 작은 이야기를 줄거리 없이 푸념처럼 했을 뿐이다.

글.강용원

음악: 김인배 석양 트럼펫

“찔레꽃 향기”

강용원 편지-

사람마다 나는 냄새가 있다. 어떤 향기일까

“찔레꽃 순정(純情)의 향기”

꽃에 따라 향기가 나듯이 사람따라 나는 냄새같은 인품의 향기기가 다르다.

냄새중에 가장 악취는 사람 썩는 냄새라고 한다. 그보다 더 고약한 악취는 인품이 훼손되는 썩는 냄새 일것이다.

사람마다 나는 냄새가 있다. 어떤 향기일까

찔레꽃향기는 순수하다. 어딘가 외로운듯 어딘가 수줍은듯 슬픈듯이 사람의 눈을 피하고 싶은 곳에 숨어 피는 

꽃이다. 고운 여인의 소복입은 순정 같다.

– 찔레 향기 휘도는 초 여름 숲속에서 –

초여름 숲속에 피는 찔레꽃을 본다. 화려한 봄꽃들이 한바탕 제 자랑을 하고 간 뒤, 숲속 어디 선가 풍겨오는 향기가 있다. 순수한 향기, 순박하면서도 어떤 품위를 높여 주는 향기다. 인간 의 언어로는 그 향기를 표현할 수가 없다. 아련한 향수를 온 산천에 뿌려 놓는다. 

나는 찔레꽃 향기가 휘날리는 여름밤이 행복하다. 코를 가까이 대어야 맡을 수 있는 꽃향기도 있지만 찔레 꽃은 아무도 모르게 온 숲속을 헤치며 그 향기를 뿌리고 다닌다. 

화려한 장미과의 족보를 가지 고 있으면서도 그것도 숨겨둔채 찔레는 순박하게 가냘픈 작은 꽃으로 소복의 흰색으로 수줍게 도 핀다. 찔레를 보면 나는 어쩐지 순정(純情)이라는 옛이야기 같은 향수에 젖는다.

찔레꽃을 미국에서 보면서, 찔레꽃은 우리 한국에서 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해본다. 찔레는 죽은 가지에는 월계관을 씌워주고, 가냘픈 나무는 신부의 레이스를 입혀 격려해 주는 꽃이다. 무리를 지어 팀웍으로 얽혀 살고, 꺾일수록 잘릴수록 더욱 뻗는 찔레의 끈질김이 있다. 도둑을 막아주는 담장을 만들어 악을 저지할 때 가시를 쓸 줄 아는 꽃이다.

눈 속에 피어나는 매화, 서리 맞고도 피는 국화, 진흙 속에 피는 연꽃, 그리고 사시사철 푸르고 곧기만 한 송죽(松竹)은 뜻이나 절개가 그 화품이요, 치자, 동백, 사계화 등은 깐깐한 기골이 그 화품이요, 모란과 작약은 부귀(富貴)가 화품이며, 해바라기, 두충(杜沖)은 충(忠)과 열(烈)이 화 품이고, 박꽃, 맨드라미, 봉선화는 절개와 성실함이, 진달래 개나리는 분명한 거취가 그 화품이다.

동물을 인간성의 야욕성에 비교하고, 꽃은 인간성의 품위를 상징한다. 인간의 성격도 품위도 꽃 향기 만큼 다양하다. 늑대나 여우같은 사람성품이 있는가 하면, 옥잠화 같고 달맞이꽃 같은 향 기를 발하는 인품이 있다.

꽃에 따라 향기가 나듯이 사람따라 나는 냄새같은 인품의 향기기가 다르다.

냄새중에 가장 악취는 사람 썩는 냄새라고 한다. 그보다 더 고약한 악취는 인품이 훼손되는 썩는 냄새 일것이다.

사람마다 나는 냄새가 있다. 향기일까 악취일까

찔레꽃향기는 순수하다. 어딘가 외로운듯 어딘가 수줍은듯 슬픈듯이 사람의 눈을 피하고 싶은 곳에 숨어 피는 

꽃이다.

호수에 물방울 하나 일렁일 때 내 마음도 같이 출렁이고, 풀잎하나 바람에 흔들릴 때, 들꽃 하 나 반겨줄 때 내 마음도 덩달아 미소짓는 자연과의 대화 없는 인간성은 잔혹할 수밖에 없는 문명이 만든 괴물에 불과하다. 밤하늘 별들과 속삭일 줄 모르는 인성벙어리 마비, 철근 콘크리트에 철판 을 깐 심장으로 어찌 인간들끼리인들 훈훈한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것인가.

200리길 찔레꽃 피어 있는 먼 이국땅, 미국의 허드슨 강변을 달리며 오늘 따라 차창이 몇 번이 나 짙게 흐려지고 있다.         

글.강용원

거짓말 세상 미친 세상


조선일보

http://www.chosun.com/bin/w20_output?199704220222

개 | 자 기

DIGITALCHOSUN 朝鮮日報

4/22(화) 19:13

· 국제 · 문화/생활

거짓말 세상, 미친 세상 – “Back to The Basie” “지금이 이러고만 있을 때인가?” 이런 거짓말에 미친 세상에도, 그러나 돌고있는 팽이는 넘어지지 않는다. 세상이 온통 거미줄에 걸리듯 거짓말에 걸려 있다. 누가 보아도 미친 세상에 제정신 나간 것들에게 민생을 맡겨 놓고 어이없는 허탈감에 주저 앉을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울분과 분노와 배신감에 밤새워 치를 떤 이미 엎질러진 역사다. 그렇다고 우리는 이대로 주저 앉아 있기에는 위기의 파국이 우리 눈앞에 있다. 50여 년을 벼루고 기다리던 민족의 결말이 초 읽기에 들어 갔다. 우리가 떠나온 우리 조국, 눈감아 버릴수도 없고, 귀를 들어 막고 있을 수만도 없는 것이 큰 병이다. 초를 재는 위기감이 긴박감으로 가슴을 조여온다. – 요지음 세상 보기가 하 엮겨워 가신다면 …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말이라도 실컨 지껄이다가 망신당한 내꼴을 지저분한 그대로 텔레비전에 고이 보여 드리오리다. 소원이 아직 살아 있으면 이런 시 감으로 변해 있을까… 한심하다 못해 엮겨운 오늘의 한국의 모습이다. 어쩌다가 이꼴이 되고 말았을까?이제 한국은 다시 한번 세계를 둘러보고 제정신을 차리고 제위치로 돌아 와야 한다.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는 희미해 진 허망한 옛 추억일 뿐이다. 추억은 숨막히는 현실에서는 고비용 사치성 낭비다. 매몰된 추억을 파내는 것보다 오늘 하루의 새로운 일과가 더 시급하다. 과거에 몰두한 그 집착성 편집병에서 벗어나야 산다. 현실은 과거보다 시급하다. 지금이 도대체 몇시인데 달밤에 벗어 부치고, 청문회라는 회괴한 정치 제조나 하고 있을 땐가?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과거만을 파고드는 집착에서는 벗어나야한다. 죽은 무덤을 파헤치는 삽을 이제 다시 새 꽃 모종을 심는 삽으로 바꿔야 산다. 인간의 거짓은 인간성 원죄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인간의 정신 착란도 거짓말에서 초기 증세를 보인다. 몇 년전부터 미국에서만 100만부 이상의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는 정신과 의사, 스캇 펙(M. Scott Peck)의 「거짓의 사람들」-People of The Lie 과 끝없는 방황」 -The Raodless Traveled-은 악의 심리학이 거짓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그가 정신과 의사로 40년 이상 임상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거짓을 뽑을수 있는 방법은 인간자체가 아닌 다른 힘, 하나님의 사랑의 치유에서만 온다고 결론 짓고 있다. 무종교인 그가 기독교로 귀의했다. 거짓말에는 색갈이 있다. 해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슬쩍 슬쩍 흰 거짓말, 동료 사이에 자주하는 알면서도 속는척한 새파란 거짓말, 중국 모택통시절에 자주했던 새 빨간 공산당 거짓말, 북한 김정일이 하고 있는 잡아떼고 뒤집어 씨우기 새까만 거짓말, 요새 새로 생긴 깃털이 몸통으로 둔감한 한보 거짓말도 있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의 거미줄을 쳐야 하는 생리를 가지고 있다. 요새 되어가는 세상은 현란한 거짓말 서커스에서 온통 거짓말 요지경을 보는 느낌이다. 상대주의, 복고주의, 상황 주의가 혼동된 와중에, 이를 호기로 삼고, 밑 빠진 독 같은 자신의 이기주의 욕구충족에 혈안이 된지 오래된 한국 병이다. 누가 누구를 탓할수 있을 것인가. 우리’ 모두는 사실 우리 모두 자신들이 그 웅덩이에 그 올챙이들이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는 모두가 공범자다. 이 혼란의 뒤엉킨 실타래를 인간성 스스로만 풀기에는 너무도 그 뿌리가 깊다. 풀려고 하면 풀려는 것 만큼 얼키고 만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Back to the Basic” 다시 한번 인간의 기본 추구인 진·선·미를 추구하는 지 정의 인격을 세우는 일로 겸손히 인간의 기본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때다. 성서는 인간을 일러 “발끝에서부터 머리털 까지 성한곳이 없다”… “사람의 마음은 천길 물속이라 아무도 알수 없지만, 이 야훼만은 그 마음을

뚫어 보고 뱃속까지 환히 들여다 본다. 그래서 누구나 그 행실을 따라 그 소행대로 갚아 주리라. 부정으로 축재하는 사람은 남이 낳은 알을 품는 자고새 와 같아, 반생도 못살아 재산을 털어먹고 결국은 미련한 자로서 생을 마치리라.” – 공동번역 이 자고새 (partridge)는 레바논과 사해 부근 암벽에만 서식하는 새다. 아랍인들은 이 새는 다른 새가 낳은 새의 알을 훔쳐다 품고 부화시키면 그 아이 새가 다시 어미새에게로 다시 돌아 간다고 한다. 우리는 진선미를 이상으로 추구하며, 인격을 새롭게 가꾸며 살기위해 저마다 종교를 가지기도 하고 국가는 법질서를 만들어 정치구조를 이룬다. 인간의 인간됨을 돕기 위해 생겨난 이 정치구조와 종교구조가 아이러니칼 하게도 인간을 위해서 섬기는 척, <인간 위에서 군림하며 인간됨을 가장 악랄하게 짓밟고 있는 현실이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올가맨 거짓이 탄로되면 죽음으로 몰고가는 종교성 때죽음 파국이 극성하고 있고, 자유와 풍요로운 삶을 미끼로 권력구조악은 사상 유례가 없는 아사직전의 인간으로 생매장 하고 있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그 정신에 거미줄 치듯 한다. 그 다음 거짓말은 실처럼 가늘게 얽어매고, 그 다음은 동아줄로, 그 다음은 쇠줄 고랑이 되어 제정신을 올가메는 것이 정신병이다. 거짓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정신병이고, 그 거짓에서 풀려 나는 자유가 제정신이다. 사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정신병적 거짓 증세가 있다. 과대망상도 있고 열등의식도 있다. 나 한마디의 거짓말은 자신뿐 아니라 동포사회를, 국가와 민족을, 그리고 세계를 온통 미친 세상으로 만들어 갈것이기 때문이다. 돌고 있는 팽이는 넘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원심력과 관성운동의 법칙 이 중력 인력에 저항하며 이길 때 도는 힘으로 서 있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꺼구로 가고, 거짓이 아무리 우리를 올가메고 있을지라도 넘어지지

않아야만 하겠다. 제 정신으로 제 자리에서 제 할일을, 진선미를 가꾸며 제 인격을 지키고 성숙시켜야 살아 남는다. 새로 돋은 새순들이 눈에 싱그럽다. 끊임없는 생명 재생의 원리다. 자연은 새것으로의 노력을 쉬지 않는다. 그것이 쉬면 죽음이 된다. 바람을 타는 연은 떨어지지 않는다.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 다시 달려가자, 인간의 기본 진선미 추구로, 인격의 지 정의의 조화된 제정신으로 삶의 아름다움을 가꾸워 내자. 이런 거짓말 세상 미쳐난 와중에서도, 제 정신으로 돌고 있는 팽이는 넘어지지 않는다. <강용원, 해외 가 E-Mail : ywkdtribeca.i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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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목사 “나는 민족복음화를 위하여 폭탄같이 불덩어리가 되어 왔습니다”

김준곤 목사 “나는 민족복음화를 위하여 폭탄같이 불덩어리가 되어 왔습니다”
한국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가 1976년 동경에서 도미(渡美)한 제자 강용원에게 보낸 서신
 뉴스파워
김철영
이 서신은 한국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가 도미(渡美)한 제자 강용원에게 1976년 동경의 한 호텔에서 쓴 서신을 입수했다.

그는 이 서신에서 “나는 민족복음화를 위하여 폭탄같이 불덩어리가 되어 왔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대학생 사역을 기반으로 “민족의 가슴마다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슬로건을 외치며 전력했던 민족복음화에 대한 비전과 헌신 그리고 열정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짐작케 한다.  

강용원 간사는 고려대CCC 출신으로 CCC 초기에 김준곤 목사를 도와 사역을 하면서 1964년 1월 27일에 창간한 <CCC편지> 초대 편집장을 역임했다.

강 간사는 1966년 3월 8일 조선호텔에서 열린 제1회 대통령 국가조찬기도회를 윤두혁 총무와 함께 준비를 도맡았다. 이후 1971년 12월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CBS방송국에서 10년 근무 후 미주한국대학생선교회(미주KCCC)를 설립해 초대 대표를 역임했다.
강 간사는 김 목사가 “군”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제자였다. 또한 김 목사는 강 간사의 뛰어난 문장력을 칭찬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이 서신에서 “학생만을 위한 채플을 시작했습니다. 샘터, 용광로, 폭풍의 눈, 무엇일지 모르나 만들어보겠습니다.”고 썼다.

이어 “84명의 대학생들이(대전․공주)집단으로 一周(일주)금식을 했고 우리도 3一間(3일간) 금식을 했습니다. 在美(재미) 형제들도 3一間(3일간)만 이번 여름 금식기도 했으면 싶습니다.”면서도 “그러나 무리는 말아야지요. “고 했다. 

특히 이 서신에는 박정희 대통령과의 친분 관계로 인한 “어용목사”라는 시선에 대해서도 토로하고 있다. 김 목사는 “내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어용목사”라는 낙인이 찍혔을 때 ‘주홍글씨’의 女主人(여주인)처럼 수모를 잉태한 채 살기로 결심한 그날부터 나는 강군은 알고 있다고 독백했습니다.“라고 하면서 ”나는 朴大統領(박 대통령)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조국은 사이공 함락 1個月(1개월)이 못되어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라고 썼다. 이어 “사이공에 孟君(맹군)이 들어오는 날 한 女大生(여대생)이 쓴 ‘백기(白旗)’라는 시가 있었습니다. ‘후회라고 쓸까요? 자유라고 쓸까요? 통일이라고 쓸까요? 백기에는 쓸 말이 없습니다.’”라는 시를 인용한 후

“간음한 현장(現場)에 끌려온 여인에게 저마다 돌을 든 독기 서린 무서운 표정들 속에 나는 털이 뜯기우고 상처마다 피가 배고 다리 절며 종로 바닥 아스팔트 위에 소리를 질러보는 한 마리 속죄양 같은 모습이 지금의 나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 CCC 김준곤 목사가 강용원 간사에게 1970년대 동경에서 보낸 편지     ©뉴스파워

 김 목사는 또한 자신의 설교를 카세트 녹음해 보내겠다 했다. 당시 미국에 가 있던 CCC 나사렛형제들은 김 목사의 설교테잎을 듣고 또 들으면서 조국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했다. 이 서신에는 강용원 간사의 교회 육성작업을 격려하고 있다. ‘예수의 유일성’,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 ‘성령 충만 받는 방법’, ‘그리스도 안에서 증거하는 방법’, ‘4영리 전도 방법’ 등 ‘지도자 훈련 과정’(LTC)을 교회에서 실시하는 것을 축하한 것이다.

 그러면서 “성령 충만도 예수 영접만큼 쉽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동남아 一帶(일대)도 예수의 불이 붙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그 교재들을 보냈다면서. “사람을 뭉치게 하시오. 뭉침의 힘, 모임의 힘, 운동의 힘을 키웁시다.”라고 도전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복음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도전한 것이다.

이러한 챌린지에 힘입어 강 간사가 10년 간 근무했던 미국CBS를 그만두고 한인 대학생사역에 헌신하게 만든 동력이 되었다. 강 간사는 미주한국대학생선교회(미주KCCC) 초대 대표간사를 역임했다.


 다음은 서신 전문. 

사랑하는 강군 동남아로 다니다가 동경에 들렀습니다. 나의 전존재를 소파에 던져버리고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에게 편지를 씁니다. 전에도 나는 그런 버릇이 있었습니다. 이럴 때의 나는 어느 때보다 인간적이고 성실합니다. 

오랜 그리움과 외로움, 고달픔, 서러움 같은 것이 의식의 지하실에서 멍이 들었다가 이런 때는 감각증상으로 나타납니다.
강군의 편지를 이번 여행 중 소중한 문서처럼 품에 지니고 다니다가 다시 펴서 읽고 내 고달픈 센티멘털 애수를 달래기도 합니다. 지금은 半白(반백 ) 50을 넘은 歸路(귀로)의 가을 길에 내 인생고락을 밟고 거닐며 향수처럼 그려보는 시간입니다. 

강군과 나만 아는 이야기와 가난과 고통이 있지요 우리는 둘 다 음치였지만 같은 곡조로 부르던 G線上(선상)의 앨리지가 있었지요. 내 눈에 눈물이 고일 때 강군의 눈도 으레 젖어 있었지요. 주님과 조국을 진달래처럼 가난하고 메마른 전라도 황톳길 한하운 씨의 문둥이 문질러 떨어진 발가락 하나 묻어둔 비탈길에 알뜰히 심고 싶은 궁상맞은 못생긴 생각들을 우리는 비전이라고 불렀지요.

강군과 나의 신앙 世界(세계) 속에는 원시의 산야처럼 잡초와 이질의 백화들까지 반발했을 그대로의 우리 나름의 시(詩)였습니다. 

누가 맛있는 젓갈을 가져오면 나는 강군을 안 생각한 일이 사실이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내 설교가 은혜롭기보다는 슬펐을 때 저 청중 어느 구석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을 강군의 모습을 비껴간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 김준곤 목사와 강용원 간사     ©뉴스파워


 내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어용목사”라는 낙인이 찍혔을 때 “주홍글씨”의 女主人(여주인)처럼 수모를 잉태한 채 살기로 결심한 그날부터 나는 강군은 알고 있다고 독백했습니다.

