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生氣)와 활력(活力)과 새로움의 원천(源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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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원 편지]

“생기(生氣)와 활력(活力)과 새로움의 원천(源泉)”

-신록의 오월은 가감승제미적분(加減乘除微積分) 반복 인생의 원점 생기(原點生氣)다.-

사계의 5월은 새롭기만 하다. 일년 열두 달, 사계절이 돌고 있지만 오월은 항상 싱싱한 새로움으로 찾아온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개성 따라 좋아하는 계절이 있을지라도 오월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오월은 여왕의 나들이에 열두 달이 시녀처럼 따라오는 계절의 환희를 불러주는 생명과 생기와 새로움의 절정이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과 속에 권태를 씻어주는 새로움이 없다면 인생처럼 따분한 동물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반복되는 가감승제미적분(加減乘除微積分)의 일과에 지쳐 있고 쳇바퀴 도는 일상에 싫증이 나기 쉬운 환경에 있다.

그러나 오월의 아침은 권태와 싫증의 각질을 깨부수고 날마다 자고 나면 새 세상을 꽃으로 열어 보여주고 있다. 나이와 환경에 따라 사계 중 어느 계절이 좋아지고 싫어지는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오월을 빼버리면 계절이 없어지는 것과 같을 것 같다.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무거운 겨울옷을 벗고 가볍고 시원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쾌함이 있다. 누더기옷을 새옷으로 갈아 입은 산뜻함이 있다.

살아 있다는것은 생명감각이 활발하다는 것과 같은 말일수있다.

생명감각은 호기심(好奇心)을 불러온다. 호기심, 영어의 Curiosity is a desire to know about something. Oxford 사전은 말하고 있다. NASA가 2011년 화성에 관한 호기심을 풀기위해  화성 탐사 로봇을 보냈는데 그 로봇 이름을 “Curiosity” 로 명명 한적이 있다.

호기심과 생명감각은 같은 가로안에 있는 삶의 변수다.

유람에 있는 갓난 아이의 걸어논 작난감을 만지며 자라고, 어른이 되어 자동차나 집같은 것에 흥미와 호기심으로 가지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고 싶은 것은 건강한 생명 호기심이 살아 있기때문이다.

호기심과 흥미에의 감각은 삶의 권태(倦怠)와 지루함의 누적함수관계다.

바위섬 위에 콩크리트와 철근으로 땅바닥을 세멘트로 물샐틈(?)없이 봉창을 한 뉴욕 만핫탄에서 13년을 사는때가 있었다. 그것도 아파트 22층 지표마져 떨어진 공중에서 잘먹고 잘자고 살면서도

한주간을 겨우 참고 있다 주말에는 바베큐준비를 해서 교외 공원으로 나갔다 와야만 했다.

나가지못한 주간에는 코에서 풀냄새 흙냄새가 나고 꿈속에서 보리밭을 돌다 온적이 많았다.

자연과 생명, 흙과 생명감각은 갈증을 느끼게 하는 생명 요구다.

호기심과 흥미를 살려내어 생명 감각을 살려 내어야만 하겠다.

새것을 새것으로 느낄수 있는 생명감각의 재생이 필요한 시간이다.

새순으로 새로움을 상큼하게 안겨준 오월의 신록에 남산의 흐드러진 아카시아 꽃향기가 황사 덮인 잿빛 서울을 맴돌며 새로움을 휘날리고 있다. 그러나 참 새로움의 원천은 인간 마음에서 온다. 새 마음이야 새 날이 새 날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활 절기마다 미국의 방송은 두 개의 영화를 거의 해마다 반복 방영한다. 하나는 모차르트의 ‘아마데우스’이고 다른 하나는 ‘벤허’였다. 아마데우스 테마곡은 ‘진혼곡’이고, ‘벤허’의 테마곡은 ‘사랑의 흐름’이었다. 모차르트의 천재 재능에 살리에르의 시기가 증오로, 증오가 살인으로 변해, 평생을 자신의 장례를 위한 진혼곡을 들으며 미친 폐인으로 지옥 같은 정신 병동에서 죽어가는 살리에르의 지옥 권태의 죽음의 종말이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명화 ‘벤허’는 사랑의 실체이고, 생수의 원천인 청년 예수가 나타날 때마다 ‘사랑의 테마곡’이 향기처럼 흐른다. 벤허는 자기 어머니와 누이를 처형한 친구 ‘맛셀라’를 죽여 원수를 갚아야 하는 증오로 불타 있었다.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당시 천병(天病)으로 알려진 문둥병에 걸려 격리된 동굴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경기에 이기고 원수 멧살라는 죽었지만 그를 용서할 수 없는 벤허였다. 그때 같은 나이의 젊은 청년 예수가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를 흘리며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저들이 알지 못하옵니다”는 말이 벤허의 귀에 박혔다.

벤허는 알지 못하는 힘에 이끌려 평생의 원수 멧살라를 용서하겠다는 기도를 했다. 그때 그 순간 문둥이가 되어버린 어머니 그리고 누이동생의 몸이 깨끗해지면서 새 살이 났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제 나름대로의 의식 속에 시기, 분노, 증오, 원수가 있다. 이런 의식이 우리를 덮치고 있는 한 우리는 환희의 새로움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지쳐 있고 반복적 만성 권태병에 걸려 있다. 권태의 각질에 두껍게 들들이 말려 있다. 새로움을 깨닫지 못하는 삶의 문둥병에 걸려 있다. 예수 사랑이 생명이 될 때에 삶의 문둥병으로부터 치료될 것이다.

들길 방천에 나가 논두렁길을 걸으며 새로 나는 나물과 들꽃을 보며 마음속의 새로움의 원천과 실체를 찾아보면 좋겠다.

글.강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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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to ““생기(生氣)와 활력(活力)과 새로움의 원천(源泉)””

  1. 간사님의 글은 늘 희망과 사명으로 살아 움직이는 계절과 같습니다!
    저도 사월 오월을 벽돌 콘크리트 건물에서 될 수있는대로 빨리 탈출하여 그 나머지 시간을 공원과 야외에서 보냅니다.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섬리와 위대하심을 발견하곤 합니다.
    글을 공유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 우리 은영여사님
      항상 간결하면서 알찬 댓글로 함께 살고 있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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