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곤 목사 “나는 민족복음화를 위하여 폭탄같이 불덩어리가 되어 왔습니다” |
한국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가 1976년 동경에서 도미(渡美)한 제자 강용원에게 보낸 서신 |
뉴스파워 |
김철영 |
이 서신은 한국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가 도미(渡美)한 제자 강용원에게 1976년 동경의 한 호텔에서 쓴 서신을 입수했다. 그는 이 서신에서 “나는 민족복음화를 위하여 폭탄같이 불덩어리가 되어 왔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대학생 사역을 기반으로 “민족의 가슴마다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슬로건을 외치며 전력했던 민족복음화에 대한 비전과 헌신 그리고 열정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짐작케 한다. 강용원 간사는 고려대CCC 출신으로 CCC 초기에 김준곤 목사를 도와 사역을 하면서 1964년 1월 27일에 창간한 <CCC편지> 초대 편집장을 역임했다. 강 간사는 1966년 3월 8일 조선호텔에서 열린 제1회 대통령 국가조찬기도회를 윤두혁 총무와 함께 준비를 도맡았다. 이후 1971년 12월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CBS방송국에서 10년 근무 후 미주한국대학생선교회(미주KCCC)를 설립해 초대 대표를 역임했다. 강 간사는 김 목사가 “군”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제자였다. 또한 김 목사는 강 간사의 뛰어난 문장력을 칭찬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이 서신에서 “학생만을 위한 채플을 시작했습니다. 샘터, 용광로, 폭풍의 눈, 무엇일지 모르나 만들어보겠습니다.”고 썼다. 이어 “84명의 대학생들이(대전․공주)집단으로 一周(일주)금식을 했고 우리도 3一間(3일간) 금식을 했습니다. 在美(재미) 형제들도 3一間(3일간)만 이번 여름 금식기도 했으면 싶습니다.”면서도 “그러나 무리는 말아야지요. “고 했다. 특히 이 서신에는 박정희 대통령과의 친분 관계로 인한 “어용목사”라는 시선에 대해서도 토로하고 있다. 김 목사는 “내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어용목사”라는 낙인이 찍혔을 때 ‘주홍글씨’의 女主人(여주인)처럼 수모를 잉태한 채 살기로 결심한 그날부터 나는 강군은 알고 있다고 독백했습니다.“라고 하면서 ”나는 朴大統領(박 대통령)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조국은 사이공 함락 1個月(1개월)이 못되어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라고 썼다. 이어 “사이공에 孟君(맹군)이 들어오는 날 한 女大生(여대생)이 쓴 ‘백기(白旗)’라는 시가 있었습니다. ‘후회라고 쓸까요? 자유라고 쓸까요? 통일이라고 쓸까요? 백기에는 쓸 말이 없습니다.’”라는 시를 인용한 후 “간음한 현장(現場)에 끌려온 여인에게 저마다 돌을 든 독기 서린 무서운 표정들 속에 나는 털이 뜯기우고 상처마다 피가 배고 다리 절며 종로 바닥 아스팔트 위에 소리를 질러보는 한 마리 속죄양 같은 모습이 지금의 나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 CCC 김준곤 목사가 강용원 간사에게 1970년대 동경에서 보낸 편지 ©뉴스파워 김 목사는 또한 자신의 설교를 카세트 녹음해 보내겠다 했다. 당시 미국에 가 있던 CCC 나사렛형제들은 김 목사의 설교테잎을 듣고 또 들으면서 조국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했다. 이 서신에는 강용원 간사의 교회 육성작업을 격려하고 있다. ‘예수의 유일성’,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 ‘성령 충만 받는 방법’, ‘그리스도 안에서 증거하는 방법’, ‘4영리 전도 방법’ 등 ‘지도자 훈련 과정’(LTC)을 교회에서 실시하는 것을 축하한 것이다. 그러면서 “성령 충만도 예수 영접만큼 쉽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동남아 一帶(일대)도 예수의 불이 붙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그 교재들을 보냈다면서. “사람을 뭉치게 하시오. 뭉침의 힘, 모임의 힘, 운동의 힘을 키웁시다.”라고 도전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복음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도전한 것이다. 