나는 朴大統領(박 대통령)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조국은 사이공 함락 1個月(1개월)이 못되어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이공에 孟君(맹군)이 들어오는 날 한 女大生(여대생0이 쓴 “백기(白旗)”라는 시가 있었습니다.

“후회라고 쓸까요? 자유라고 쓸까요? 통일이라고 쓸까요? 백기에는 쓸 말이 없습니다.”

간음한 현장(現場)에 끌려온 여인에게 저마다 돌을 든 독기 서린 무서운 표정들 속에 나는 털이 뜯기우고 상처마다 피가 배고 다리 절며 종로 바닥 아스팔트 위에 소리를 질러보는 한 마리 속죄양 같은 모습이 지금의 나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나와 강군은 가난했지만 치사한 것이 싫었습니다. 나는 강군이 알다시피 사실은 내 못된 성격 때문에 아내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때로는 아무대도 주소가 없는 떠돌이이기도 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서서 내 영을 외치고 싶습니다.
나는 민족복음화를 위하여 폭탄같이 불덩어리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한국 민족의 망국병은 자기보다 잘하는 일을 찢어 발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운명을 각오해야 합니다. 깊은 고독의 참 의미는 예수님의 골고다 옆에 서보면 알 수 있지요.

강군과 나는 못내 모질고 사특하지는 못했습니다. 강군이 커서 모든 얘기를 하게 됐군요. 내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리고 내게서 내가 세상에서 받은 모든 울분을 모조리 강군에게 퍼부었던 아픔을 받으면서도 강군은 너무도 내게 관대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一生(일생) 강군에게 사랑의 부채자였습니다.

유언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내가 죽으면 강군이 맨 앞에서 내 관을 매주십시오. 미국인의 은혜는 기쁨과 행복과 平安(평안)이었지만 우리들의 은혜는 항상 눈물 속에 있었지요. 강군은 고난과 가난의 바닥까지 알고 있지요. 강군은 나의 나쁜 것까지 닮아 걱정입니다.

돌아가면 고대 앞에 강군의 모교이기도 한 고대 앞에 방을 얻고 나는 개인 전도를 시작할 작정입니다. 학생만을 위한 채플을 시작했습니다. 샘터, 용광로, 폭풍의 눈, 무엇일지 모르나 만들어보겠습니다. 84명의 대학생들이(대전․공주)집단으로 一周(일주)금식을 했고 우리도 3一間(3일간) 금식을 했습니다. 在美(재미) 형제들도 3一間(3일간)만 이번 여름 금식기도 했으면 싶습니다. 그러나 무리는 말아야지요. 카세트 녹음해 보내겠습니다.

일본의 新國肉彈(신국육탄)처럼 성상문, 박팽년 사육신의 충성처럼 열녀춘향의 절개처럼 주님과 조국과 우리들을 위한 뭉침이 50명만 미국서 굳어질 수 없을까요. 기도해보십시오. 강군, 그것이 100명이면 더욱 좋습니다. 생명공동체인데 어찌하여 자라지 못할까요. 헌금운동은 마음을 묶는 귀한 수단이고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약 50%는 한국 나사렛이 담당합니다. 회관을 수익성 사업으로 만들려고 계획 중입니다. 그리되면 외상으로라도 경제자립하고 싶습니다. 

강군의 교회 육성 작업을 축하합니다. 성령 충만도 예수 영접만큼 쉽게 해야 합니다. 동남아 一帶(일대)도 예수의 불이 붙고 있습니다. 그 교재들 보냈습니다. 경수는 귀한 사람입니다. 박원배 군도 귀한 사람입니다. 강군, 사람을 뭉치게 하시오. 뭉침의 힘, 모임의 힘, 운동의 힘을 키웁시다. 

김준곤   


인생의 베틀 같은 세월의 다리를 건넌다…

강용원편지-

인생의 베틀같은 세월의 다리를 건넌다.

-헝크러진 희망의 실타래를 물고-

“다리를 가만히 보면 옛날 우리 어머니가 베틀에 앉아 한 올 두 올, 북채를 왼쪽 오른쪽으로 왕복시키면서 발로 그것을 다져 가며 베를 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어머니는 명주실로 비단도 짜시고, 삼베도 짜셨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저마다 자기 인생의 베틀에 앉아 저 나름대로의 옷감을 짜다 간다. 다리를 건너면서 나는 오늘도 밑에 흐르는 허드슨 강물을 보면서 베 옷감으로 짜여지고 있는 내 인생을 본다. 비록 그것이 무명베라도 내가 짠 것이기에 더욱 귀하게 보인다. 오늘도 다리를 건너면서 나의 꿈을 짠다”

▲오늘도 나는 행복의 다리를 건너간다    

뉴욕에는 다리가 여러 개 있다. 밤에 보면 더 아름다운 다리들이다. 스테이튼 아일랜드를 잇는 베르자노 브릿지는 우아한 자태의 여성상이고 뉴저지를 잇는 조지 워싱턴 브릿지는 기상이 넘치는 남성상이다. 다리 건축사의 명물로 150년이 넘은 브루클린 브릿지는 고운 레이스를 걸친 신부의 가려진 얼굴 모습이다. 롱아일랜드를 잇는 드록넥 브릿지를 안개 낄 때 건너가면 어느 천상의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이 다리들을 건너가고 건너오고 있다. 쓸데없는 일로 다리를 건너가고 건너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뉴욕같이 비싼 브릿지 톨을 내면서는 더욱 그렇다. 다리를 생각하면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 〈콰이강의 다리〉가 생각난다. 그 주제음악도 좋아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내 기억 속에 35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한 연합군의 다리 파괴작전이다. 마지막 그 다리가 폭파되면서 그 다리를 통과 중인 일본 기차가 산산조각이 되어 공중에 나뭇잎 날리듯 산화되는 장면을 보고 영국군 장교가 외쳤던 말이었다.

“미쳤다. 미쳤다. 우리 모두는 미쳤다.” 같은 인간들끼리 목숨을 걸고 만든 다리에 목숨을 걸고 다이너마이트를 장착해서 그 다리를 지난 사람이나 그 다리를 파괴한 사람이 거의 모두 함께 죽어 없어지는 라스트 신이었다.

다리를 건넌다는 말은 운명적인 결단의 동의어로도 쓰인다. ‘돌아 갈 수 없는 다리’-no return bridge-가 판문점에 놓여 54년 간 남과 북을 갈라놓고 있다. 다리는 건널 수없는 곳을 이어 주고, 끊기어진 절망을 잇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경의선 복구에 돌아 올 수 있는 다리를 기대하다 지친 나는 최근 북쪽군 용역부대가 철수했다는 소식에 절망감이 가슴을 에이고 있다.

나는 뉴욕에서 50년째 살면서, 13년은 뉴욕에서 밖으로 나가면서 다리를 건넜고 40여년은 뉴욕을 들어가면서 이 다리들을 건너고 있다. 뉴욕의 다리들 중 나는 특히 조지 워싱턴 브릿지를 가장 좋아한다. 특히 허드슨을 가로질러 세계의 중심 맨하탄이라는 바위섬과 미국의 대륙을 잇고 있는 이 다리는 그 이름부터가 상징적 미국의 미래를 이어주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허드슨 강변은 초봄의 기운에 가장 예민하다. 웨스트사이드 하이웨이 강변 도로는 워싱턴의 벚꽃을 가장 먼저 받아 피게 하고, 강변의 개나리는 2백 리 길 웨스트포인트까지 끝없는 찬란한 봄축제의 꽃길을 강변으로 치장을 하기 때문이다. 허드슨 강을 따라 베어마운틴을 중심으로 미국 현대 문학의 산실로, 워싱턴 어빙의 ‘립반윙클’ 같은 20년 세월이 술 한 잔 속에 흘러버린 신비로운 꿈의 세계가 펼쳐지는 곳이다.

RIP VAN WINKLE 이야기 유화

이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가고 건너올 때마다 나는 어떤 행복감에 젖게 된다. 지금까지 이 다리를 몇 번이나, 무엇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건넜던 것일까?! 다리를 가만히 보면 옛날 우리 어머니가 베틀에 앉아 한 올 두 올, 북채를 왼쪽 오른쪽으로 왕복시키면서 발로 그것을 다져 가면서 베를 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어머니는 명주실로 비단도 짜시고, 삼베도 짜셨다. 다리 위를 왕래하는 수많은 자동차들은 마치 저마다 실 꼬리를 물고 왼쪽 오른쪽으로 왕래하는 실 북처럼 보인다. 조지 워싱턴 브릿지는 베틀이고, 그 밑에 도도하게 흐르는 허드슨 강은 계절 따라 짜여지고 있는 옷감이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저마다 자기 인생의 베틀에 앉아 저 나름대로의 옷감을 짜다 간다. 다리를 건너면서 나는 오늘도 밑에 흐르는 허드슨 강물을 보면서 베 옷감으로 짜여지고 있는 내 인생을 본다. 비록 그것이 무명베라도 내가 짠 것이기에 더욱 귀하게 보인다. 오늘도 다리를 건너면서 나의 꿈을 짠다. 그리고 다시 희망의 미래를 비단 옷감으로 짜고 싶은 것이다.

행복의 옷감을 짜고 싶은 것이다. 행복은 자신이 짜고 있는 인생 속에 결과로, 의미와 보람으로 안겨지는 것이지, 행복을 목적 자체로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쯤 서울은 가로수 은행나무마다 새 순이 나고, 이제 곧 인왕산과남산에 아카시아 꽃향기가 휘감고 돌 것이다.

생명의 보람은 고난을 통과해서 왔다. 우리의 행복, 생명은 고난 속에서 영글어진다. 행복의 라일락 꽃을 함께 피워 가는, 함께 나누는 고난과 행복 신록의 절기가 되기를 바라고 싶다.

그래서 나는 끊어질지도 모르는 조바심을 안고라도, 행복을 짜 내려가는 강물을 보며 오늘도 이 다리를 건너가고 있다.

글. 강용원

흐르는 음악은

Beethoven Violin Sonata No 5 in F Major Op 24 Spring  2 Adagio molto espressivo 입니다

“에러 메세지”

 -강용원편지-

“구성 요소 중 하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설악산 울산바위

천상천하의 유아독존, 천하가 폐허가 된지 오래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데, 

“구성요소 중 하나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에러 메세지가 나오면 그 프로그램으로 하려고 하는 일은 더 이상 진행 시킬 수가 없다. 

그 프로그램을 다시 인스톨(Install) 하던지 찾지 못하는 그 구성요소를 찾아 주어야만 한다. 수 백만개로 구성된 개체속의 어느 한 개의 숫자적 디지털 이탈이다.

아나로그 모드에서 디지털로 바꿔진 모드로 바꿔진 세계에서 얻을수 있는 정확한 리포트 점검시스텀이다.

디지털은 손가락이란 뜻의 라틴어 디지트digit 에서 온 말이 다. 이는 모양으로 표시되는 아날로그에 비해 분명하게 1 2 3 을 셀 수 있다는 뜻에서 나왔다. 예컨대 각각의 눈금과 수 치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막대 그래프가 디지털형태라면 아날 로그는 정확히 수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곡선 그래프에 비유할 수 있다.

“구성요소 중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 주는 말이다. 몸으로 비교해서 이 말을 돌리면, 아침에 일어나 “몸의 구성요소 중 눈을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 얼마나 참담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 구성요소중 하나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회, 정치의식, 종교와 윤리의식이 참된 세계화요 민주화요, 인간존엄의 세계 공동체를이루는 성숙된 생명경외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 하나 하나는 없어서는 안될 구성요소로 서로 얼켜 있고 연결되어 살고 있다. 그것을 바로 알고 깨달을 때만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고, 이 역사도 바로 세울 수 있다. 응급실에 실려온 시간을 재는 생명을 놓고 수술 팀은 각각 제 할 일, 제 위치에서 제 시간에 그 맡은 일을 해내야 그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그 자리에는 독자적 계급권위가 없다. 제 할 일이 있을뿐이다.

세계는 지금 다민족 다문화가 얼켜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세계공동체를 모색하고 있다. 컴퓨터의 디지털 화 시대에 지구마을 대화가 안방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촉진시키고 발전시키는 작업이 인터넷을 통해 커뮤니케이션(대화소통)을 열어주고 있다. 다가오는 오는 세기는 이 세계공동체의 숙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다음 세기 지구의 운명이 걸려 있는것이다. 

차원을 바꾸는 비행기 이륙순간은 가슴설래는 흥분이 있다. 비행기 가 이륙할 때 그 탑재한 연료 3분의 1을 소모 한다.  그러나 그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관련된 모든 승무원, 기장, 정비점검사, 콘트롤타워 하나하나가 맡아 하는 일은 그 비행기의 성능 이상으로 그 중 어느것 하나라도 차원을 바꾸는 이륙에 생명이 걸린 중요한 역할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갈수 있도록 인간의 복지를 위해 두 개의 기둥 같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구조다. 하나는 정치 이념구조의 하드웨어, 또 하나는 교육.종교등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다. 하드웨어 틀안에서 디지털 화된 소프트웨어가 프로그램을 작동한다. 아나로그 시대를 벗어나 디지털 시대로 들어와서 그 하나 하나의 구성개체가 숫자로 표현되는 구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숫자로 구성된 하나의 개채는 아나로그화된 시대처럼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그 자리에 그 숫자의 개체가 없으면 멈춰 버릴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구 비슬산철죽

쓰레기를 거두어가는 환경미화원이 쓰레기 하나를 그대로 두면 동네는 순식간에 오물냄새가 진동 할 것이다. 파킹랏에서 차를 빼내어 주는 사람, 음식점에서 식사를 날라주는 한사람 한사람, 공사장에서 빨간 기를 들고 교통을 정리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막대한 시간 낭비를 감수해야 할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  지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연주는 시작할수 없다. 그러나 그 대원중 가끔 한두번 울려야하는 심발을 치는 대원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연주는 망치고 만다.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다. 제 자리에 제 할일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 자리에는 없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태어난다. 나 하나가 그 자리를 이탈하면 하늘의 별이 떨어지는, 우주가 흔들리고 지각의 변동이 온다.

나 하나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없어서는 안될 구성요소중 하나라고 깨닳을 때 나도 세상도 정상 가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가는 세상은 <서로>, <함께>, <같이>, <더불어> 사는 <팀웍으로 사는 세상>일 때, 완성된 조화의 아름다움을 볼수 있게된다. 그때 비로서 사람과 사람사이, 아름다운 관계속의 아름다운 인생가꾸기가 꽃을 피울 것이다. 

개체구성요소인 디지털 의식은 팀웍의식이고 세계화의식이다. 인간경영 마인드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서로 존중해 주고 하늘같이 받들어주고 격려해주고 아껴주는 사회 분위기가 아쉽다. 상하 계급사회가 아닌 수평 평등의 공동체 사회의식이 성숙되어야 한다. 특히 정치이념구조에서 그리고 독선과 오만의 종교와 교육 구조에서 이것이 먼저 제 틀을 잡아주어야 한다. 그런대 지금 현실은 어떤가?

한국인의 기상 늘푸른소나무

노벨문학 수상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수용소 군도>, <암 병동> 같은 그 구조악을 고발하면서 반체제기상 운동으로 살아온 그가 최근 실망과 냉소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 인간성 자체의 탐욕성의 특성이 새로오는 세대를 어둡게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컴퓨터 시대에 우리는 아직도 혈거(穴居-동굴)시대의 법칙에 따르며 삶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을 개탄한다.” 고 탄식했다.

김지하의 오적(五賊)으로 10년의 감옥, 넬슨 만델라의 40년 감옥, 마틴 루터킹의 평등을 위한 죽음이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 있어야 하는 체제구조가 인간을 압살하는 구조로 타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예수는 생살을 찢었고, 석가는 고행을 자초했다. 종교개혁에 불을 질렀던 마틴 루터는 독아적 종교성의 구조적 악에 인간성 뿌리가 짓눌림을 받는 것에 대한 항거였다. 오늘날의 종교구조는 이 디지털 시대에 어디에 와 있는 것일까?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천하는 사라진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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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강은 예수를 따라 흐른다.

-한국 대학생 신앙운동 CCC역사 흐름내역-

역사의 강은 예수를 따라 흐른다.

입석(立石), 그 영원한 예수혁명 진원지

– 입석에서 허드슨강 까지,  오대양 육대주로 흐르는 강 –

물방울 하나 바다를 출렁인다.

60년전 입석(立石)에 떨어진 물방울이 실개천이 되고 시내가 되고, 강을 이루어 심천 미루나무 숲을 감돌고 흘러,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대양의 포구 몽산포에 머믈렀다가 오늘 이 자리 미주 각주에 세계 도처에 누룩처럼 잡초처럼 퍼져 있다. 60년전 7월 경기도 양주군 양수리에 있는 입석(立石)수양관 이었다. 돌이켜 보면, 물방울 하나 절로 떨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의 약속을 믿을 수 밖에 없게 한다. 그리고 그 뜻의 비밀을 사람의 헤아림으로 다 깨달을 수 없다.

1.”생명잔치에의 초대”-최초의 입석수련회

1961년 11월에 초대 서울CCC학생회가 조직되었다. 그 다음해 제1회 CCC 여름수련회가 1962년 7월 23일부터 28일까지 경기도 마석에서 20리 산속, 입석(立石)에서 63명이 모였다. 그때 김준곤 목사님은 30대 청년이었고, 우리는 20대의 대학생들이었다. 그때 수련회 초청문의 제목은 “생명이 부르고 있다” “생명 잔치에의 초대”라고 했다. 제목 그대로 굶주린 우리들의 영 혼에 잔칫집 초대상위에서 배불리 잘도 먹은 생명잔치의 축제 바로 그것이었다. 몇 년을 잘 먹인 후에 “청년이여 환상을 보라”는 표어가 수련회 주제로 우리에게 비전을 구체 화 시켜주는 행동운동의 방향을 주고 있었다.

[생명잔치] 입석 최초의 CCC 여름수양회 1962년 7월23일부터28일까지 63명이 참가했다.

입석(立石)은 그 이름부터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돌이 일어선 곳, 돌이 되어버린 굳은 마음들이 깨져 생명의 합창을 했던 곳이다. 세상이 가만히 있으니 돌들이라도 소리쳐 생명 예수 를 전해야 산다는 생명가락이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해골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된 것과 다를 바 없다.

