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생 신앙운동 CCC역사 흐름내역-
역사의 강은 예수를 따라 흐른다.
입석(立石), 그 영원한 예수혁명 진원지
– 입석에서 허드슨강 까지, 오대양 육대주로 흐르는 강 –
물방울 하나 바다를 출렁인다.
60년전 입석(立石)에 떨어진 물방울이 실개천이 되고 시내가 되고, 강을 이루어 심천 미루나무 숲을 감돌고 흘러,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대양의 포구 몽산포에 머믈렀다가 오늘 이 자리 미주 각주에 세계 도처에 누룩처럼 잡초처럼 퍼져 있다. 60년전 7월 경기도 양주군 양수리에 있는 입석(立石)수양관 이었다. 돌이켜 보면, 물방울 하나 절로 떨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의 약속을 믿을 수 밖에 없게 한다. 그리고 그 뜻의 비밀을 사람의 헤아림으로 다 깨달을 수 없다.
1.”생명잔치에의 초대”-최초의 입석수련회
1961년 11월에 초대 서울CCC학생회가 조직되었다. 그 다음해 제1회 CCC 여름수련회가 1962년 7월 23일부터 28일까지 경기도 마석에서 20리 산속, 입석(立石)에서 63명이 모였다. 그때 김준곤 목사님은 30대 청년이었고, 우리는 20대의 대학생들이었다. 그때 수련회 초청문의 제목은 “생명이 부르고 있다” “생명 잔치에의 초대”라고 했다. 제목 그대로 굶주린 우리들의 영 혼에 잔칫집 초대상위에서 배불리 잘도 먹은 생명잔치의 축제 바로 그것이었다. 몇 년을 잘 먹인 후에 “청년이여 환상을 보라”는 표어가 수련회 주제로 우리에게 비전을 구체 화 시켜주는 행동운동의 방향을 주고 있었다.
[생명잔치] 입석 최초의 CCC 여름수양회 1962년 7월23일부터28일까지 63명이 참가했다.
입석(立石)은 그 이름부터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돌이 일어선 곳, 돌이 되어버린 굳은 마음들이 깨져 생명의 합창을 했던 곳이다. 세상이 가만히 있으니 돌들이라도 소리쳐 생명 예수 를 전해야 산다는 생명가락이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해골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된 것과 다를 바 없다.
입석수양관은 그때 당시 감리교재단에서 만든 수양관이다. 양철로 지붕을 덮고 벽도 없이 마른 마루바닥에 빽빽이 앉아야 겨우 500명, 그리고 잔디가 깔린 시골 부자집 마당 같은 운동장이 있었다. 잔디 밭 밑으로 태백산맥 허리에서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고, 개천 옆에 정자하나가 낭만스럽게 옆에 있는 바위 암벽에 올려 있었다. 숙소는 4개 캐빈으로 여학생들이 차지하고 남자 는 강당에서 천막에서 지냈다. 지금 같은 화려한 대형 수양관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래도 우리는 그곳이 천국만큼 좋았다. 새벽이슬 같은 젊음이 모인 곳에 이슬 같은 성령의 역사가 잔잔하게 축축하게 우리를 깨우고 씻어주고 있었다.
어떤 억압과 족쇄로부터 풀림을 받는 자유가 있었고, 좌절로 꽉 막혀 버린 우울에 기쁨과 평화 가 물 흐르듯 했다. 미움과 울분과 분통이 풀리고 잃었던 누이를 찾고 형제를 찾은 만남의 희 열이 있었다. 마지막 날 밤마다 헌신의 밤으로 간증과 찬송으로 밤을 새워야만 했다. 참 이상한 일중 하나는 CCC수련회 마지막 밤은 항상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 졌다. 너무도 터질 듯 뜨 거워진 우리의 열기를 식혀주어야 하는 성령의 세심한 배려 였다. 소나기가 양철지붕을 치는 소리와 고백하지 않고는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우리들에게 소나기소리 보다 큰소리로 우리 는 주님께 우리의 사랑을 고백해야만 했다.
