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넘어가는 석양, 허무의 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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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원 편지-

”해 지는 석양 고아원에 알 수 없는 고아의 울음소리”

– 스승의 달 오월에 생각 나는 교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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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아래 새것은 없다. 그럴지라도 사계(四季)의 5월은 해마다 새롭기만 하다.

논두렁에 어머니 생각 나는 봄 쑥이 솟고, 동무들과 고향이 생각 나는 개나리

철쭉이 피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벚꽃 유채꽃으로 칩칩했던 긴

겨울을 밝혀주는 황홀한 계절이다.

계절의 여왕은 5월, 인생의 여왕은 어머니다. 오월은 축제의 날이 많이 있는 달이다.

“어머니의 달”이고 “어린이의 달” “스승의 달”이다 .

60년대 초는 ‘반공(反共)을 국시’로 삼은 살벌한 군사정권의 계엄령 하에

이데올로기 흑백논리 시대였다.

대학 캠퍼스는 온통 쥐구멍 뚫린 듯 남파 간첩이 포섭할 인재를 찾아 자신도 모르게 용공집단에 명단이 올라 있고 캠퍼스 귀퉁이마다 술렁이는 혼란과 그리고 방황의 시간이었다.

무신론 실존주의 까뮤나 싸르뜨르가 지성을 과시하던 시절, 어디를 가도

“이방인(異邦人)”의 망령이 그림자 처럼 허무의 그림자로 우리

의식을 따라 붙고 있었다.

어두울수록 좋은 침침한 다방 아랫 구석 담배연기 자욱한 음악 감상실이 유일한 쉼터였다. 4.19를 전후한 우리 세대의 피잔한 젊음들의 모습이었다.

바로 그 시점에 CCC의 한국 캠퍼스 사역이 시작되었다.

미국유학에서 방금 돌아온 30대 청년 김준곤 목사님이 고대(高大) 캠퍼스를 시작으로 캠퍼스 예수운동이 시작되었다. 교문을 서성이다 불청객 문전박대로 우득하니 섰다가 돌아서야 하는 좌절, 거부와 혁명적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허우적 거릴때였다. 그때 우리는 혼미(昏迷)와 방랑(放浪)과 자조적 반항의식

의 몽유병(夢遊病) 환자들이었다.

목사님은 저동 회관에서, 충무로 회관에서 묵정동 회관에서 금식하며 준비한

멧세지로 그때 우리들의 허무를 깨우고 있었다. CCC 정기 주일 모임이

시작되었다. 두 번 반복 할 수 없는 그때의 멧세지들을 그때 군용으로 나온 고물 RCA 릴 녹음기를 CCC 켄 크레머 선교사가 미8군에서 얻어와 녹음을

했다. 거의 한번도 거르지 않고 100개가 넘는 릴에 녹음해서, 나대로

가보처럼 철제 캐비넷에 넣고 잠가 보관했다.

71년 12월 8일 도미하면서 목사님께 선물로 드리고 왔다.

그런데 그 태잎들이 몽땅 없어지고 말았다. 아깝다 너무 아까운 한국

기독교사의 유산이 분실되었다. 지금 그때 음성을 다시 들을 수는 없지만

내 심장 속에 녹음된 목사님의 멧세지를 한 가닥씩 꺼내고 있다.

목사님은 당신이 만든 예화를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을 인용하는 것처럼 들려

줄 때가 많았다.

내 인생의 키를 돌려 준 스승의 가르침을 생각한다.

“-해 넘어 가는 노을진 석양 언덕에 고아원이 있었다.

하루해가 저물고 저녁이 되면 어린 고아 하나가 울기 시작한다. 길에

내다 버린 갓 주어온 두 살 백이 고아다.고아원 보모가 달래도 소용이 없다. 배가 고파 그런가 해서 먹을 것을 주어도 울어댄다. 어디가 아픈가 해서 약을 먹여도 울어댄다. 장난감을 주어도 악을 쓰고 울기만 한다. 옷 속에 벌레가 있어 그런가 싶어 새 옷을 갈아 입혀도 울어댄다. 아무도 고아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아무도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울고 있는 고아도 자신이 왜 우는지 모르고 울고 만 있는 것이다. 해가 지는 시간이 지나면 울음을 멈춘다.

나중에 안 사실로 그 시간에 밭을 매고 돌아온 어머니가 가슴에 품고 젖을

먹이는 시간이었다. 나자신도 인간 개인도 인류 전체도 이 고아의 울음을

가지고 있다. -”

자신도 우는 이유를 모르는 울음, 그 누구도 그 울음을 알 수 없고 달랠수 없는 울음들이 심층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나자신의 울음이고, 인류전체의 울음이다. 통곡이고 절규다. 마셔도 목이 타는 갈증같은 목마름이다.

겉으로 웃고 자기만족에 도취되어 있을지라도 이 깊은 울음은 예수를

만날 때까지 자신을 보채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때 나 자신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울음소리와 함께 내 인생의 키를 돌렸다. 울고 있는 고아는 나 자신이고, 울고 있는 거리의 사람들 통곡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로부터 육십 여 년이 흘러 가버린 지금, 나는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예수를 전하고 있다.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나는 주안에 쉴때 까지 참평안이 없었나이다.”파스칼의 고백처럼 “ 내안에는 빈 공백이 있다. 그 공백은 예수만이 채울수 있는 공백이다”

5월, 신록의 계절에 밤하늘 별을 헤며 어머니를 불렀던 윤동주, 밤 기적 소리를 들을 때 울 쩍 솟아 오른 어머니를 생각하며, 후회 없는 인생의 선택을

열어 준 스승을 생각한다. 인간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터전은 어머니다.

그러나 그 터전이 무너져 어머니도 없고 자식도 없는 시대가 되어 간다.

스승이 없어진 지 오래 되었고 조상의 묘를 식칼로 찌르는 폐륜(廢倫)의 세태다.

어머니와 같은 대지(大地)가 마구 중 금속, 방사성 라돈으로 폐허가 되어

가고 있다. 화학비료, 살충제, 문명이라는 이름의 공장폐수가 땅을

죽이고 있다. 신세대로 가장한 탕아들이 부모와 스승의 가슴에 칼질을

하는 것과 같다.

뉴욕 근교에 세계 제1의 쇼핑몰이 세워져 연일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쓰레기 처리장으로 대지를 죽인 자리 방사성 독극물로 사람도 식물도 살수

없는 땅위에 초호화 쇼핑몰을 짓고 그 위에서 인간의 허영을 팔고 산다.

이 시대의 아이러니다.

어머니 상실문화, 글로벌 고아(孤兒)의 탕자 시대로 신문화인(新文化人) 의 시대가 와서는 안될 말이다.

스승의 달에 인류의 스승들 공자, 석가, 소크라테스, 예수와 함께 나의 스승인

김준곤 목사님을 생각한다.

나이가 들기전에는 미쳐몰랐던 소중한것들이 있다. 떠나 버린 인생의 스승 김준곤목사님이 더욱소중하게 생각나는 계절이다.

자연과 모성(母性)과 그 안에 씨로 자란 스승의 가르침이 환경문화의

타락과 세대감각의 오염으로 함께 몰락해서는 안될 일이다. 외로우셨던

삶, 떠나신 후에 더욱 크게 울리는 스승의 교훈이다.

님은 갔어도 울림은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목사님을 곁에서 모셨던 제자 강군. 강용원 올림

글.강용원

우리의 그때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에덴의 동쪽에서 나온 저항과 반항의 동뿌리를  차야 하는 제임스 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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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to ““해넘어가는 석양, 허무의 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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