입석수양관은 그때 당시 감리교재단에서 만든 수양관이다. 양철로 지붕을 덮고 벽도 없이 마른 마루바닥에 빽빽이 앉아야 겨우 500명, 그리고 잔디가 깔린 시골 부자집 마당 같은 운동장이 있었다. 잔디 밭 밑으로 태백산맥 허리에서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고, 개천 옆에 정자하나가 낭만스럽게 옆에 있는 바위 암벽에 올려 있었다. 숙소는 4개 캐빈으로 여학생들이 차지하고 남자 는 강당에서 천막에서 지냈다. 지금 같은 화려한 대형 수양관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래도 우리는 그곳이 천국만큼 좋았다. 새벽이슬 같은 젊음이 모인 곳에 이슬 같은 성령의 역사가 잔잔하게 축축하게 우리를 깨우고 씻어주고 있었다.

어떤 억압과 족쇄로부터 풀림을 받는 자유가 있었고, 좌절로 꽉 막혀 버린 우울에 기쁨과 평화 가 물 흐르듯 했다. 미움과 울분과 분통이 풀리고 잃었던 누이를 찾고 형제를 찾은 만남의 희 열이 있었다. 마지막 날 밤마다 헌신의 밤으로 간증과 찬송으로 밤을 새워야만 했다. 참 이상한 일중 하나는 CCC수련회 마지막 밤은 항상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 졌다. 너무도 터질 듯 뜨 거워진 우리의 열기를 식혀주어야 하는 성령의 세심한 배려 였다. 소나기가 양철지붕을 치는 소리와 고백하지 않고는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우리들에게 소나기소리 보다 큰소리로 우리 는 주님께 우리의 사랑을 고백해야만 했다.

1965년 입석 수련회중 순별 모임

2. 영적 대결의 최전방 야간 백병전

63년부터 전국 수련회로 확대되면서 66년 650명이 수련회는 입석(立石)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이 었다. 그리고 입석수련회의 클라이막스 였다.

참석자 650명중 300명이 믿을 수 없는 예수이유의 독을 품고 온 사람들이었다. 마지막날 밤 이 미 믿게된 사람은 밖에서 기도하게 하고, 김 목사님은 이들을 한 강당에 모이게 했다. 전투복 차림에 마이크는 손에 들렸다. 한 사람 한사람씩 믿을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강하고도 부드럽게 밤을 새워 전쟁을 치루었다. 나는 그때 악령의 발악과 성령의 탄식을 듣고 목격한 사람 중 하 나다. 그 현장을 녹음한 테잎을 찾고 있다. 그것은 전방초소의 야간 백병전을 방불케하는 육박 전이었다. 그들이 변했다. 다음날 아침 떠오르는 밝은 햇살은 어제의 먹구름이 아니었다. 60년 대 수련회는 죽느냐 사느냐의 야전 전쟁터의 격렬한 육박전 바로 그것이었다.

그때 성령의 비상 간섭 강렬하고 칼날 같은 김목사님의 멧세지가 터졌기 때문에 오늘에 이 강 은 흐르고 있다. 이 민족을 특별하게 쓰시고 싶으신 하나님의 바램이 있었음을 이제 더욱 분명 하게 깨닫고 있다.

1966년 입석 수련회 생명의 잔치 최대수용인원을 넘긴 전국수련회

3. 혁명의 개념을 혁명한 예수혁명운동의 태동

한국의 60년대는 말 그대로 혼란과 혼돈과 궁핍과 좌절로 앞이 보이지 않은 먹구름 속이었다. 해방이 되고 6.25가 터진 폐허의 잿더미를 헤집고 이제 겨우 움막을 친 상태에서, 최루탄과 화 염병으로 4.19가 터지고, 그 다음해 서울의 새벽을 놀라게 한 총성과 더불어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우리 세대는 카뮈의 이방인이 되어 망령 들린 사르트르의 허무족이었다. 캠퍼스는 대 남 공작의 남로당이 쳐 논 그물이 여기저기 걸리게 깔아 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 로 어두운곳을 찾았다. 다방의 어두운 구석, 침침할수록 좋은 음악 감상실이 안식처였다.

1963.1.1 CCC 원단등산 백운대

그때의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한 김목사님의 표현이 있다. “해 넘어 가는 석양, 허무의 강가에서 허물어진 담장에 기대어 줄 끊어진 키타로 끝없는 G선의 엘레지를 타고 슬픈 만가를 부르고 있었다.” 무신의 실존주의, 공산주의 귀신들이 거미줄처럼 우리의 의식을 옭아매며 시야를 흐리 게 하고 있던 때였다. 이유 없이 돌멩이를 차는 제임스 딘으로 자처하는 반항아들이었다.

4. 영원히 잊지 못할 생명의 메시지

그 당시 서울 CCC회관 집회는 설자리도 없이 굶주린 젊음들에게 생수의 샘터와 같았다. 구름 처럼 모여들었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자신과 민족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김준곤 목사님의 신선한 예수 메시지는 방황하고 헤매는 대학생들 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모여든 우리는 민족을 생각했다. 민족복음화에의 강한 이념성이 태동 하고 있었다. 그때 목사님은 일주간을 금식하며 주일모임 멧세지를 준비한 것을 나는 알고 있 다.

미주KCCC비전 대학생집회 말씀도전하는 김준곤 목사님

예수가 우리의 생명이 되었다. 예수가 우리 민족의 가야 할 길임을 알았다. 예수가 우리의 비전 이 되었고 예수만이 민족을 살릴 비전이 되었다. 우리는 그때 예수에게 만 미쳐버린 것이다. 우리 눈에는 예수만 보였다.

5. 우연은 없다. 그리고 모멘텀의 밀도와 질량이 운동력을 결정한다.

운동의 법칙에 중력이 있고, 관성의 법칙도 있다. 운동량은 질량에 비례하고 질량 에너지는 위치 에너지에 비례하고 위치에너지는 운동 에너지를 가속가증 시킨다. 그때 모였던 피 끓는 젊음들 의 가슴에 예수 운동 에너지를 축적시켜 민족을 예수로 소생시킬 수도 있고, 움직일 수 있는 운동량(모멘텀)을 형성한 기초를 이룬 뜻이 숨겨져 있음을 이제서야 더욱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서서히 예수 이념집단의식이 우리들에게 생기게 되었다.

이 이미지는 대체 속성이 비어있습니다. 그 파일 이름은 lMZc2txhmxKRY3U3eqyxZW5tg_SUGp6DB6BsasD2nCeoe1djjOioRI5ZEnPIxF18FYAD0DlafoUucbk_7vDtTWa8hb_jLjhoBjR1Jtt2IOgaxpgb9kZDfcwh8rl0awwVJH-CzcA1입니다
1968.08.23-26 나사렛형제들 창단모임 영락교회 베다니 수양관

목사님은 민족복음화를 위해서 수백가지 방법과 수단들을 창조하시고 발명 발전 하셨다.

그러나 나사렛형제들의 창설만큼 전략적이고 지속성있는 수단은 없다.

1968년 8월 경기도 소재 베다니 수양관에서 CCC 졸업생 108명이 모여 나사렛형제들이란 이념적 행동집단이 창설되었다.

한국CCC 는 계속 확장되어 매년 주요도시에 간사들을 파송함으로 전국 주요도시들과 전국의 주요대학들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는 국내에는 41개 도시, 300여 대학에 850명의 전임간사를 파송해 2만여명의 대학생들이 양육받고있다. 해외에 460명의 전임 스탶들을 대학캠퍼스에 파송함으로 해외선교에 큰축을 이루고 있다.

지난 70년 동안 한국CCC를 통해서 양육받은 사람들이 교회목사로, 선교사로, 선교단체 리더로,  대학의 총장과 교수로, 사업계, 의료계, 법조계, 정계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있다. 전 한국의 모든 계층속에 나사렛없는 조직이 없다. 세상을 감염시킬수있는 강렬한 선의의 예수 바이러스들이다.

복음화를 위한 누룩이요 들풀이다. 나사렛 형제들이다.

물방울 하나 떨어져 계곡의 실개천이 되어 흐르고, 실개천이 모여 개울이 되고 이골저골 개울 물이 시내가 되고, 시내들이 모여 흘러 강을 이룬다, 강물은 바다에서 서로 만나 오대양의 물이 된다.

미주KCCC비전 대학생집회 말씀도전하는 김준곤 목사님

원점의 시작 없는 운동이 있으랴. 물방울 없는 바다가 있으랴. 60년전의 입석(立石)수련회를 보면서, 이제는 오대양 육대주를 가슴에 품고 예수의 혁명의 기치를 다시 한 번 높이 들어 올릴 때가 되었다.

그리고 강렬 한 예수 이념집단이 세계를 예수로 혁명하는 투사들이 지금 바로 여기 모인 우리들인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그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할지라도…

한번 살고가는 세상에서 더 이상의 고귀한 부름은 없다. 그리고 마지막 부름이다.

 이제 한국CCC 입석(立石) 60여주년을 맞는다. 새롭게 시작하는 예수혁명의 새로운 진원지가 이제는 세계를 향해서 미주땅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 더 이상 누구를 탓하랴. 

나부터 내가 책임 있는 주인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한가지 당부와 부탁은 현제 선두에서 이운동과 비전을 이끌고 있는분들께 행여 자신의 좁은 틀안에 이 위대 했던 스승 김준곤 목사님의 넓고 높은 뜻을 구겨넣지나 않는지 조심하게 생각하기 바란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가 역사의 희생물이 되는것임을 보았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예수가 되지 못하면, 운명의 장난 희생물이 되고 마는것도 보았다.

오늘 여기의 우리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세상에 와서 얻을수있는 최대 최고의 부름과 특권임을 잊어서는 안될줄 안다.

미주KCCC비전 대학생집회

  글.강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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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곡은 Unchained Melody 입니다.

— 미주KCCC 비젼 운동 스토리 一

_강용원 편지_

세계를 깨 우는 횃불 높 이 든 예수각성 운동

이 춘호(전임간사, 현 특수사역목사)

예수 생명, 제자훈련의 시작

1982년, 학생신앙운동의 미주에서는 이름만으로 존재하던 그 때, 칠흙같은 어두움 속, 살을 에이는겨울바람을 피해 코토 깃들을 세우고 캠퍼스의 대리석 건물 코너를돌아 속속들이 들어오는 무리 들이 있었댜

싸락눈이 쌓인 어깨와 머리를 털고 신발의 눈을 떨어내는 모습 가운데서도 얼굴은 밝다. 요일별로 월요순, 화요순, 목요순, 토요순으로 나뉜 예수생명 제자들의 모임이 매일 강용원 간사님의 의로운 전두지휘아래 진행되고 있었다. 5분스피치를 맡은 이로 부터 시작되었던 제자들의 이야기는 그때도 승법번식을 이야기했다,

그때도 시간관리를 이야기했었다. 얼마전 서류정리중 그 당시 제자훈련에 사용하던 누렇게 낡은, 전혀 세련되지 못한활자체의 인쇄물을 보고 새삼스레 강용원간사님(CCC미주사역대표)의 이제는 마르고 마디가 굵어진손가락을 생각했다.

1.5세 대학생청년둘의 이중문화,이중국적으로 혼란 되기 쉬운Identity들 바로 세워주면서 세계속의 주안임을 가르치고 우리의 신앙을 전수할 지도자를 육성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홍수에 제방이 터지듯 몰려오는 2세 청소년 문제로 환락 문화 속에서 떠내려가는 청소년들을 시급하게 건져내고 그 근원인캠퍼스를 복음화하자는 것이 어두운 밤 모인 소수의 생각이었다.그간 각 요일별 순모임둘이 익 어가는 중에 82년 Presbyterian Camp & Conference에서 하나의 열매를 맺었다.

늦은 여름 막 깎온풀냄새가 나는 푸른 초원의 잔디가 있었댜 그 모임은 살과 살이 맞닿는 모임이었다. 밤 제자순례, 칠흙같은 숲의 어두웁 안에서 다음 촛불의 아른거림만으로 찾아가 순례자의 자세로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주님은 첫 말씀으로 나를 두드렸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의 본을 받아 서로 발을 씻기 던 그 순간들이. ‘나는 선교사의 아내가 되는것이 싫어요 … ’라는 한 자매의 눈물섞인 진솔한 고백이, 우리들의 체면을 벗고 적나라하게 드러낸 모습에 서로가 오히려 숙연해졌던 특이한 모임이었다 그 모임은 소대장 양성모임으로 다음해 83년 비젼이라는 대회로 연결된다.

1983년 첫해 비전수련회 포스터 CCC회원 궁민진 작품

비전 대회로 예수 비전을 열고

뉴욕 근교에 있는 포코노 산장한 가운데 있는 Pinebrook. 이곳에서 비젼의 꽃이 피어난다. 83년 5월 31일 포코노 산정Pinebrook Conference Center에 서 비젼은 태동하였다. 한 안생의 크기와 질은 그 가슴에 타고 있는 열망하는 비젼아 결정한다고, 젊은이의 꿈아 없는 나라와 민족은 망한다고 외치면서 비젼은 시작되었다. 꿈을가지도록 도전하면서 그리고 멋있는 삶이 있다고 제시하면서 시작된 비젼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참된 역사참여의 그리스도인의 상을 세워주며 그들의 신앙을 생활화하고 나아가서는 교회, 캠퍼스 직장에서 제자를 육성하는 삶을 살게하여전공을 신앙과 연결하도록 하는 순수신앙 전수의 시조였다.그때도 김준곤 목사님은 외쳤다.

‘사랑을 줄수 없을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고, 사랑을 받을 필요가 없을만큼 부유한 사람도 없습니다.’이 비젼대회는 뉴욕에서 봉화의 횃불을 올려 비젼83을 필두로 워싱톤, L.A., 토론토, 보스톤 동지를 거쳐가면서 많은 젊은이들의 비젼과꿈이 구체화되는 만남의 현장이 되어오다가 1987년부터는 미주 전역으로 확산되어 각 지역마다 비젼모임을 갖기예 이르렀다.

이 해마다 계속되는 비젼집화는 다시 펜실베니아예 위 치 한, High Poin t Camp &Conference Center에서 알래스카 주립대학 김춘근 교수가 초청강사로 참여 ‘We Will MakeAmerica Greater’ 라는 주제를 가지고 비젼에 도전했다. 또 한분의 비젼을 깨우쳐 준 분은 오대 원 목사 (David Ross) 이 다. 예 수전도단의 창설자이자 안디옥커넥션의 대표로 있는 목사님은 조용하면서도 감동적인 도전을 주면서 성경강해를 인도했었다. 일본 선교사로있던 나까지마 리크 목사의 일본을 위한 도전도 빼놓을 수 없는 감동의 한편이었다.


매해 열린 비전대회 주강사 김준곤 목사

비전순

CCC미주사역에는 비젼순이라 하는 특이한 그룹이 있다` 한국에서는 나사렛형제에 해당하지만 사역상I특수성을 고려하여 학교를 졸업한 Young Professional을 중심으로 태 어난 그룹이다.

처음에 비젼순은 1983년도 첫 비 젼을 참석한 이들로 비젼88대회 중 약간온 낭만적인 추억 가운데 만들 어졌다. 캠퍼스 사역을 도우면서 자 체내에서도 십단계를 교재로 매주 5시간여를 투자하며 토론과 기도를 1년반 계속되었다. 당시 콜롬비아 사대에서 박사학위를 하던 허미화 자매(현 대학교수)가 머물던 사대 기숙사 Whittier Hall의 미팅룸에서 매주 모여 나누던 영적 육적음식은 참으로 어느것이 더 관심을 끌었는 지 구분하기가 힘들었었다.

지금은 몇몇을 제하고는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렇게 연결된 사랑의 끈은 여전하다. 94년에 접어들면서 비젼순의 활동을 기대해 본다.

“100년전에 전한 그 예수를…”

일곱번째의 비젼90대회는 가장 어렵고 힘들었지만 우리의 기억속 에 가장 생생하게 남아있는 LeI-ligh University에 서 였 다. 한여 름 8월의 찌는 더위 속에 에어컨 시설이 되어있지 않은 사방이 막힌 반지하 강당은 찜통과 같았다. 

그러 나 쓰레기통에서 피어나는 장미로, 그곳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장미 한송 이 가 올라온다 .

VISION FIELD

라 이름한 노방전도. 사거리 코너마다 술집아 자리잡은 이름과 걸맞지않는 도시 베들레헴. 그곳에 우리는 사영리를 돌고 나갔다. 미주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노방전도는 걸어나 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게 했다. 

Crusade! “우 리가 100년전에 전한 그 예수를 이 제 너희가 전해주는구나.”라고 눈을지긋이 감은 파랗고 깊은 눈의 할아버지는 이야기했다. 자그맣고 노란 한국인둘을 향한 질시는 단순히 전도 떄문만온 아닌 듯 싶었다. 눈 앞에서 대문이 귓전을 울리며 닫히 고 그 문이 코끝에 닿는 것 같아도 우리는 기도하고 다음 집문을 두드렸었다.

여름이면 비젼 준비로 사무실온

통조림이 된다. 돗대기 시장과 같이 전화하는 소리, 서로 부르는 소리, 그 가운데서도 찬양을 하는 무리들 도 있었다 땀을 홀리면서도 우리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우 리는 비젼대회 총무로 가장 땀울 많이 홀렸던 김홍식 간사의 헌신적 노고를 잊을 수 없다. 비젼91을 준 비하면서 그동안 기도하며 찾던 회 관을 가장 좋은 곳으로 하나님께 허락받았다. 강용원간사님은 이를 봄선물이라 표현했었다. 뉴저지와 뉴욕을 바로 연결하는 Fort Lee에 새로 자리잡온 이곳에서 앞으로 엄 청난 일들이 벌어진다. 최상의 것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91년 롱아일랜드 대학 C.W.Post Campus에서의 비젼91은 ‘오라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자 라는 주제 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숨겨있던 그 무한한 가능성의 보배를 발굴하 게 했댜 강사로 초청 한 국제CCC 의 총재  Dr. Bill Bright는 분명 한 우리의 비젼이 이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다고 확언하였다.