2. 영적 대결의 최전방 야간 백병전
63년부터 전국 수련회로 확대되면서 66년 650명이 수련회는 입석(立石)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이 었다. 그리고 입석수련회의 클라이막스 였다.
참석자 650명중 300명이 믿을 수 없는 예수이유의 독을 품고 온 사람들이었다. 마지막날 밤 이 미 믿게된 사람은 밖에서 기도하게 하고, 김 목사님은 이들을 한 강당에 모이게 했다. 전투복 차림에 마이크는 손에 들렸다. 한 사람 한사람씩 믿을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강하고도 부드럽게 밤을 새워 전쟁을 치루었다. 나는 그때 악령의 발악과 성령의 탄식을 듣고 목격한 사람 중 하 나다. 그 현장을 녹음한 테잎을 찾고 있다. 그것은 전방초소의 야간 백병전을 방불케하는 육박 전이었다. 그들이 변했다. 다음날 아침 떠오르는 밝은 햇살은 어제의 먹구름이 아니었다. 60년 대 수련회는 죽느냐 사느냐의 야전 전쟁터의 격렬한 육박전 바로 그것이었다.
그때 성령의 비상 간섭 강렬하고 칼날 같은 김목사님의 멧세지가 터졌기 때문에 오늘에 이 강 은 흐르고 있다. 이 민족을 특별하게 쓰시고 싶으신 하나님의 바램이 있었음을 이제 더욱 분명 하게 깨닫고 있다.
3. 혁명의 개념을 혁명한 예수혁명운동의 태동
한국의 60년대는 말 그대로 혼란과 혼돈과 궁핍과 좌절로 앞이 보이지 않은 먹구름 속이었다. 해방이 되고 6.25가 터진 폐허의 잿더미를 헤집고 이제 겨우 움막을 친 상태에서, 최루탄과 화 염병으로 4.19가 터지고, 그 다음해 서울의 새벽을 놀라게 한 총성과 더불어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우리 세대는 카뮈의 이방인이 되어 망령 들린 사르트르의 허무족이었다. 캠퍼스는 대 남 공작의 남로당이 쳐 논 그물이 여기저기 걸리게 깔아 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 로 어두운곳을 찾았다. 다방의 어두운 구석, 침침할수록 좋은 음악 감상실이 안식처였다.
그때의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한 김목사님의 표현이 있다. “해 넘어 가는 석양, 허무의 강가에서 허물어진 담장에 기대어 줄 끊어진 키타로 끝없는 G선의 엘레지를 타고 슬픈 만가를 부르고 있었다.” 무신의 실존주의, 공산주의 귀신들이 거미줄처럼 우리의 의식을 옭아매며 시야를 흐리 게 하고 있던 때였다. 이유 없이 돌멩이를 차는 제임스 딘으로 자처하는 반항아들이었다.
4. 영원히 잊지 못할 생명의 메시지
그 당시 서울 CCC회관 집회는 설자리도 없이 굶주린 젊음들에게 생수의 샘터와 같았다. 구름 처럼 모여들었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자신과 민족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김준곤 목사님의 신선한 예수 메시지는 방황하고 헤매는 대학생들 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모여든 우리는 민족을 생각했다. 민족복음화에의 강한 이념성이 태동 하고 있었다. 그때 목사님은 일주간을 금식하며 주일모임 멧세지를 준비한 것을 나는 알고 있 다.
예수가 우리의 생명이 되었다. 예수가 우리 민족의 가야 할 길임을 알았다. 예수가 우리의 비전 이 되었고 예수만이 민족을 살릴 비전이 되었다. 우리는 그때 예수에게 만 미쳐버린 것이다. 우리 눈에는 예수만 보였다.
5. 우연은 없다. 그리고 모멘텀의 밀도와 질량이 운동력을 결정한다.