CCC 창설자 빌 브라잇박사 특별강사로 초청강사

‘심포 니 기도에 나도 작은 악기가 되자’ 고 외치며 세계 비젼을 품은 기도 의 심포니에 나 자신의 작은 악기 를 모아 교향악 심포니를 아루자는 강용원간사님의 기도운동에 우리는 좀더 높은 곳에서, 좀더 창문을 활 짝 열고, 좀더 넓은 시야 속에 세계 를 품는 기도를 시작했다. 비젼을 준비하면서, 기다리면서 기도를 배운 해였다

92년 버전 대 회 도 같은 C.W.Post Campus에서  ‘오늘의 학원복음화는내일의 세계복음화 라는 주제로 다 시 한번 CCC사역의 원초 공략을 확인한 대회였다. 특이했던 것은 먼 지역에서 참가한 지도자와 학생수 가 많이 늘어나 명실공히 미주대학 생 신앙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갖는 계기가 되었댜 대회 주강사로 모신국제CCC 지역디렉터안 댄 헤이즈 를 통해 미주지역과 세계에서 이루 거지고 있는 하나님의 사역과 영적 인 각성을 위해 대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배웠다. 국제CCC 부총재 인 스티브 더글라스를 통해 전략적으로 삶을 투자해 시간과 전공, 탈렌트를 통해 선 자리가 예수현장어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택세미나도 이제는 50여개로 늘 어나 대학생들에게 실제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여러가지 주제둘을 폭 넓게 다루었다. 

해마다 열린 비전대회

그러나 무엇보다도 푸른 초장위의 노천에 삼삼오오 나 뉘어져서 진지하게 기도와 찬양, 그리고 간증으로 만남과 교제를 나누 는 순모임의 모습은 꽃으로 수놓은 젊음과 꿈과 소망이 넘치는 하늘의 축제 그 자체였다.

비 젼의 아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E.M. Bounds가 이야기한 것처럼 ‘어떤 일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이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을 움직일 수’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 인 것을 깨달으며 하나님 편에서는 참으로 귀찮을 정도로 매달렸던 일들을 기 억 한다. 그분은 허 락하여 주셨다.

매해마다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 에서 시작한 비젼대회지만 대회를 마치고 나면 또 한번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지난 여름 Hofstra대학에서 열린 비젼93도 예외는 아니었다. 위대한 여름. 우리들의 부푼 꿈과 비젼이 영글어지고 마냥 열심히 달리던 일 에 방향을 찾은 여름이었다. 미국무성 내무장관등을 역 임 한 Donald Hodel과 비젼에서 꿈올 키운 2세 간사인 David Kim (Attorney at Law)의 멧세지는 막생놀에게 결정 적인 도전이 되었다, 90년대에 들어 서면서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의 목 적이 된 ‘전교회가 전복음을 전세계 로 전하는 일 과 ‘2000년까지 주님 의 지상대명령을 이루는 일의 역동 적인 지도자 는 바로 우리의 눈앞에 있는 것을 깨달은 모임이었다,

노래하는 순례자

CCC미주사역중 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줄리아드 노래선교단 이다. 1982년 11월부터 강용원 간사 님과 이기선 간사(노래선교단 지휘 자, 총신대 교수)를 바롯한 5인과 줄리아드 캠퍼스에 성경공부를 시 작하며 뿌리기 시작한 씨앗들이 음 악도 특유의 개성과 경쟁의 분위기에 뜻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듦 으로써 노래선교단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줄리아드 노래선교단 뉴욕공연 미주와 카나다를 휩쓸었던 신선한 감동의 원천

1986년 3월 초 16명의 줄리아드 학생이 참가한 눈 덮인 포코노 산 장의 수련회에서 줄리아드 노래선 교단이 존재해야만 하는 확신을 얻 었다. “우리가 받은 이 재능을 세상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데만, 또 세계의 정상이 되는 것에만 쓰 여질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는데 쓰여지게 하자” 는 것이 그 깨달음이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엔 비록 친구 였지만 미워하고 질투했어요. 하지 만 이제 서로 사랑하고 남을 위해 먼저 위하는 마음이 생겼어요.”라는 단순하고 솔직한고 고백이 줄리아 드 변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줄리 아드 CCC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역 대 순장들과 김인혜 간사를 비롯하 여 최승혜, 송란, 김호영, 경운, 송 당선, 김혜연, 허윤정 순장들을 잊 을수 없다.

그 아후로 노래 선교단의 주제는 ‘노래하는 순례자가 되었고 짧은 선교단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공연 때마다 청중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도전을 안겨 주었다. 캐나다 공연시 에는 교회음악의 원로이신 박재훈 목사로부터 ‘하늘의 청순한 노래’요 ‘하나님의 일군들로 쓰시는 놀라운 역사하심’이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 았다.

비전 싱스피레이션 팀

유헌규를 리더로 한 강렬하고 은혜로웠던 “비전싱스프레이션” 팀

미주의 학생들에게 잊어버린 노 래를 찾게 해 주며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이 싱스피레이션팀은 해가 갈수록 날로 감동의 Power를 더 해간다. 초대 인도를 맡았던 윤태 간사에서 이태원 간사로 채혜진 간 사로 이어지면서 우리에게 매해 비 젼대회때마다 새로운 찬양을 주고 새로운 도전을 준다. 이미 5대를 지 나면서 선배들은 뿔뿔이 흩어져 봉 사하지 만 꾸준히 남아서 후원을 맡 고 계시는 최성태 간사와 채종욱 회장의 사랑 담긴 헌신은 우리들에 게 힘을 얻게하는 감동을 주고 있 다.

콜럼바아에서의 무힐혁명,

비젼FineArt선교단 FIT/Parsons 뉴욕 문화의 증심지 NYU

콜럼비아 대학에서의 CCC미주 사역은 1983년 강용원 간사님에 의 해 10여명의 순모임으로 시작되었 댜  87년 비젼을 마친 어느 여름날 저녁 당시 캠퍼스 책임자로 있던 본인과 홍종안 간사(서울대 교수)를 이들이 찾아와 앞으로의 비젼올 이 야기하며 이제는 자신들이 주역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87년도 의 그 사건을 콜럼비아에서는 무혈 혁명이라고 부른다, 그 이후 콜럼비 아 CCC는 비젼87에서 뜻을 세운 7 인의 Columbian의 노력과 기도에의해 이제는 100여명이 넘는 전체 목요모임과 10여개의 순모임으로자랐댜 현재는 김광수 간사(코넬의대 교수), 검성욱간사, 한정민간사가 책임간사로 맡고 있다,

전문인 협동간사 오른쪽 하버드의대 김광수박사 서울대 홍종인박사 캠퍼스를 담당하여 후진 제자들을 양육하였다.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와 Parsons는 cccu] 주사역 의 홍보물을 담당하는 특별기 관과 같은 순들이다 Fine Art라는 특이 성 때문예 전도하기가 쉽지 않지만 순수한 마음들이 하나둘씩 모여 주 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공부한다. 티 셔츠, 포스터, 브로슈어동의 디자인 을 이슈있게 만들어 내는 이들에게 서 이 제 는 VISION Fine Art Mission모임이 만들어졌다.

1982년 20여명으로 시작했던 NYU(New York University) CCC 는 강용원간사님과 이학권목사(당 시 학생)의 진한 사랑과 뉴욕 문화 의 중심지인 SOHO와 Village문화 에 젖은 이들을 한명 한명 돌이켜 예수 문화를 그들의 마음에 심은 곳이다. 현재 박종아간사, 문정선 간사, 이정하간사가 맡고 있다.

지금은 온 미주에 여러 대학에서 순모임 이 태동하고 있다. 이 번 봄에 는 파란 싹들이 전미주 캠퍼스를 수놓았으면 좋겠다.

현재의 CCC 미주사역

현 미주 사역은 무엇보다도 24시간 연쇄기도가 바탕이 되어 매 월 모이는 간사 기도회, 여름동안 비 전대회를 위해 매주 모이는 비젼준 비기도회의 기도사역이 있고 월간 지 인 Frontline, 기 도보고서 및 각 캠퍼스별 Newsletter동의 문서사역 이 있다. 훈련사역으로는 1년에 두차례씩 가지는 순장수련회, 간사훈련 및 각 캠퍼스별 순장훈련들이있다.

현재 미주사역은 25명의 전임간 사가 캠퍼스 현장의 프론트라인에 서서 일하고 있고 210명의 협동간 사가 이 일을 돕고 있다. 전임간사 로 지원한 180명이 다음 세대를 위 해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매주 52 개 캠퍼스에서 순모임들이 모이고 있다.

강순영간사(미주CCC사역 총무) 를 중심한 서부지역 CCC사역은 L.A.평신도사역, 샌프란시스코의 김의겸간사가 이끄는 골든게이트 프 로젝트, 토론토의 지재호 간사 사역, 시카고에 자리잡고 있는 강학수간사, 워싱톤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김호성 간사가 있다. 필라델피아의 사론 차간사는 매년 여름 해외단기선교를 맡고 있으며, 시애틀의 황학성간사, 국제본부의  최향숙간사,  도미니카의 최재민간사등 지역 특성에 맞은 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이제 아 지역 사역을 PowerLink로 집약된 힘을 모아 가야할 때가 온 것 같다

확산된 비전운동의 결정체 -비젼2000세계대회I996-

비젼93을 맺으면서 비젼94는 비 젼95의 도약을 위한 준비를 위해 지역별로 ‘리더쉽’으로 모인다.  지난 해 IO월말 CCC 국제본부 Con­ference Center에 서 열 린 비 젼 전 략 협의에서 14개 지역에서 비젼94를 준비하기로 했다. 올 여름은 14곳에 서 일어나는 비젼의 뜨거운 열풍으 로 후끈거리는 해가 되겠다. 1996년 에 비젼은 이제 차원을 달리할 것 이다 곳곳에서 도화선처 럼 타 들어 오는 불씨들이 한곳에 모이면서 예 수의 핵반응이 Explosion을 가져올 것이다. 전 미주뿐 아니라 세계의홑어져 있는 한인 학생들과 또한 각 나라 및 종족별 학생 대표들을 초청하여 세계적인 강사들과 정계 룰 비롯한 각 계층의 전문 지도자 들을 강사로 초청 하여 모이 게 된다. 북미주의 한 가운데 콜로라도 CSU 에 1996년 6월을 기해 활짝 열릴 이 운동은 먼저 미국을 깨우고 세계를 깨우는 영적 대각성운동으로계획을 수립했다. 미주 CCC사역은5,000명의 학생 지도자들이 모여 세계 캠퍼스 예수혁명운동의 횃불이되는 이 운동에 준비위원장으로 김춘근 교수와 사무총장으로 이춘호 간사에게 위촉 진행중이다.

비전대회 주강사 김준곤목사

그동안 미주 CCC사역은 교회 훈 련 97차례, 목회자 훈련 10여차례, 그 리고 평신도 제자학교, 12기에 걸 친 순장수련회, 4기의 간사훈련동 발돋움을 위한 기초 준비를 다져왔 댜  이제 이 운동은 2천년까지 전미 주지 역 복음화를 위 해 3,700개 캠 퍼 스에 500명 의 전 임 간사와 10,000명 의 순장, 2,000명 의 전문분야별 협 동간사를 세우는 목표를 이루기 위 한 구체적인 실천전략이다.

미주CCC사역은 초창기부터 원용 진간사 (PrePress One, Inc 사장)의 전문적 인 전산화 작업 의 헌신으로 사역 시스템을 완전 전산화했다. 이 제는 전미주와 세계의 ·크리스챤 자 원과 자료를 수집, 정리, 보관하는 RIIM(Resources Information Institute Management)를 개 설 하고 최 혜 산간사, 오현란간사, 오병 탁간사 (Atlan Tech 사장)가 맡고 있 다.

또한 작년부터 특수사역 전담 간 사로 사역을 시작한 최혜산 간사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다목적 연수프 로그램은 언어연수, 신앙연수, 세계 로 향한 눈을 열어주는 대학생 연 수작전을 펴고 있다. 

이제 미주 캠퍼스 사역은 벌써 4 년 대학과정의 3번 물갈아를 하면서 성숙되고 자라왔다. 그동안 비젼 을 통해 자란 2세 리더쉽이 캠퍼스 의 사역 현장에 서 있다. 신앙의 승 법번식이 이제는 지도력의 승법번 석을 본다 이제부터의 일이 지금까 지 뛰어온 일보다 더 중요하다. 무서 운 인간성 의 복합화와 가속화되 어 변모하는 문화생활이 예수의 필 요성에 대한 절박한 마음을 채찍질 한댜 미주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 는 우리의 2세들이 가진 고독의 몸 부림과 단말마의 아우성온 주를 향 한 사랑의 몸부림과 찬양으로 바꾸 어져야 한다. 그들이 우리의 사역의 바톤을 받을 자들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의 매듭위에 서 있다.

젊은 열기로 가득차고 감동과 은혜가 넘쳐 터진 생명의 환희를 경험한 생명 잔치

 두개의 굵은 밧줄이 연결되어 당기면 당길 수록 밀착되는 그러한 매듭이 필요 하다이제 쓰기 시작한 이 글을 맺으 면서 여기까지 이를 수 있도록 기 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신 후원 동 역자 모든 분들의 은혜를 잊을 수 없댜

글/ 이 춘호 (미주CCC전임간사 비젼2000운동 상임위원장, 현 특수사역 목사) **편집자주: 필자 이춘호 간사는 서울 대를 거쳐 콜럼비아대 박사학위중 강용원간사와 더불어 미주CCC의 초창기 핵심멤 버로 활약, 당시 전임간사로 비젼운동 을 전개하고 있으며, 특히 2세로 넘어가 는 리더쉽의 길목에서 1.5세의 중추적 주역을 맡고 있다

필자: 이춘호 목사 주강사 김준곤목사

인터넷 세상 살기

[강용원 편지] 

               인터넷 세상 살기

이제 위성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며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구촌 어느 구석에서도 별을 보듯이 하나의 메시지 안으로 들어 올 수 있게 되었다.

지구의 게시판이 인터넷으로 인해 현실화 된 것이다. 안방에 앉아서 별이 되어 지구 이 구석 저 구석을 뒤지 며 누비고 살게 되었다. 폐쇄된 자기공간이 무한 우주로 열려진 것이다.

세계는 이제 열려진 안방이 되었다. 이제 와서도 아직도 나만의 세계, 민족, 내나라 만의 것들만 추구하고 있다면 창피하고 추한 꼴을 만천하에 스스로가 폭로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인간에게 누구나 전기성 자계가 있고, 우주공간도 하나의 전자자계 역학으로 균형을 잡고 있다. 지구는 원래 남극과 북극이 하나의 자석이다. 이 자계 안에 전자 자계의 영향권 안에 하나의 자석으로 생체리듬과, 생각을 창출 하는 뇌의 작용도 그 영향권 안에 있다.

우리 모두가 이 전기 자계성 분위기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것들을 손으로 만 지며 살게 된 세상이 된 것이다.

영의 세계가 보이지 않지만 믿음으로 그것을 보는 듯 살고, 믿음으로 그것을 경험하며 살던 것이, 보이지 않지만 모든 물질 구조 속에 영향을 주고 거기 있었던 전자자계속의 인간환경을 손으로 만지며 살도록 그것을 입증시켜 주고 있다. 이제 바야흐로 지구촌 전체가 전기에 감전된 감응현상이 지배하는 전자계 영향권 안에 들어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 뿐이다.

우리의 2세들은 이 세계에 이미 익숙해 있고 그것이 생활화 되어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서운 종말론적 묵시의 시점에 와있다는 느낌도 든다. 책상 위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어디든지 가서 가져올 수 있는 저들에게 가장 먼저 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매체가 돈벌이 상품화 퇴폐 음란물로 도배 하고 있다.

우리의 다음세대는 지금 우주 무한 공간 속에 살고 있다. 저들에게 가장 매력 있는 이 매체를 통해 예수 생명이 전달해야 만 하는 것이 오늘 우리들에게 새로운 과제로 대두 되어 있다.

이 인터넷 매체를 통해, 자칫 한발을 잘못 디디면, 은하우주 블랙홀로 빠져 버리고 말 것 같은 저들에게 길을, 영원한 생명을 그리고 참이신 예수를 더욱 힘 있게 전해 주어야 하겠다. 알파와 오메가가 예수인 것을 분명하게 전 해 주어야 하겠다.

저들의 눈을 예수에게 고정시켜 참 비전을 보여 주어야만 하겠다. CyberSpace(사이버 공간)에서 길을 잃고 있는 우주적 고아 신세가 되지 않게 도와주어야만 하겠다. 우리 앞에 새로 전개된 이 영적전쟁에 최첨단 무기이고 마지막 수단이 될 인터넷 전쟁에서 우리는 이겨야 한다. 이를 통해 땅 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하나님 나라가 이제 한 울타리 안에서, 한 가족으로 사는 예수 공동체가 되도록 해야만 하겠다.

세계 시민으로 네티즌으로, 우주적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만 하겠다.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 하지만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인터넷 예수 공간을 만들어 온 세계에 게시판 속에 뛰어 들었다. 이 게시판을 통해 예수계시를 보는 비전이 저들에게 우리들에게 더욱 선명해 지기를 바란다. 이 좋은 수단으로 지상명령 성취의 지름길이 되기를 소원한다.

글.강용원: CCC편지 초대 편집장, 미국CBS 방송국 근무, 미주KCCC 초대 대표, 칼럼니스트

2021 성탄 년말 감사인사

Mitch-Miller-The-Gang-Auld-Lang-Syne
                                   2021 
                              한해도 갑니다.

지난 한해도 함께 하시고

사랑으로 격려해 주신것에 감사드립니다

성탄에 많은 은혜 받으셔서

새해는 더욱 활기 넘치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라고 기원합니다.

강용원 편지








마지막 남은 칼렌다 한장

강용원편지

“칼렌다 인생, 인생(人生) 칼렌다.”

-시간이라는 비밀 속에는 “희망”이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사람들에게 신(神)이 보장한 “약속”(約束)이 있다.-

마지막 걸린 2021년 12월 칼렌다를 본다.

마지막 달린 잎새처럼 이제 한 장밖에 남지 않는 피곤해진 12월의 달력과 함께 2021년도 그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고 있다. 아직 붙어 있는 한 장 밖에 남지 않는 칼렌다 속으로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이름의  또 “불확실한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특히 올해 2021년 12월 칼렌다는 마지막 남은 한 장을 붙잡고 무엇인가 미안해 서 있는 듯 고달프고 외롭게도 보인다.   

칼렌다에도 없었던 코로나 역병 예고없이 밀어닥친 무례함을 탓하고 있는듯 붉어진 얼굴 마져 감추고 싶은듯. 한인생의 삶과 나라전체 세계를 혼란의 소용도리 속으로 질서를 흔들어 앞뒤 좌우 높고 낮음을 뒤죽박죽을 해 놓고 무수한 생명마저 거두어가고 있는 책임이 제게 있기나 한듯 괴로운 몸부림치며 메달려 있는 것도 같다.

지나간 사계풍상(四季風霜)을 힘겹게 버틴 듯 늦가을 들 녘 허허로운 벌판에 팔 벌린 허수아비와 함께 그래도 무엇인가 미련스러워 붙잡으려는 아쉬움도 보인다. 떨어져 버린 낙엽을 모아 불태워 버린 못다 태운 그리움도 아롱진다. 2021년 12월 칼렌다를 보면서 지난 한해 칼렌다와 함께 살아온 내 인생을 보고 있는 달이다.

나는 칼렌다를 모으고 여기 저기 눈가는 곳에 걸어 놓는 것이 취미 중 하나가 되었다. 요즈음에는 시계가 흔해 시계를 모으는 것도 취미다. 움직이고 있는 초침을 보면서 걸어 논 칼렌다 속으로 아침에 눈뜨면 들어갔다 잠들 때 나온다. 사계절 풍경화, 세계의 명승지, 동물주제, 꽃주제, 성지주제, 명산주제 등등 갖가지 칼렌다가 나대로의 어떤 자유를 풍성하게 가꾸어 주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서 긴 여행에 실증이 난 나에게는 칼렌다는 더 없는 여행가이드가 되어준다. 달마다 바뀌는 칼렌다 그림이나 사진을 따라 여행을 할 수 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성지 예루살렘도 가보고, 히말랴 높은 에베레스트 산도 오른다. 스위스와 유럽의 아름다운 도심 속을 헤매다가 라인강가 셀즈버그에 들려 모짜르뜨의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진한 커피 한잔을 마시기도 한다.

그달 그날 칼렌다 속에서 돌아가는 시계초침으로 하루를 짠다. 한 바늘 두 바늘로 수놓은 퀼트 이불도 만들기도 하고, 비단 무명 삼베 옷감을 짜기도 한다. 칼렌다가 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어디에 있고, 시계가 있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 줄을 알 수 있다. 우리 중에 아무도 무작정 왔다가 무작정 살다가 무작정 죽기로 하고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시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정된 인간 수명이 있다. 심판의 예수재림시간이 초를 재고 기다리고 있다.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은 시간을 사랑으로 바꿔 놓고 있다. 탈렌트를 종들에게 맡겨 놓고 타국으로 잠시 떠난 주인이 돌아 올 시간을 계산하고 있고, 시간을 놓쳐 버린 다섯 처녀의 후회의 시간이 있다. 성경은 태초시간에 종말시간 계시록 사이에 내가 속히 오리라 라는 약속응답으로 결론 짖고 있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아직은 우리에게 비밀이다. 다만 “시간을 아끼라 때가 악하다”명령과, “날 계수하는 지혜를 얻게 하옵소서” 하나님만을 위해 바쁘게만 살고 간 모세의 기도가 있다. 세상이 악하니 현실적 시간도 악하기만 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러나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으로서 신앙인들 마저 문제 속의 문제로 들어 가야하는 참여는 외면하고, 걸핏하면 종말적 파국현상을 예언된 성취로 꺼꾸로 세상을 혼미케 하는, 악성 종말 신앙 현실도피 광신은 경계해야 하겠다.

잘살았던 잘못 살았던 한해 달력은  가고있다. 그러나 마지막 걸린 2021년 12월의 칼렌다를 다시 한번 보면서 저 암담했던 50년 60년 대에 우리의 상처를 대신 카타르시스 해 주었던 “과거를 묻지 마세요” 의 라애심의 하소연이 다시 한번 위로를 주고있다. 잘못산  과거는 묻지 말기로 하자. 

시간은 신(神)과의 약속(約束)의 비밀 속에 희망이 되기도 하고 절망과 파멸이 되기도 한다. 신(神)과의 약속파기(約束破棄)는 시간파기(時間破棄)다.

그리스신화에 판도라(Pandora)상자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류 최초의 여성이라는 판도라가 시집을 갈 때, 제우스(Zeus)로부터 보물상자를 선물로 받았다. 열어보아서는 안 된다는 주의와 약속을 받았지만 호기심에 못 이겨 살그머니 그 뚜껑을 열자, 모든 보물이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약속을 파기한 인간의 불신에 재앙을 상징한 것이다. 놀라서 황급히 뚜껑을 닫자 겨우 꼭 한 가지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희망’이라는 것이었다.

시간은 비밀이다. 판도라 상자속에 겨우 갇혀 있는 “희망”이라는 비밀시간이다. 그래도 잃어버리지 말고 붙잡고 있어야 할 ‘희망’이라는 2022년 새로 걸릴 칼렌다를 기다리고 있다.

원래 칼렌다란 말은 라틴어에서 계산한다는 의미에서 금전출납부를 의미했다. 옛날 로마에서는 금전의 대차를 매달 첫날에 청산하는 풍속이 있어서, 결국 금전의 출납부가 달력을 의미하는 말로 전용돼 쓰이게 되었다. 칼렌다 따라 흘러 세상을 살아주는 칼렌다 인생이기 보다, 내 인생의 칼렌다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인생 칼렌다를 만들면서 내 인생의 금전출납부에 레지스트리를 시간의 초침으로 계산해 보아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새롭게 2022년 새 칼렌다를 다시 걸자. 그렇다. 시간이라는 비밀 속에는 “희망”이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 신(神)이 보장한 “약속”(約束)이 있다.

남아 있는 한 장의 12월 칼렌다 안에서, 그래도 우리는 ‘잃은 것을 세지 말고 남아 있는 것을 세라’는 격언을 따라, 남아 있는 ‘희망’이라는 시간의 비밀을 간직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싶다. 걸려 있는 칼렌다는 인생 칼렌다의 날마다 헤아리는 수지계산서다.

글.강용원

인생,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

-한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달, 한해 한번 쯤은 내 존재의 제로점에서서 감사와 반성과 각오를 새롭게 다짐하는 시간이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글을 게재합니다.

어느 성직자, 목사의 인간적인 부르짖음의 애타는 절규를 함께 나눕니다.

“하얀 박꽃, 소복(素服)입고 피고 지는 흰 구름 하늘 위에…. 향기 나는 추억 속에 샘물처럼 솟아나는 그리움을 안고…”.”

—딸의 죽음,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

“5천만의 속에 편의 CD 메시지를 새겨 드리고 싶습니다.” 

(고 김준곤 목사님의 <딸의 죽음, 존재의 제로점에서>.의 CD를 다시 읽으며, 

이 한해의 인생사색(人生思索)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드립니다.) 

하얀 박꽃, 소복(素服)입고 피고 지는 흰 구름 하늘 위에 이 한 편의 CD를 들어 보십시오. 

계획하는 일마다 원하는 뜻대로 너무도 쉽게 잘 풀려가고 있을 때, 너무도 행복해져, 행복의 정상에 취해 있을 때, 인간의 본연의 제로점에 서서 자신과 인생을 미리 보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 이 한 편의 CD를 꼭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한 인생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 두 번 돌이켜 살 수 없는 생애에, 누구에게나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거칠고 바쁜 삶에 지쳐 감정이 메마를 때, 느낌마저 숨을 쉬지 않을 때, 전 생애를 바쳐 사랑과 생명, 비전의 메시지로 우리 세대를 깨우고 있는, 삶의 의미가 희미해져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김준곤 목사님의 부드러우면서 날카롭고, 섬세한 필치로 인생이 목 마를 때, 실패하고 낙심 속에 있을 때, 

고백처럼, 통곡처럼 나와 하나님, 생명과 그리스도, 죽음과 영원에 대하여 심한 좌절로 죽고 싶을 만큼 외롭고 고독할 때, 

목사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간이면서 성직자로서, 병실에서 두렵고 초조할 때, 

그리고 한 가족의 아버지로서, 절절한 눈물로 적셔 쓴 생명언어의 대화, 이 한 편의 CD를 들어 보십시오. 

눈에 확실하게 보이고 손에 잡히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모든 일이 너무도 잘 되고, 

고난을 서로의 것으로 나눌 줄 알고, 예수 생명 사랑을 함께 전하는 마음이 굳어져 철판을 깔고 살 때, 

귀한 분에게 꼭 드리고 싶은 한 편의 CD입니다. 부드럽고 고운 심장까지 시멘트 콘크리트 돌이 되어버린 마음에도, 들으신 후에 그리스도를 전하고 싶으신 친구들께도 들려 주시기 바랍니다. 녹이 슬어버린 마음에도, 

사람이면 누구나 가야 하는 인생의 마지막에 생명의 소중함을, 하늘 끝까지 교만이 치솟았을 때도, 

미리 알고 사는 후회 없는 예지(銳智)를 서로 함께 얻으면 좋겠습니다. 겸손한 인간의 제 모습으로 돌아오도록 이 한 편의 CD를 꼭 들어 보십시오. 

1998년 9월 | 박꽃처럼 하얗게만 살고 간, 

김신희 간사를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향기 나는 추억 속에 샘물처럼 솟아나는 그리움을 안고…. 

전 한국대학생선교회 미주사역 대표 강용원 드림. 

청중을 향해 표호하듯 예수멧세지를 전하던 고 김준곤 목사의 이런 슬픈 모습은 본적이 없었다.

김준곤목사님의 딸의 죽음에 대한 애끓은 사랑의 고백

내 딸 신희는 만29세를 일기로 세 살과 다섯 살 난 두 딸과 남편을 남겨놓고 주님의 부름을 받아 1982년 4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어쩌다 늦게사 발견되어 1981년 12월 10일 S병원에서 개복수술을 받은 때는 이미 말기 위암이어서 집도의의 말에 따르면, 그냥 덮어 버릴까 하다가 수술을 했는데, 위와 비장 전부를 몽땅 잘라내고 간장 일부와 췌장 일부까지 절제해버리고 소장 일부를 잘라서 대용 위를 만들었다고 한다.

수술이 끝나고 난 뒤 집도의는, 수술 자체는 성공적이지만 5,6개월 이상 생존하지 못할 것이라 했다. 생존 가능성이 있느냐고 했더니 10만분의 일, 100만부의 일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뒤 병리검사 결과 전이는 없다고 들었을 때에 우리 가족은 집도의의 말을 전적으로 의심했다. 그렇게 죽을 것을 확신하면서, 산 사람도 그 만큼 자르면 죽기 쉽다는데 구태여 그런 범위로 꼭 잘라야 했던가 하는 것이 못내 한이 되었다.

회복실에서 입원실로 옮겨진 신희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으며, 코에는 호스를 끼고, 세 개의 주사바늘을 꽂고 있었으며, 요도에도 호수를 끼고 있었다. 어느 책에선가 대학병원은 환자들이 생체실험의 희생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읽은 적이 있는데, 마치 신희의 모습은 실험실 속의 이간 같아 보였다.

위암4기의 극한 고통

신희는 가냘프고 순하고 얼굴도 곱고 공부도 잘하고 마음과 성품은 더 고와서 나무랄 데가 없는 아이였다.

30년을 키웠지만 없는 것처럼 조용하고 저만치 호젓이 미안하게 태어나 사는 아이처럼, 태어난 지 3개월만에 광마(狂馬)처럼 뛰는 털털이 만원버스를 타고 네 시간을 가는 동안 많은 사람은 멀미를하고 아우성인데도 신희는 쌕쌕거리며 예쁘게 잠을 잤던 고마운 기억이 있으며, 하루 종일 나와 내 아내가 학교에 갔다가 돌아왔을 때 집보는 아이가 신희를 입술이 마를 정도로 굶겨놔도 울질 않아서 젖을 못 얻어먹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걱정을 안끼치려고 그런건지 아무리 아파도 꾹 참아버리는 그 성격이 암을 4기가 될 때까지 참아버리게 한 것이다.

수술한 날로부터 167일 동안 다른 암환자들은 단속적(斷續的)으로 통증이 온다는데 신희는 끊임없이 육체의 극한 고통을 받다가 갔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신희는 수술받은 직후부터 어느 간호원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암인 것을 부모님이 모르게 할 수 없는지 걱정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도 신희는 끝내 자신의 병명에 대해서 한 마디도 말을 안하고 모르는 척했다.

끊임없이 토하고 국물만 먹어도 장이 유착되는데다 장 전면에 퍼진 암 때문에 장기능 마비가 되어 아무리 관장을 해도 보름씩 변이 차고, 가스가 차고, 나중에는 복수가 차서 배가 터질 것 같은 팽만감에다 간 장애로 호흡 곤란까지 겹쳤으며, 다리뼈가 쑤시고 아팠을 것이다. 집에 있을 때, 깊은 밤이 되면 식구들에게 방해가 안되도록 텅 빈 응접실에 혼자 몰래 나와서 그 무서운 복통을 참느라고 몸을 비틀며 울면서 신음하던 것을 밤마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오랜 투병 기간 동안 밤이면 혼자 울어 눈이 부었는데도 누구보다 먼저 세수했으며 식구들이 보는 데서는 결코 울지 않았고 너무나 태연했다. 문병온 사람들이 울어도 신희는 일부러 태연했다.

우선 변을 좀 빼내기 위해 전주 예수병원에서 장 수술을 받았는데, 최후의 한 달 동안은 인공으로 만든 위 밑에 생긴 유착 때문에 쓸개즙과 위액을 위로만 토해내어 물마시는 일조차 영원히 문을 닫아야 했으며, 장을 꺼내서 만든 항문조차 별 의미가 없게 되어 항문도 영원히 문을 닫은 셈이다.

목밑의 어깨 쪽에다 주사를 꽂고 심장에 직접 주입하는 영양주사만으로 연명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보충 주사를 맞기 위해 간호원이 주사 바늘을 들고 혈관을 찾느라 열 번, 스무번 바늘을 찔렀다 뺐다 해야 했다. 신희는 본래 약하기는 했지만 잔병치레 없이 건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복부에만은 다섯 번씩이나 수술을 받았으니 난도질을 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맹장 수술, 분만 때 받은 두 번의 재왕 수술, 그리고 위암 수술, 또 한번의 장 수술이 그것이다.

체중이 26kg까지 내려간 자기 몸을 만져보고 상처와 주사바늘, 코에 꽂은 호스, 복수를 뽑기 위해 호스를 꽂아놓은 배를 만져보고는, “엄마, 내 몰골이 말이 아니지?” 하며 쓸쓸한 웃음을 짓는 것을 볼 때, 가슴이 꽉 메어왔다.

거절당한 기도

신희의 가장 큰 아픔은 어린 두 딸의 문제였다. 장마에 햇빛나듯 30분만 아픔이 멎으면 햇빛나는 창가 의자에 앉아 두 아이를 안고, 엄마가 나으면 동물원도 가고 식당도 가자고 숱한 약속을 하면서 속으로는 눈물을 참으려고 혀를 깨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신희가 눈물을 안보이려고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모른다. 잊어비리려고 그랬는지, 우리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그랬는지, 특히 두 아이 이야기를 일체 함구해버렸다.

어느 날 오후에는 꿈을 꾸었는지 “수연아 ”(둘째 딸 이름)하고 부르는 것을 듣고 옆에 있는 엄마가. “신희야, 왜 그러니?” 했더니 “아니.”하고 패해버리는 것이었다. 또 어느 날은 옆에 있는 엄마에게 “엄마, 아이들 보고 싶지 안어?”하고 물어왔다. “아이들 보고 싶으면 데려올까?”했더니, “아니.”하고 또 피해버리더란다.얼마나 못잊어 보고 싶은 아이들이었을까? 신희가 두 딸을 예뻐하며 키운 정성은 유별났었다.

전주 예수병원 병실에서 내다보이는 4월의 개나리꽃 동산은 아름다웠다. 그날 오후 신희는 한 시간쯤 특별히 기분이 좋아 있었다. 그때 윤희가 와서 산에 갔던 이야기며 재미나는 이야기로 꽃을 피웠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갑자기 대학 시절을 회생했는지 기분이 좋아져서 일어나 않더니 내 손목을 갑자기 꼭 붙잡고는“아빠, 나 살고 싶어요. 살 길이 없을까요?” 하는 것이다.

신희의 여명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씰 박사에게서 선고받고 나는 신희의 신앙을 준비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터라 이때다 싶어 말을 꺼냈다.“신희야, 너 주님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네 남편과 두 딸에게는 남길 말도 녹음해둬야 하겠다. 네 딸들의 양육은 조금도 염려마라.”

“아빠, 고마워요. 사실은 진작부터 그 일을 부탁드리고 싶었지만 미안해서 말씀 못드렸어요. 내게는 죽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다만 주님을 위해 별로 한 일이 없는 것이 걱정일 뿐이에요. 그런데 고통이 무서워요.” 우리가 그날 기도회를 가질 때 신희는 성령충만하여 빛나는 얼굴로 영감에 찬 기도를 드렸다. 구구절절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주님, 만일 다시 살 기회를 한 번 더 주신다면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주님이 잘 아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어떤 잔도 감사하고 찬송하며 마시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싶습니다. 내 고통과 눈물이 기도가 되고 찬송이 되게 해주십시오. 고통의 잔은 감당할 힘이 없사오니 주님이 책임지고 감당케 해주십시오.”

신희의 최대의 공포는 참을 수 없는 극한 고통이었다. 진통제들의 잘 듣지 않아 몰핀을 써야 하는데 말기 암환자에게는 몰핀도 듣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아 의사들은 최후까지 몰핀 쓰는 일에 인색하여 많은 암환자들이 죽기 전 일 주일 정도는 거의 광란 상태로 들어간다고 한다.

신희가 고통을 참는 것을 보면, 이마에 식은 땀이 배고 두 발과 두 손목을 비틀고 온 몸을 비틀며 주님을 부른다. 나중에는 신희는 누워서 기도하고 나와 내 아내는 끊임없이 신희의 손목을 잡고 신음 같은 기도를 했다.

신희가 토할 때마다 나는 내 죄를 창자까지 토했고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주님과 신희를 번갈아 부르며 숨쉬듯 기도했으나, 내 생애의 가장 애절한 기도는 무참히 거절당했다.

피묻은 고백

어느 날 나와 내 아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순종과 수락을 결심하면서부터 지각에 뛰어난 평강이 왔다. 모세의 40년 간의 기도는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인데, 하나님은 느보산 꼭대기에서 요단 건너 땅을 바라만 보게 하시고, “너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거절을 모세는 생애 최후의 선물로 받았다. 바울에게도 세 번의 가시를 제거해달라는 기도가 거절되었다. 작은 겟세마네에서 나의 잔은 피보다 쓰다. 주님은 나의 가장 소중하고 소중한 것을 기어이 빼앗아가 버렸다.