운동의 법칙에 중력이 있고, 관성의 법칙도 있다. 운동량은 질량에 비례하고 질량 에너지는 위치 에너지에 비례하고 위치에너지는 운동 에너지를 가속가증 시킨다. 그때 모였던 피 끓는 젊음들 의 가슴에 예수 운동 에너지를 축적시켜 민족을 예수로 소생시킬 수도 있고, 움직일 수 있는 운동량(모멘텀)을 형성한 기초를 이룬 뜻이 숨겨져 있음을 이제서야 더욱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서서히 예수 이념집단의식이 우리들에게 생기게 되었다.
목사님은 민족복음화를 위해서 수백가지 방법과 수단들을 창조하시고 발명 발전 하셨다.
그러나 나사렛형제들의 창설만큼 전략적이고 지속성있는 수단은 없다.
1968년 8월 경기도 소재 베다니 수양관에서 CCC 졸업생 108명이 모여 나사렛형제들이란 이념적 행동집단이 창설되었다.
한국CCC 는 계속 확장되어 매년 주요도시에 간사들을 파송함으로 전국 주요도시들과 전국의 주요대학들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는 국내에는 41개 도시, 300여 대학에 850명의 전임간사를 파송해 2만여명의 대학생들이 양육받고있다. 해외에 460명의 전임 스탶들을 대학캠퍼스에 파송함으로 해외선교에 큰축을 이루고 있다.
지난 70년 동안 한국CCC를 통해서 양육받은 사람들이 교회목사로, 선교사로, 선교단체 리더로, 대학의 총장과 교수로, 사업계, 의료계, 법조계, 정계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있다. 전 한국의 모든 계층속에 나사렛없는 조직이 없다. 세상을 감염시킬수있는 강렬한 선의의 예수 바이러스들이다.
복음화를 위한 누룩이요 들풀이다. 나사렛 형제들이다.
물방울 하나 떨어져 계곡의 실개천이 되어 흐르고, 실개천이 모여 개울이 되고 이골저골 개울 물이 시내가 되고, 시내들이 모여 흘러 강을 이룬다, 강물은 바다에서 서로 만나 오대양의 물이 된다.
원점의 시작 없는 운동이 있으랴. 물방울 없는 바다가 있으랴. 60년전의 입석(立石)수련회를 보면서, 이제는 오대양 육대주를 가슴에 품고 예수의 혁명의 기치를 다시 한 번 높이 들어 올릴 때가 되었다.
그리고 강렬 한 예수 이념집단이 세계를 예수로 혁명하는 투사들이 지금 바로 여기 모인 우리들인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그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할지라도…
한번 살고가는 세상에서 더 이상의 고귀한 부름은 없다. 그리고 마지막 부름이다.
이제 한국CCC 입석(立石) 60여주년을 맞는다. 새롭게 시작하는 예수혁명의 새로운 진원지가 이제는 세계를 향해서 미주땅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 더 이상 누구를 탓하랴.
나부터 내가 책임 있는 주인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한가지 당부와 부탁은 현제 선두에서 이운동과 비전을 이끌고 있는분들께 행여 자신의 좁은 틀안에 이 위대 했던 스승 김준곤 목사님의 넓고 높은 뜻을 구겨넣지나 않는지 조심하게 생각하기 바란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가 역사의 희생물이 되는것임을 보았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예수가 되지 못하면, 운명의 장난 희생물이 되고 마는것도 보았다.
오늘 여기의 우리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세상에 와서 얻을수있는 최대 최고의 부름과 특권임을 잊어서는 안될줄 안다.
글.강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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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곡은 Unchained Melody 입니다.
깊은 속울음 삼키며 읽어내려갔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 보내주셨던 김준곤 목사님과 불씨들. 존경과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김 목사님의 심장의 고동소리를 글로 옮기셨던 강용원 간사님의 글에서 김 목사님의 숨결을 느낍니다. 강건하소서. 아직 하실 일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