나는 그 주님의 뺏는 손보다 다른 손에 준비한 것을 보아야 한다. 신희를 빼앗아간 다른 손에 준비된 영원한 소망이 전보다 총천연색으로 보인다. 주님의 절대 사랑과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하는 힘을 주실 것에 대한 신뢰와 신앙을 나는 다시 확인해야 하는 과제 앞에 서게 되었다. 아비된 자로서 열두 번 신희를 대신하고 싶었지만 고통과 죽음만은 대신할 수 없는 것, 오직 주님만이 신희를 대신할 수 있다.

신희와 신희 남편과 나와 내 아내는 그렇게 기도했다. “주여, 기도할 힘도 없고 믿음도 심지어 꺼져갑니다. 감사와 찬송을 악마가 빼앗아고 있습니다. 살 힘도, 죽을 힘도 없습니다. 병과 싸우고 고통을 참을 힘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 시련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대신 책임져주십시오. 물 속에서 건지듯이 불속에서 건지듯이 당신이 성령으로 내 대신 기도해주시고, 믿게도 해주시고, 감사도 찬송도 주십시오, 나는 이미 죽었고 내게 사는 것은 주님뿐이며 당신의 죽음으로 죽음을 죽였사오니 나와 죽음과 상관없게 하소서. 신희의 전폭을 대신해주십시오. 사는 것도 주님이고, 죽는 것도 주님입니다. 이 싸움은 당신의 싸움입니다. 이 죽음은 당신의 죽음입니다.”

교환된 삶, 산 제사를 드리는 삶의 비결을 우리는 소유했다. 십자가만 바라보는 절규, 주님의 절대사랑을 신뢰하고 뿌리째 송두리째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주시는 전천후 전인구원을 확신하는 이 피묻은 고백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성령이 하신 것이다. 인간의 종말에서 하나님은 시작하고 우리는 거꾸로 사는 영점 이하 수의 가산(加算)을 살아야 했다. 주님은 살아계셨다. 주님은 사랑이었다. 주님은 약속을 지키는 신실한 분이다.

내 딸이기 이전에 주님 딸이다. 내가 사랑하기 보다 주님이 더 사랑하신다. 그래서 주님은 신희가 이 세상에서보다 천국에서 더 필요하셔서 더 좋은 곳으로 최선의 것을 예비하시고 높이 쓰시려고 특별 고통 코스로 특별 연단을 시켜 특별히 불러가신 것이다. 그런 주님을 나는 죽음만큼 진실되고 순수하게 찬송한다. 신희의 끊임없는 기도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께 영광 돌리고 주님을 찬송하게 하소서.”였다.

꽃 속에 잠드는 봄나비같이 엄마나 아빠가 기도만 하면 엄마 품에 쌕쌕 자는 아가같이 신희는 극한 고통을 받다가도, 우리가 기도만 하면 주님 품에서 쌕쌕 평안히 잠드는 것이 너무도 인상적이고 역력했다.존재조차도 정지된 제로점에서 신희의 평생 기도는 시집 식구들의 복음화였는데, 지금은 시집 식구 의 4촌 6촌들까지 모두 예수를 믿게 되었다. 신희는 그의 죽음으로 주께 영광돌리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병원마다 신희는 모범 환자로 소문났고, 그의 장례식 때 참석했던 내사위의 두 후배는 그날 장례식을 보고 예수 믿기로 작정했다고 들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신희는 협동간사를 포함해서 30년 간의 C.C.C. 간사 가운데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 처음 죽는 케이스다. 아빠가 하는 일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존경하며 아빠를 가장 사랑했던 내 딸. 그리고 깨끗하고 곱게 생기고 그리고 가냘픈 내 딸이 그리고 가혹한 고통 속에 죽어야 했던 이유는 주님만이 알고 계신다. 나는 그 잔을 감사하게 마셔야 한다.

주님만이 대속해주시지만 신희는 어느 높은 별 아래 태어나 분명히 누군가의 고통과 질병과 죄와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간 속죄양같이, 한 알의 밀알같이 제물이 된 것 같다. 나와 내 가족의 죄와 고통과 질병과 죽음을 대신한 딸, 지금은 고통과 슬픔이 끝나고 찬란하고 황홀한 곁에서 천사들과 뭇성도들의 찬송 속에서 안식과 희락과 사랑과 행복을 누리고 있을 신희, 나도 후일에 생명이 끝나고 주님 품에서 깨어날 때, 네가 가장 먼저 꽃다발을 가지고 나를 환영나오겠지…

세상 떠나기 전 날, 신희는 쌕쌕 잠든 상태에 있다가 식구들 하나하나에게 그리고 맑게 평화스런 눈동자로 미소를 지으면서 반갑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같이 기도할 수 있겠니?”하면, “주여…..”하고는 언어 장애를 알리느라고 손가락으로 입과 머리 부분을 가리키며 잘 안돌아간다는 신호를 했다.

죽던 날 아침 8시에 내가 가서 기도해주시고 아내도 신희도 잠시 잠든 것 같아서 병실 문을 나오려고 하는데 신희가 손을 들고 “아빠, 아빠.”부르더니 “기도,기도.”두 마디를 외쳤다. 내가 붙잡고 기도했더니 신희는 다시 잠이 들었다.

마음을 놓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간호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곧바로 달려가 보니 신희가 숨을 거두고 있었다.

신희는 죽었다. 아내가 신희의 눈을 감겨주었다. 의사와 간호원들이 들어와산소 호스와 목에다 심장으로 꽂은 주사바늘을 빼냈다.

나는 그 방에서 모두들 나가주기를 청했다. 신희와 단 둘이만 있고 싶었다. 그의 고통은 끝났다. 우선 그것만으로도 내게 터질 것만 같은 고통의 태엽이 한 가닥 축 풀리는 것 같았다. 그는 신부처럼 주님 품에 안겼을까, 어린 딸로 안겼을까, 나와 자신의 사체(死體)를 바라보고 있을까…

꼭 붙잡고 있는 신희의 손목이 서서히 굳어지며 차가와지고 있음을 느낀다. 종이장같이 마르고 창백한 얼굴은 분명 태풍이 지나간뒤의 호수같이 잔잔하다. 지상의 산 사람 얼굴 중에 이토록 성스럽고 가난한 여인의 얼굴이 있을까? 신희는 세상에 살기 위해 온 여인이 아니었다. 그는 세상 일에 너무 어두웠다. 욕심이 없었다. 환상의 여인이었다. 시간이 흐른다. 나는 언어도, 행동도, 존재조차도 정지된 어떤 제로점에 선 것이다.(Be nothing, do nothing, say nothing). 십자가 상의 주님을 쳐다본다. 가시관 밑으로 피가 빗물처럼 줄줄 흐르고 있다.

침묵과 침묵, 주님의 제로와 나의 제로, 주님의 고통과 내 고통, 주님의 죽음과 내 죽음과 신희의 죽음이 만나고 있는 것일까? 나의 언어, 행동, 생각, 존재조차 정지된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뒤에 생각해냈는데 나는 주님이 섭섭했던 것이다. 그리고 가냘픈 아이에게 그리고 가혹한 고통을…..‘주여….’하고 부를 힘이 없었던 것이다.

이윽고 내게는 한 기적이 일어났다. 깊고 깊은 존재의 밑바닥, 주님이 뚫어버린 지하에서 지하수가 솟듯이 세미한 음성으로 한 찬송이 터지고 있었다. 찬송의 영이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분명 내 찬송이 아니다. 내 속의 성령이 내대신 부른 찬송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살아계셨다. 그 때 그곳에도 나와 함께 나 위에 계셨다. 성령의 대송이다.

세상 욕심을 묻어비린곳

신희를 유해실에 맡기고 돌아오며 나와 아내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 한다. 뭐라고 설명을 할 것인가? 엄마의 죽음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리다. 더욱이 쇼크와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은 생명의 본능으로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풀이 죽어 있다. 항상 누군가가 병원에서 엄마를 지켰는데 모두 돌아온 것을 보고 엄마는 어디 두고 다 와버렸는가 묻는다.

“엄마가 너무 아파서 예수님이 데려가셨어.”

“어디로 데려갔지?”

“하늘나라로 데려가셨단다.”

어떻게 올라갔어? 줄을 내려 올려갔어?”

그 말에 답을 안했다.

“그럼, 언제 다시 데리고 오시지?”

“이담에 너희들이 크면 예수님이 오실 때 데리고 오신단다.”

정하는 친구에게. “우리 엄마는 하늘나라에 가셨다.”고 말한다. 수연이는 구름위를 날마다 멍하니 쳐다본다. 다시는 ‘엄마’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는다. 영원히 되돌아 올 수 없는 엄마, 불러도 대답 없는 엄마를 두 아이 가슴에 상처없이 신앙으로 승화시켜 부활처럼 되살리기에는 두 아이는 너무 어리고, 우리는 너무도 무지하다. 이사를 갔다. 엄마에게 새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렸느냐고 수연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다. 수연이를 슬그머니 안은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수연이 머리 위로 뚝 뚤어져 흐르는 것을 본다.

신희가 간 지 며칠 후,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긴 편지였다. “목사님, 저는 신희 언니가 키워주었답니다. 신희 언니가 Y여대간사로 있을 때, 저는 언니를 통해서 주님을 알게 되었고, 개인육성을 받다가 집안 사정으로 그 학교 약대 3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게 되었는데, 작별인사를 했더니 내일 한 번 더 만나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 신희 언니는 두툼한 봉투를 주면서 내게는 필요 없는 돈이니 허물말고 등록금과 학비에 쓰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약사가 되었고 믿음좋은 의사와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한다. 그 부부는 나와 내 아내를 만나, “언니는 지상의 사람이 아니었어요. 천상의 여인이었어요.” 라고 했다. 젊어서 못다 살고간 여인에 대한 추모와 동정도 있겠지만, 수많은 그의 친구들과 제자들에게서 나는 신희에 대한 비슷한 인상을 받는다. 내 속된 세상 욕심을 95%쯤 내세적 소망으로 꽉 채워주고 간 신희는, 주님이 더 사랑해서 더 필요해서 더 좋은 곳으로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데려가셨으니 더욱 찬송하기만 할 뿐이다. 

공동묘지 길이 언덕밑 귀퉁이 땅에 신희처럼 미안하게 자리잡고 ‘고 김신희의 묘’라고 쓴 동그랗고 작은 무덤이 하나 있다. 나의 세상 욕심도 묻어버린 곳이다.  

– (영원한 첫사랑과 생명언어:13-24)

– 김준곤목사 (한국대학생 선교회총재)


딸의 죽음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

“신희는 세상에 살기 위해 온 여인이 아니었다. … 침묵과 침묵, 주님의 제로와 나의 제로, 주님의 고통과 내 고통, 주님의 죽음과 내 죽음과 신희의 죽음이 만나고 있는 것일까? 나의 언어, 행동, 생각, 존재조차 정지된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뒤에 생각해냈는데 나는 주님이 섭섭했던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저자인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재 김준곤 목사가 눈물로 써 내려간 신간 ‘딸의 죽음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순출판사)의 일부분이다.

1997년 작은 소책자로, 1998년에는 음반으로 만들어져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책이 새로운 디자인의 단행본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책은 김준곤 목사가 첫째딸 김신희 씨(이대 불문과 졸업)의 위암 투병과정에서 경험한, 주님을 향한 자서전적 신앙 고백 에세이.

불치병인 암으로 싸늘이 식어가는 딸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던, 어떠한 위로도, 기도도 그 공백을 채워줄 수 없었던 아버지로서의 아프고, 섭섭한 속내를 저자는 가감없이 토해 내고 있다.

존재조차도 정지해버린 인생의 ‘제로점’에 맞닥뜨리고서야 비로소 신앙의 상승곡선을 그리는 것임을 저자는 딸의 죽음과 주님의 죽음의 일체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고통의 문제는 그리스도인에겐 정체성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고난, 예수님의 죽음, 예수님의 배반당하심. 고난의 지점에 섰을 때에만 비로소 살아오기 때문이다. 1997년 작은 소책자로 발간됐을 때, 여성잡지 Queen에서 이같은 내용을 기사로 연재, 장안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올린 사진들은 <뉴스파워>에서 제공받았습니다.

문명충돌-종교테러 아이러니

문명충돌, 종교테러 아이러니

“미국은 그래도 미국이다”

-9.11 테러 20년 전 회상하며 그 날 기록했던 옛칼럼을 다시 본다-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아침 8시 45분, 9월로 접어든 뉴욕의 가을 아침 하늘은 맑고 푸르고 청명하게 열린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나는 자동차를 정비를 위해 카 서비스 센터에 차를 맡기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켜 놓은 CNN 방송을 보고 있었다. 아침마다 출근 길 교통상황을 신속하게 보여주기 위해 다섯 대가 넘는 헬기가 뉴욕 주변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 일상적이다.

그저 그런 뉴스를 전하던 앵커의 목소리가 황급한 목소리로 “Oh, my God, Twin Building(World Trade Center, 이하 WTC)에 여객기가 충돌했다.”고 외쳤다. 단순한 여객기 사고인 줄로만 알고 망연히 일손을 멈추고 모여든 직원들이 TV를 보고 있는데 21분 후에 낮게 뜬 여객기 또 한 대가 날아드는가 했더니 그대로 두 번째 빌딩을 관통하고 이어 불길과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폭발음이 나고, 110층 건물 밖으로 파편과 함께 사람들이 뛰어내리는 모습도 보였다. 모두가 말을 잃고 넋 나간 듯이 불길에 쌓인 두 빌딩을 응시하고 있는데, 10개의 TV 송신탑과 수많은 통신 네트워크의 송신탑이 있는 제 1빌딩이 주저앉듯 녹아, 재를 뿌리며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제 2의 빌딩도 주저앉고 말았다.

세계무역의 센터이자 뉴욕의 명물로, 지친 여행에서 비행기로 자동차로 오다 가장 먼저 은빛 두 빌딩이 보이기 시작하면 피로가 풀리며 안도감을 주던 뉴욕의 등대가 사라져버렸다. 뉴욕에 친구가 방문하면 가장 먼저 데려가 꼭대기에서 석양의 조명 받은 뉴욕 시가를 환상처럼 보여주던 곳이다.

조금 후에 여객기 두 대가 추락하고, 워싱턴의 펜타곤이 불타고 있었다.

2001년 9월 11일은 미국의 역사에서 최악의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이어 부시 대통령의 담화로 보스턴 발 아메리칸 민간항공과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이 이슬람계 아랍인에 하이잭킹 당해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한 자살테러였다는 것이 공식 확인되었다.

최첨단 공법과 5만 명이 세계를 울고 웃게 하고, 수재들의 두뇌회전이 세계의 부의 행방을 결정짓는 곳이었다.허탈하고 분하고 어이없이 당한 이번 사태로 한동안 일손이 잡히질 않고 머리가 텅 비어 나간 공동과 무거운 침묵 외에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다만 무서운 것이 사람이고, 무서운 것이 적대감이라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국의 심장에 칼을 맞은 아픔과 자존심의 훼손과 다시는 보이지 않는 은빛 등대 빌딩에 치밀어 오르는 자괴감을 어찌할 수 없다. 만약 미국이 이대로 무너져버린다면 세계의 운명은 어디로 갈 것인가.

내가 미국 땅에 발을 붙일 때 완공되어 세워진 이 건물은 30년 가까이 내게 뉴욕에 사는 Pride 중의 하나였다. 나는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누가 뭐래도 자유와 정의와 인권이 미국만큼 분명한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생명을 던져 세계질서와 평화를 위해 버팀돌이 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때로 실패가 많았을지라도 미국은 세계질서의 경찰국이다. 미국을 가장 증오한 국가들은 공산 국가였으나, 지금은 공산 국가들이 미국으로 인해 새로운 희망을 안고 부활하고 있다. 미국을 파괴하고 싶은 나라는 이제 회교국이 되었다. 칼과 코란으로 세계를 휘둘고 싶은데 미국 때문에 마음대로 못하고 있는 나라들이 이슬람 아랍계 종족이다. 현재 이슬람교도 수는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12억을 맴돌고 있다. 이슬람이 미국을 증오하는 가장 명백한 이유 중 하나는 기독교로 세워진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전쟁은 문명의 바탕전쟁, 종교전쟁이 되고마는 것이다. 예수와 모하메드의 싸움이다. 부시의 전쟁 선포 메시지에 시편 23편을 인용하면서, 테러행위를 ‘Evil Act’로 천명한 것은 영적인 전쟁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미국은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한 사람의 인권을 귀하게, 한 사람의 권리를 끝까지 지켜주고 찾아주는 나라다. 인명을 위해 첨단 장비를 총동원해 부서진 잔해를 일주일 이상 한 조각 두 조각 수작업을 하며 헤쳐내고 있다. 줄리아니 뉴욕시장과 파타키 주지사는 아예 Police 제복으로 갈아입고 선두에 서서 지휘하며 시간마다 기자회견을 통해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해외 신문들이 ‘응징보복 신중론’을 논하지 않아도 미국은 침착성과 이성을 잃지 않고 있다. 광고 커머셜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상업성이 강한 미국의 모든 언론 매체들은 광고 없이 일주 이상 24시간 한 사람의 인명구조 뉴스로 고정시켜 놓고 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조금 안일했던 미국을 미국답게 깨워주는 테러경고였다.

흔히들 뉴욕커들은 120여 종족이 모여 사는 인종혼합 도시로서 차갑고 무정하고 이기적인 도시인들로 알려져 있으나, 이번 사태를 보면서 뉴욕 사람들이 진정으로 무엇이 귀한지를 알고,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해 보여 주고 있다. 헌혈줄이 끊어질 줄 모르고, 자원봉사자들이 너무 많아 질서 유지상 중단된 상태다.

집집마다 성조기를 걸었다. 미국의 자유수호를 위한 자원 군입대가 넘치고 있다. ‘테러 응징이라면 전면전도 불사한다.’고 한 국민 여론이 94퍼센트를 넘고 있다. 미국은 다시 제정신으로, 싸워야 할 본연의 적의 타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했다. 안일한 이슬람에 대한 분명한 타깃을 본 것이다. 이제 Ground Zero는 자살테러를 성전(聖戰)으로 추앙하는 ‘악령의 테러’인 것이다. 눈에 보이는 WTC ‘은빛 등대’는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미국의 자유와 정의의 스피릿은 잿가루를 쓰고도 자유의 등불을 하늘 높이 들고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으로 더욱 그 불빛을 밝게 비추고 있다.

테러로 무참히 숨진 사람들의 무고한 희생을 기도하며,

“Freedom Is Not Free.”

글.강용원

가을에 피는꽃 -코스모스

“가을에 피는꽃 코스모스”

“가을에 피는 꽃- 코스모스”

올해도 제철에 제자리에 곱게 핀 코스모스를 보며 떠나온 우리한국의 가을 산하가 그리워진다.-

– 마무리를 곱게 하는 코스모스의 아름다움 –

“오매, 단풍 들것네.!” 시집갈 나이 찬 동네 처녀가 물을 길러 아침에 일어나 앞산에 변해진 나뭇잎을 보고 저도 몰래 한숨처럼 스며 나온 말이다. 올해도 나이만 먹고 지나가는 철을 보고 님 못 찾고 넘어가는 철이 아쉬운 것이다.

가을은 생각에 따라 변하는 계절이다. 느낌에 따라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달라진다. 기쁨을 품고 맞으면 풍요로운 황금 들판이 되고, 슬픔을 안고 맞으면 임종을 앞에 두고 둘러앉아 오열하는 이별의 계절이다.

가을은 생명을 아끼는 사람들의 즐거운 방황이다. 가녋어진 햇살로 감싸오는 따스함에 시(詩)가 없이는 오히려 허전해 지는 감촉이 인다. 고독을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일수 있다. 싸늘해진 가을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흐트러진 마음가짐을 바로 잡는 가을이면 좋겠다. 옷장에서 새로 꺼낸 철 바뀐 옷에 나프타린 냄새가 풍기는 산뜻함이 문뜩 어머니의 품속의 사랑에 다시 잠겨보는 그리움의 계절이기도 한다.

가을은 한 인생의 거울이다. 물든 단풍, 익은 감, 벌어진 밤송이 속에 내가 지나온 여름 같은 인생을 간추리며 생각들을 사유해 보는 철든 인생의 고독 속에 비쳐오는 자신의 모습이다.

집안 뜰에 코스모스가 제철을 만난 듯 곱게 피어 반기고 있다. 가을에 피어야 하는 운명이라도 타고 난 꽃이다. 코스모스를 보아야 가을이 온 것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코스모스는 가을꽃이다. 가을이면 섭섭해진 어느 한구석이 비어 있는 것 같아, 교외로 집을 옴긴 후 맨 처음 한국토종 코스모스를 뿌렸다. 봄부터 피는 미국산 코스모스도 있지만 아무래도 코스모스는 산들바람이 불면서 높고 맑은 가을 하늘아래서 피어야 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누가 그 이름을 코스모스라 하였던가. 떠나온 고국 땅 어디를 가도 우리의 코스모스는 피어 있다. 산에도 들녘에도 길가에도 돌짝 밭에도 척박한 황토밭에도 연약한 듯 하늘거리지만 강인하게 버티고 피어 있다. 어린 시절 국민학교 교정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가 그리워진다. 코스모스는 그때 여선생님을 생각나게 하고 섬 마을 섬 색씨를 연상하게 하는 아련한 그리움을 품고 있는 꽃이다.

봄철 싹이 틀 때는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이 떡잎 두개가 난다. 아무 곳이나 떨어진 곳이 코스모스 고향이 된다. 돌 틈을 비집고, 아스팔트 틈새에도 떨어진 곳에 뿌리를 내린다. 다른 꽃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제 모습을 뽐내지만 봄도 보내고 여름도 참고 있다 겨울이 오기전 한 생명의 철을 마감하는 시간에 맞추어 활짝 그 모습을 들어낸다. 늦게 피었다는 자책감도 없이 그것을 오히려 당당하게 뽐내는 듯 하늘을 향한 높은 기상이 슬퍼진 가을 하늘을 찌른다. 코스모스 없는 가을을 생각할 수 없다. 코스모스는 어쩌면 우리 민족의 강인하고 끈질긴 성격 같기도 하다.

<울밑에 선 봉선화>의 일제의 운명도 있었고,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저리도 울었나 보다>의 피 맺힌 자유의 해방과 민주화의 탈바꿈이 있었다. 기다렸다가 기다렸다가 오랜 인내 끝에 피어 내는 꽃, 그래서 가는 세월의 마지막을 한껏 아름답고도 당당하게 장식하는 꽃이다.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고, 그 모습을 볼 때 스스로 뽐내는 것 같지도 않는 꽃이다.

늦가을까지 버티는 백일홍도, 따리아도 모든 꽃들이 미리 지고 말지라도 끝까지 버티고 있다가 무서리를 맟고서야 쓰러지는 꽃, 최후를 장식할 줄 아는 꽃이다.

우리 집안 뜰에 코스모스가 있는 행복을 누가 알아 줄 것인가?! 한국토종 코스모스가 우리동네 아스팔트 틈새에 피어 있다. 유대인도 이태리사람도 흑인도 아이러쉬도 이 꽃을 유심히 보고들 간다

온실이 발달하여 사계절 꽃들을 피우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끔 계절의 혼동과 더불어 정서의 혼란까지 몰고 온다. 제철에 떨어진 곳에서 자랑스럽게 계절의 마지막을 피우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오는 세대의 우리민족의 세계화의 도약을 기원하는 가을이다. 그리고 그 꽃처럼 우리들만의 긍지와 오는 세대를 열어 보이는 새로운 비젼도 본다.

모윤숙 씨의 <코스모스와 병사>라는 시구가 생각나는 가을꽃이다. 전선에 나간 병사의 가슴에 코스모스 씨를 한 움큼 넣고 갔다. 그가 조국을 위해 어느 이름 모를 계곡에 죽어 흙이 될지라도 그가 죽은 곳에 코스모스를 피우고 싶은 병사의 마음이었다.

미리 앞당긴 온실문화의 홍수 속에 우리는 지금 혼동의 계절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올해도 제철에 제자리에 곱게 핀 코스모스를 보면서 떠나온 우리한국의 가을 산하를 그리워한다.

삶의 의미를 칡뿌리처럼 씹어보는 가을, 한 인생의 견고해진 가을 고독을 고고한 코스모스 속에 보고 싶다.

글.강용원

에헤라, 친구야

노래.박은옥.정태춘

에헤라 친구야 박꽃을 피우세

초가집 추녀에 박넝쿨 걸고 박꽃을 피우세

에헤라 친구야 안개속을 걸어보세

새벽잠 깨어난 새소리 들으며 안개속을 걸어보세

에헤라 친구야 하늘을 바라보세

맑은 날 새 아침 흰 구름 떠가는 하늘을 바라보세

에헤라 친구야 피리를 불어보세

저 언덕 너머로 양떼를 몰며 피리를 불어보세

에헤라 친구야 노래를 불러보세

해지는 강가에 빨간 노을 보며 노래를 불러보세

에헤라 친구야 창문을 열어보세

까만 하늘 아래 쏟아지는 별빛, 창문을 열어보세

에헤라 친구야 내 꿈은 하늘이라 

거칠은 바다를 포근히 감싸는 내 꿈은 하늘이어라 

에헤라 친구야 내 꿈은 구름이라 

파란 하늘아래 한가로이 떠가는 내 꿈은 구름이어라 

에헤라 친구야 내 꿈은 바람이라 

하늘과 땅사이 뜻대로 오가는 내 꿈은 바람이어라 

에헤라 친구야 내 꿈은 꽃잎이라 

밤새 이슬먹고 햇살에 싱싱한 내 꿈은 꽃잎이어라 

에헤라 친구야 내 꿈은 사람이라 

착하고 해맑은 맘속에 피어난 내꿈은 사람이어라

동네 이발사

– 자신이 하는 일에, 하늘 높은 자부심을 갖자 –

폭우로 오물을 씻어내고, 폭풍으로 탁한 공기를 불어버리고 맑은 공기를 숨쉬게 하는 맑게 열린 푸른 가을이 왔다.

미국은 방학이 끝나고, 전국의 국립공원이 닫히고, 바캉스도 끝나고 노동절로 가을이 시작된다. 잘 놀고 쉬었으면 이제 성실한 노동으로 돌아가라는 절기 메시지다. 해야 하는 노동이 없으면 그 사람의 존재의 가치를 잃는다. 자신의 몫을 감당하는 노동이야 말로 생존의 가치와 의미를 주고 삶의 보람을 안겨 주는 것이다.

만핫탄 고층 아파트에서 13년을 살고, 이곳 뉴욕 시에서 15마일 떨어진 조그만 시골 동네로 거처를 옴 긴지 38년째 접어들었다.

한국으로 말하면 전원형의 작은 마을이다. 인구1만을 헤아리는 작은 마을에 이발소가 서 내가 있다.

나는 성질상 한곳에 가면 한곳만 찾는 성격이어서, 38년째 한 이발소에서 한달에 한번 정도 이발을 한다.

이발소 주인은 이탈리아 사람 두형제다. 마리오 와 루~의 형제다. 그들은 6대째 이곳에서 때어나 하이 스쿨을 마치고 이발소를 개업했다. 30년이 넘도록 이 한곳에서 형제가 오순도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발을 한번 하려면 1시간 반을 보통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다른 이발소는 텅텅 비어 있는데 이 두형제가 하는 이발소는 항상 초만원이다. 아무리 시간이 촉박해도 나도 어쩔 수 없이 1시간 두 시간을 기다렸다가 이발을 한다.

원래 타고난 이탈리아 사람들의 미적 감각 패션 감각은 세계를 휘어잡고 그 상품들은 대부분 명품으로 알아주는 국민이다. 이들은 거대한 중장비 산업보다 섬세성의 인간 감각욕구 충족으로 상품, 질(質) 패션하면 이탈리아 제품이라는 두뇌와 질로 세계의 부를 불러드리는 나라다.

마리오 와 루~형제가 운영하는 이발소에서, 18년째 이발을 하면서 나는 미국의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이들은 도에 지나치게 겉 치래 과잉친절도 없다. 이발소 장비도 현대식도 아니고 쓰는 재료도 미국의 대중들이 쓰는 것들이다.

그런대 왜 이 사람들이 30여년이 넘게 그들의 나이 60을 넘기면서도 동내 이발소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인가?

주(州)에서 자격증을 갖추고 면허증을 걸어 놓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첫째로, 그들은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이발 자체를 봉사로 생각하고 그 일 자체를 즐기고 있다. 물론 미국에는 노동 계급적 차별이 없는 나라다.

둘째로, 그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이발에는 자신이 만만하다. 천하에 이발을 날 만큼 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아라는 자세다. 다른 말로 이발에는 프로펫션날 이다.

셋째로, 그들은 그들의 직업을 위해 태어 난 사람처럼 천직으로 알고 돈 수익에 급급하지도 않는다. 다만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틀어놓은 CNN방송에 가끔 고개를 돌려 주가변동에 눈길을 줄 뿐이다.

넷째로, 그들은 당당하다. 이발업이 그들의 최고의 봉사로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인사들이 와도 굽실거리는 특별서비스도 없다. 해어컷 15분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시간이다.

다섯째로, 이발소에 가면 동네사랑방이다.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신문 각종 취미잡지가 쌓여있지만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다. 동네에서 일어난 사건 하나하나가 주 화제 거리고 여론 형성 장이된다.

여섯째로, 미국은 온 국민이 국가경제의 주인이다. 대기업이서부터 소기업에 이르기 까지 국민 모두가 주인이자 기업인이다. 국민 거의가 주식에 투자 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경제 지수변동에 한 마음으로 걱정하고 관여한다.

‘더블 딥(소위 주식을 빼가는 현상 이중 침체)’까지 걱정 할 시기는 아니다.

이 마을에 유대인이 절반 이태리계가 절반이다. 유대인은 항상 자기네들 끼리끼리 뭉치고 그들의 불이익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가면 벌 떼처럼 모여든다. 지금도 여전히 베니스상인(쉐익스피어작)의 이기적 배타적 이기심을 떨 꾸지 못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는 샤일록이라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가 등장한다. 상인 안토니오는 샤일록에게 기간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그의 살을 일 파운드 떼어 주겠다는 차용증을 써주고 돈을 빌리지만 돈을 갚지 못한다. 법정에 나와 궁둥이 살을 베일지도 모른다는 위기에서, 친구 바사니오의 영리한 처 포사가 살은 가져가도 좋지만 피를 내서는 안 된다는 변론을 하여 결국 위기를 모면하고 샤일록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해피 엔딩을 맞는다.

흔히들 한국인을 동양의 유대인 (The Korean Jew)이라고 악평인지 호평인지 모를 소리를 듣는다. 좋은 면에서는 좋게 들리고 하고 나쁜 면에서는 나쁘게 들린다. 같은 한국인이 잘되는 가게가 있으면 바로 그 앞에다 같은 종목의 한국가게를 열어 서로의 같은 팔을 짜르는 추태를 벌리고 있기도 한다.

지난여름 3년 만에 20여 일간 머물면서 한국시장을 둘러보면서, 또 각종 기업체를 돌아보면서, 또한 도심 속을 헤쳐 드라이브를 하면서 느낀 한국은 이제는 세계적 수준의 서비스 기준을 회복하고 있는 것 같아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고 왔다. 환경미화원에서부터, 택시기사, 음식점 종업원들의 기상이 달라진 것이다. 좁은 땅에 차량 소통질서도 월드컵을 4강으로 치룬 후 국민의식 자부심이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시간당 봉급을 헤아리는 미국과는 달리 한국 근로자는 밤을 세고라도 자신의 일은 해내고 마는 사람들이다.

먹구름 폭풍 폭우지난 이 가을에 자신의 하고 있는 일에 로시니 작곡 경쾌한 세르비아 이발사 오페라가 곁들여 울려 퍼지면 좋겠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지금의 혼란의 정국을 헤치 나서 자신의 성실한 열매를 국민 각자가 보기 바란다. 우리 조곡의 가을 하늘 만큼 맑고도 성큼한 정취가 넘친 나라는 없다.

얼굴 없는 얼굴 시대

계절의 얼굴, 봄 철쭉
-천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 생긴 대로 살자.-

신록의 오월은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나무마다 제 모습을 찾는 달이다.

땅속으로 숨어 버렸던 온갖 들풀 들꽃이 ‘나’ 잘났다고 활개를 펴는 제 모습의 정체성을 찾는 축제의 달이기도 하다.

-5월은 두견을 울게 하고 꾀꼬리를 미치게 하는 달. 더러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한 탈선도 하게 하지 않는가. 《김영랑 金永郞/두견과 종다리》-

제 계절에 제 모습을 확실하게 들어 내 주는 오월을 맞으면서, 변해진 세태에 잃어버린 사람들의 자기 모습을 찾아야 하겠다는 각성을 새롭게 하고 있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내 얼굴 맞아?’ 자신도 모르게 변모해 버린 자기 모습의 상실에 대해, 오월도 신록 이 푸른 계절에 제 모습대로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시대 따라 사라져 버린 인성본래의 제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최근 세계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WSJ紙]는 한국여성 “광적 성형수술” 대대적으로 보도특집을 내었다. 강남에만 성형수술병원이 1천 개가 넘고 어느 여성은 5천만 원을 드려 수술을 했지만 아직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한다. 외모도 국가경쟁력인 듯 외모지상주의 파렴치(破廉恥)에 빨려 들어가는 세태가 안타깝다. 외모의 아름다움을 누가 탓 할 수 있을까마는, 나의 모습은 내가 선택해서도 나를 나은 부모도 어찌 할 수 없었던 세상 언어로 운명적인 것이 아닌가. 내 기질, 내 성격, 내 재능도 나의 선택과는 의논도 없이 태어난 것이다. 한때 마이클 잭슨이 검은 피부를 벗겨내고 희게 하여 수백만 달러를 들여 수술하였다. 후유증으로 몇 년을 잠적해 버린 일이 있었다. 검은 피부가 희게 되었다고 그가 백인으로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획일성보다 다양성의 조화에서 미의 극치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상상으로 만일 어느 날 아침에 깨어나 보니 온 세상 사람들이 한 얼굴로 모두 미남미녀로 변해 있다면 무서운 혼란이 올 것이다. 다행히도 조물주는 사람을 하나도 같은 사람이 없게 하나한 특이하게 만들어 주었다.

몇 년 전 북만주 여행길에 서울과 동경거리를 보며 여고생 또래의 여자들의 얼굴이 하나 같이 똑 같이 생긴 것을 보고 놀랜 적이 있다. 세상이 변하니 얼굴도 변한다? 세상은 변해도 내 모습은 영원하다. 잘나지 못한 나의 경우 평생 다른 사람을 부러워 해 본적이 없다. 아무리 내 인생이 거칠고 험했을지라도 다른 사람의 팔자도 부럽지 않았다.

들꽃처럼 생긴 대로 제 모습을 들어내는 신록의 나무들처럼, 생긴 나 자신의 모습에 탄복하고 감사한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하겠다. 제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을 좋은 의미로 되 새겨 보아야 하겠다. 천하의 음식 맛이 한가지다. 봄에 쑥국, 달랭이 무침, 콩나물 취나물 조미료로 떡칠을 해서 본래의 맛을 잃어 버렸다. 인생의 아름다움도 외모의 아름다움도 마음에서 온다. 그 마음의 새로움에서 온다. 모든 사람이 가면무도회의 천의 얼굴을 가지고 변장하고 변태적 화장을, 내면 보다 외면에 치장을 하고 있다. 참된 아름다움과 향기는 내부의 생명에서 나오는 빛이다.

첨단문명의 시대에 얼굴 없는 얼굴들이 판을 치는 곳도 인터넷 독자투고란이다. 차마 눈뜨고 볼 수도 없는 욕설, 사생활 음해공해로 사회를 오히려 병들게 하고 있다. 영국의 첨단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해 놓은 예수의 얼굴이 타임지의 특집 커버에 실렸다. 중동계 테러범의 몽타주 사진 같았다. 아이러니컬하게 실종된 ‘예수’의 현상수배였다. 한국 어느 칼럼에도 ‘예수 없는 한국교회’라는 글이 있었다.

그렇다. 프시케 여신이 주피터를 잃어버리고 밤마다 헤맨 것을 미친병이라고 영어표기로는 사이코시스(Psychosis)다. 나 자신의 미쳐버린 예수 혼의 상실이다. 우리 모두는 예수를 잃어버리고 예수 초상화를 방마다 걸어 놓고 저마다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집집마다 못박아 논 십자가에 이 시대의 실종된 예수는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있다. 마르크스가 본 예수가 다르고, 싸르트르가 본 예수, 렘브란트, 피카소가 그린 예수 모습이 다를 것이다. 류월레스는 벤허의 모습에 예수 얼굴을 담았다.

우리의 모습은 예수 모습이다. 실종된 예수를 찾아 그 형상을 이룰 때까지 우리 모두 얼굴 없는 제 모습으로 천의 가면을 쓰고 외모를 가꾸며 꾸미고 수술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극에 달한 첨단 테크노 오버로드 된 상태다. 비타민 오버로드, 도시문화의 공룡의 신음소리 같은 소음 오버로드, 공기는 숨막히는 중금속, 지하수까지 폐수가 된 수질오염 오버로드, 환락의 스포일 된 오버로드, 종교인 귀족화, 영적 사치성, 제 모습 잃은 ‘할렐루야 모습’이 자고 나면 ‘놀렐루야 모습’으로 둔갑을 해져 있기 마련이다. 야누스 같은 우리의 모습 속에 어느 곳에도 나는 없다. 실종된 ‘예수’는 잃어버린 나의 모습이다. 겉 사람의 모습과 가치는 속 사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성경말씀대로 우리의 겉 사람은 늙고 병들고 쇠잔해 간다 할지라도,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싱싱하고 푸르러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예수의 장성한 형상의 분량’이 날마다 푸르게 내 안에서 성숙되어야 내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예수의 형상을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느냐에 그 사람의 모습과 인간성과 인생의 길이 달라지는데 우리가 당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글/ 순장. 강 용원(미주KCCC대표) Email : ywkang@kccc.org

-예수프론트라인 : 강용원

귀소 본능-늦은 여름 억수비 황토물을 보고…

-22년간 떠나온 한국을 다녀와서-  

귀뚜라미 소리가 더욱 처량하게 들려지고, 온갖 풀벌레들이 한 여름을 아쉬워 하는 구슬픈 노래들로 가을 숲속이 가득하다. 하늘이 높아지고 키큰 코스모스대열이 산들 바람에 하늘거리면서 떠나는 계절을 맴돌고 있다. 무엇인지 아쉬워지고, 무엇인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떠나온 고향도, 친구도 생각 나는 가을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지가 22년째 접어들고 있는데, 기약도 없이 떠나온 한국을 12 년만에 나갔다가 왔고, 다시 10년째, 바쁘게 한국을 1주간 다녀 왔다. 잊혀졌다 할까, 미국물이 들대로 들었다고 할까. 할일을 찾아 바쁘게만 1년에 3만마 일을 달리면서 내게는 새까맣게 잊혀지고 있던 한국이 였다. 미국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한국말도 많이 잊혀져 어즙잖은 표현들이 점잖은 석상에서 튀어 나오고 말땐 남몰래 얼굴을 붉힌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사고구조, 삶의구조,생각 의 틀이 어느정도는 미국식이 어쩔수없이는 되어버린것이 많은것도 사실인것 같았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짙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 하고 스스로 놀라면서, 서울을 향해 망연해 지는 귀소하는 본능을 핏속으로, 가슴으로 저며보는 <가을 그리움>을 오랫만에 가만히 혼자서 누려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올가을 하늘은 유난히도 푸르고 더욱 드높고 맑기만 하다. 언듯언듯 솟구치는 회상의 눈물이 드라이브길에 차창을 가리우면 누가 볼까봐 하늘을 보면 정처없는 흰 구름, 구름나그네, 어디론가 바쁘게 나와 함께 달려주고 있다.

예정에 없는 전화가 한국 김준곤 목사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한국 간사수련회에 강사로 내일 당장 귀국하라는 명령겸 초청이 었다. 그 어른의 성품을 알기에 부산하게 여정을 꾸리고 한국을 갔다. 

천둥산 박달재 계곡에서 CCC전국간사수련회를 끝내고 계곡을 내려 올때 작대 기 같은 장대 소나기가 몇시간 퍼붓더니 계곡마다 물소리, 층진 논밭에서 넘쳐나는 물줄기, 빗속에 흔들리는 달맞이꽂, 산골 지붕에 올라가는 박넝쿨….그리고는 차도를 가로질러 흐르는 흙탕물, 황토물….그 황토물을 보는 순간에 내핏속에서 같이 흘러 터지는 황토같은 그리움이 늦은 여름 억수비로 내가슴을 헤치고 흘러주었다. 억지로 눌러 버린 조국,민족,고향,친척,친구…서울,한국이 봇물 터지듯 터지고 있었다.

지상에 내민족,내조국이 같은말,같은 얼굴들끼리 모여 살수 있는 나라, 그리고 그이름을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한국이 있다는것이 이상스럽게도 여겨지며, 신기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 졌다. 서울로 돌아와 시청앞 숙소에서 서울 야경을 아쉬운듯 밤새워 내려다 보고 흘러간 20여년을 돌이켜 보며 상념같은 깊은 그리움과 한없는 감사로 내땅 내나라 내 민족을 생각해 보았다. 특별한 민족,특별한 나라라는 생각을 어쩔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축복 하시고 계심을, 뜻이 있어 세워주고 계심을 역역하게 느껴 볼수 있다. 이세대에 마지막 하나님 나라 전략수행 일꾼들로 쓰시기 위한 준비를 끝내고 계심을 볼수 있다. 그것을 위한 경제 성장이 그렇고, 그것을 위한 교회 성장이 그렇고, 그것을 위한 국제 위상이 그렇다.그것을 위한 교육열이 그렇고, 그것을 위한 억척 같은 민족성이 그렇다. 좋지 못한것이 많을 지라도…

내게는 따지고 보면 특별하게 고향이랄만 곳이 생각나지 않는다. 일제 수탈후 가난한 한국 농촌에서 나서, 쫒겨가다 시피 간 만주벌판에서 유년시기를 보내고, 해방후 한 많은 두만강을 건내고, 목숨걸고 38선을 넘어 다시 서울에서 내 은사, 스승을 만나 내 의식이 예수로 깨어나 다시 미국 대륙에서 22년째, 그러고 보면 꼭 돌아가야할 고향, 그리워해야 할 뒷동산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지구는 둥근 공 이라서 선곳이 중심이고, 선곳이 세상 끝이고 보면 발붙히고 사는곳이 고향뒷 동산일수 밖에 없고, 요새 같은 세상에 서울-뉴욕이 교통시간으로 보면,옛날 강릉-서울 야간열차 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고 전화가 있고, 팩스가 있고,위성 중계 TV가 있는 세대에 짐짓 돌아 가야 할 고향산천은 꼭 있어야 하는것인지 는 모르겠다. 서울에 차가 많고,한국이 잘살게 되어서가 아니라, 서울가서 고향같은 조국이 사랑으로 되살아 온것은 내게 그리워 할것을 그리워 할줄 알게 한, 한국에서,한국사람으로 주님을 만났던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20년을 꿈속에서 보낸 립반.윙클이 되어 황성 옛터를 돌아온듯,덕수궁 돌담길 도 정겹게 걸어보고(비를맞으며) 옛날 명동 충무로 CCC회관을 찾아 보았다. 전세금이 없어 쫒겨나야 했을때 빚을 얻어 주던 사모님도 생각나고,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후원금이었는데, 김정재사장사무실로, 수도사대 주영하학장 사무실로 헌금받으러 다니던일, 비만 오면 물이차 습기찬 묵정동 굴속 같은 회관, 영락 교회앞에 저동 회관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 내리며 꿈에 부푼 멧세지를 듣고 웃고 울었던 감격의 그때를 그리며, 그때 그사람들을 그리워 한 다.

부모님 묘소에 불효스럽게, 처음으로 낫을 들고 풀을 깎아 드렸다.진분홍 빨간 꽃과 흰국화꽃을 심어드렸다. 내피,내살, 내얼굴, 내언어 한국인임을 그리고 어 디서 나온곳을 확인했다. 그리고 지금 같은 내인생을, 예수로 후회없이 살게 가르쳐준 내삶의 은사, 스승, 김준곤 목사님. 그분이 내게 그리워할 친구 예수를 가르쳐주고, 내 황량했던 마음밭에 그리워할수 있는 나라, 하나님 나라의 꿈을심어주고, 비젼을 내의식 깊이 깊이 일꾸워 주신 그 스승의 사랑과 은혜 가 바로 고향산천 뒷동산에 가득함을 보고 왔다. 

<..초연이 쓸고간 깊은 계곡 양지에 외롭게, 비바람에 스치우며 서있는 이름 모를 비목..그리움 마디마디 이끼되어 서있는 비목..그 옛날 초동 친구 그리워 그리워>.외롭게 서있는 비목같은 선구자, 목사님 모습에 나를 투영하며 다시 한번 그때 그모습을 맑은 하늘에 그려본다. 비구름 걷힌후 들어난 높은산의 위용으로, 풍진 떨치고 돌아온 야전사령관의 당당한 모습으로 더욱 귀하게 더욱 소중한 스승으로 돋보이는 목사님. 그때 누가 감히 민족의 예수 혁명을, 그 때 누가 감히 민족 복음화를, 그때 누가 감히 순의 비젼을 이야기 할수 있었 던가. 훗날 누군가가 교회사를 바로 쓴다면 이 사실을 묵과해서는 안 될것이다. 그때 우리는 분명히 교회사의 4.19같은 민족의 예수혁명을 일으켰었고, 잠든 교회들을 흔들어 깨우며 생태학적인 교회체질개선을 촉구하는, 민족을 복음화 하는 제물이 되었다. 그 젊고 고우시던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의 나라를 위한 300여명의 시련속에 정련된 사랑스런 동역 간사들의 불타는 눈동자들속에 깃들인 비젼속에 내 나라, 내 조국, 내고향이 있는것을 보고 왔다. 1995년 5월 세계선교대회(GCOWEⅡ)를 앞에 놓고, 우리의 비젼은 더 욱 선명해 지고, 우리의 쓰임은 변함이 없는것을 우리는 다시한번 확인하고 일어 섰다. 

코끼리도 죽을때는 난곳을 찾아와 죽고, 거북이도 천년을 살고도 난곳으로 돌아와 죽는다. 제철이되면 기러기도 돌아가고, 제비도 돌아 갈곳을 아는것이 생명본능이라면, 우리생명의 근본과 우리 사랑의식과 비젼이 싹튼곳으로 귀소하는 가을이, 그리워 할것을 그리워할줄 아는 가을이면 좋겠다. 친구야,형제야, 우리에겐 조국이 있다. 우리에겐 자랑스런 내민족 내나라 돌아 갈수 있는 서울 한국이 있다. 

그리고 우리에겐 영원히 사모할나라 영원히돌아갈 참 고향이 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있는 영원한 친구 예수가 있다.

< 언제든 가리,마지막엔 돌아가 살으리. 목화꽃이 고운 내고향으로…> 나 비록 오늘도 나룻배와 행인이 되어 비목의 노래를 부를지라도 가슴 뿌듯이 차오르는 감회가 감사로 이가을 텅빈 하늘에 충만으로 가득하다. The best is yet to come. 그렇게 항상 배우고 살았듯이 믿음의 예언적 미래는 항상 현재완료형이다. 

나의 흘러간 20여년을 되돌아 보며, 40년 광야 생활을 마무리 하며, 가나안 약속의 나라를 바라보며 , 느보산 꼭대기에서 ”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 , 나의 힘 이신 나의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하나님…” 찬송을 불렀을 모세 를 본다. 참으로 실수 없이 좋으신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이 가을 더욱 웨치고 싶다. 

이 가을, 이유 모를 그리움이 복바치는것은, 드는 철과 함께 깊어지는 예수< 철>이 들어 가야 하는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라 증거 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 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 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 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 하셨느니라.”  (히11:13-16 믿음으로 어디서나 산 사람들)       

   1992년 10월 8일  뉴욕의 가을하늘 아래서, 

글. 강 용원

“인간미(人間味)가 인간성(人間性)을 덮는다”

                     <강용원 에세이>      

“인간미(人間味)가 인간성(人間性)을 덮는다”

– 에세이를 쓰면서 생각한다 –

인간미는 인간성에 맛을 더한 말이다.

똑 같은 인간인데 인간미가 있는 인간이 있고 인간미 없는 사람이 있다.

똑 같은 사람인데 사람 맛이 나는 사람있는가 하면 화려한 학벌과 경력이 있는 사람일찌라도 껄껄하게 모래알 앂이는 사람맛이 메말라 빠진 인간도 있다.

만나면 정감이 흐르는 친밀감이 이는 사람이 있고 썰렁한 얼음판 같은 사람도 있다.

인간성이라는 어려운 정의를 내릴수는 없다. 인간성이 본래 악이냐 선이냐는 인류의 시작부터 논란이 된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있다.

             ………………………………………

나는 문단에 정식 데뷔 한 적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글을 써 온지 60여년이 되는것같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느끼고 배워가는 것이 많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인가도 새삼 깨닫는다.

어쩌다가 글을 쓰게 되었는지 어떨 때는 처량해진 자신을 한탄한 적도 있다. 한때는 여기 저기 한 달에 6편의 새 글을 써서 8곳에서 활자로 찍혀 나온 적도 있었다. 국민학교 때부터 여름방학 숙제로 한 일 기 쓰기로 시작을 해, 중고때, 백일장에서 입상해 미제 파커만년필을 상으로 받은 경력밖에는 없는 처지다. 글을 쓰면 쓸수록 어려워지는 것임을 배운다. 

나 자신을 쏙 빼고, 비판적인 글이나, 새로운 지식의 정보에 관련된 글,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해야된다는 글은 하루 내내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포함된 내 인격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옮겨 쓴다는 것은 내 자신을 발가 벗기지 않으면 써 질 수 없다.

특히 “방송에세이”를 쓰면서, <행복만들기>주제에 관련된 글을 쓰자니, 하루에 12번도 변덕을 부리고, 조그마한 일에도 신경이 걸리면, 화장실부터 가야하는 나의 체질에 한 주에 한번 쓰는 엣세이가 1년동안 나를 수련해준 훈련관이었다. 마감시간을 초를 재며 시험을 치르듯 자신을 다지는 시간들이었다. 다른 글과 함께 지난 한해 100여편의 에세이를 쓸수 있었던 것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은 다른 사 람에게 함께 나눌 수 있는 격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써야 하기 때문에, 쓰기 전날부터 마음가짐, 감정관리를 잘하고 있어야만 글다운 글이 되는 것을 안다. 

 글을 쓰는 칼럼형태의 글도 그렇다. 그것도 쓰 고 싶을 때 쓰는 글이 아니라 고정된 마감시간을 앞에 놓고는 더욱 그렇다.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종 중에 하나가 신문기자, 그래서 기자생활을 한 사람의 평균 수명이 가장 짧다고 한다.

인간의 본성을 악(惡)이라고 한 순자의 이론도 있고, 인간의 본성이 선천적으로 선(善)하다는 맹자의 설도 있다. 기독교에는 원죄성이 있고 불가에는 불성이 있다고 한다. 나는 솔직히 어느 학설도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오래전 한국KBS의 좋아하는 인기프로그램 “열린 음악회”를 보았다. 사회정치 어디에나 문제의 현장에 가장 한가운데 앉아 있는 존경하는 김수환추기경이 음악회에 있었다. 음악회에 나온것만으로도 감동을 주었는데, 사회자의 요청으로 독창을 부탁했다. 김추기경은 서슴없이 마이크를 받아 들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애모’라는 유행가를 프로급에 가깝게 불러 주었다. 나는 눈물이 핑돌았다. 

그 노래의 내용에 얽힌 사연도 슬펐지만, 나를 감동케 한 것은 김추기경의 사람같은 인간미의 모습이었다. 카토릭의 신부 그중에서도 로마교황청의 추기경 평민인 우리와 거리가 날수밖에 없는 추기경이다. 그런데 그날 김추기경은 그순간에 옆집 밭을 같이 가는 머슴아저씨같이 가까워짐을 느꼈다. 민생속에서 민생과 함께 애환을 노래 할 줄 아는 김추기경이 더 한층 존경 스러웠다. 강론이 날카로와 강남의 부유층 신자들을 향해 ‘금모으기운동’의 강론이 끝나자 마자 7백50명이 참여 51Kg 가량, 싯가 6억8천여만원이 일시에 모아졌다.

“머리와 입으로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나는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사람같은 고백이었다.

나 자신이 기독교에 입문한 동기는 교리가 아니었다. 한 목사의 따스한 인간미였다. 내 평생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김준곤목사님이 있다. 60년대 초 그때는 외국의 유명한 명작이라야 떳떳이 극장에라도 갈 수 있는 고상한 취미로서의 영화관람 그런 분위기의 상황이었다. 

목사님은 나를 대리고, 허장강, 김승호, 김지미등이 주연으로 나온 한국영화를 함께 대리고 가서 보여주었다. 때때로 당시의 유일한 낭만의 주말여행은 교외선 기차를 타고 백제 송추를 한번 돌고 오는 것이었다. 교외선 아무데서나 내려 시골길 논두렁을 같이 걸으며, 아무 집이나 찾아가 ‘토종닭’을 한 마리 잡아 달라고 해서 농촌향수에 흠뻑 젖어 돌아오기도 했다. 미국에서 초청강사로 만나 호텔 방에서 당신이 즐겨쓰시던 당시에도 지금도 명품 고가인 은장 파카만년필을 손에 쥐어주시던 자상한 스승의 정이었다. 당시도, 지금도 수 십만의 대학생들의 황량한 가슴속에 칼날 같은 메시지를 퍼부어 대던 분이었다. 나는 모든 감화를 그분으로부터 받았지만,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과 내가 매력을 느낀 것은 그분의 사람일수 밖에 없는 사람의 정 인간미 (人間味)였다.

가신지 오래된 고인, 그분이 주셨던 편지들 한구절 한구절에 묻어나는 사람냄새를 다시 맡으며 사람이었기에 느꼈을 외로움과 배신과 세상의 부조리 구조에 함께 묻혀있기도 한다.

때때로 암울한 인간성을 만나고 당할 때마다 나는 나 자 신의 본래 모습으로 환원해 버리고 만 자신을 보면서도, 나의 스승, (그분에게도 결점은 있을지 모른다.) 이 보여준 인간미를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은 풀 수 없는 모순 속에 두 개의 자아, 선성과 악성이 싸우다가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피겨 올림픽을 본다. 가장 잘 미끄러지는 눈과 빙판 위에서, 가장 잘 미끄러지는 신발을 신고, 인간의 총체묘기를 연출해 보이고 있다. 미끄러지기 쉬운 세상 속에 서도 인간성을 다듬은 인간미가 오늘도 내게서 올림픽의 인간발휘처럼, 아름다운 인간미로 피어 나면 좋겠다.

험한 세상 살고, 살벌하기만 인간들의 관계 속에 ‘사이먼과 가핑걸’의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 어…>의 노래가 읖조려지는 시간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인간미가 다리가 되는 세상을 기다려 본다. 그래서, 늑대 이리떼 같은 인간성에게 할퀸 상처도 고운 인간미로 아물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그냥 하고 싶은 작은 이야기를 줄거리 없이 푸념처럼 했을 뿐이다.

글.강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