이러한 챌린지에 힘입어 강 간사가 10년 간 근무했던 미국CBS를 그만두고 한인 대학생사역에 헌신하게 만든 동력이 되었다. 강 간사는 미주한국대학생선교회(미주KCCC) 초대 대표간사를 역임했다. 다음은 서신 전문. 사랑하는 강군 동남아로 다니다가 동경에 들렀습니다. 나의 전존재를 소파에 던져버리고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에게 편지를 씁니다. 전에도 나는 그런 버릇이 있었습니다. 이럴 때의 나는 어느 때보다 인간적이고 성실합니다. 오랜 그리움과 외로움, 고달픔, 서러움 같은 것이 의식의 지하실에서 멍이 들었다가 이런 때는 감각증상으로 나타납니다. 강군의 편지를 이번 여행 중 소중한 문서처럼 품에 지니고 다니다가 다시 펴서 읽고 내 고달픈 센티멘털 애수를 달래기도 합니다. 지금은 半白(반백 ) 50을 넘은 歸路(귀로)의 가을 길에 내 인생고락을 밟고 거닐며 향수처럼 그려보는 시간입니다. 강군과 나만 아는 이야기와 가난과 고통이 있지요 우리는 둘 다 음치였지만 같은 곡조로 부르던 G線上(선상)의 앨리지가 있었지요. 내 눈에 눈물이 고일 때 강군의 눈도 으레 젖어 있었지요. 주님과 조국을 진달래처럼 가난하고 메마른 전라도 황톳길 한하운 씨의 문둥이 문질러 떨어진 발가락 하나 묻어둔 비탈길에 알뜰히 심고 싶은 궁상맞은 못생긴 생각들을 우리는 비전이라고 불렀지요. 강군과 나의 신앙 世界(세계) 속에는 원시의 산야처럼 잡초와 이질의 백화들까지 반발했을 그대로의 우리 나름의 시(詩)였습니다. 누가 맛있는 젓갈을 가져오면 나는 강군을 안 생각한 일이 사실이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내 설교가 은혜롭기보다는 슬펐을 때 저 청중 어느 구석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을 강군의 모습을 비껴간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 김준곤 목사와 강용원 간사 ©뉴스파워 내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어용목사”라는 낙인이 찍혔을 때 “주홍글씨”의 女主人(여주인)처럼 수모를 잉태한 채 살기로 결심한 그날부터 나는 강군은 알고 있다고 독백했습니다. 나는 朴大統領(박 대통령)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조국은 사이공 함락 1個月(1개월)이 못되어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이공에 孟君(맹군)이 들어오는 날 한 女大生(여대생0이 쓴 “백기(白旗)”라는 시가 있었습니다. “후회라고 쓸까요? 자유라고 쓸까요? 통일이라고 쓸까요? 백기에는 쓸 말이 없습니다.” 간음한 현장(現場)에 끌려온 여인에게 저마다 돌을 든 독기 서린 무서운 표정들 속에 나는 털이 뜯기우고 상처마다 피가 배고 다리 절며 종로 바닥 아스팔트 위에 소리를 질러보는 한 마리 속죄양 같은 모습이 지금의 나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나와 강군은 가난했지만 치사한 것이 싫었습니다. 나는 강군이 알다시피 사실은 내 못된 성격 때문에 아내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때로는 아무대도 주소가 없는 떠돌이이기도 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서서 내 영을 외치고 싶습니다. 나는 민족복음화를 위하여 폭탄같이 불덩어리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한국 민족의 망국병은 자기보다 잘하는 일을 찢어 발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운명을 각오해야 합니다. 깊은 고독의 참 의미는 예수님의 골고다 옆에 서보면 알 수 있지요. 강군과 나는 못내 모질고 사특하지는 못했습니다. 강군이 커서 모든 얘기를 하게 됐군요. 내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리고 내게서 내가 세상에서 받은 모든 울분을 모조리 강군에게 퍼부었던 아픔을 받으면서도 강군은 너무도 내게 관대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一生(일생) 강군에게 사랑의 부채자였습니다. 유언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내가 죽으면 강군이 맨 앞에서 내 관을 매주십시오. 미국인의 은혜는 기쁨과 행복과 平安(평안)이었지만 우리들의 은혜는 항상 눈물 속에 있었지요. 강군은 고난과 가난의 바닥까지 알고 있지요. 강군은 나의 나쁜 것까지 닮아 걱정입니다. 돌아가면 고대 앞에 강군의 모교이기도 한 고대 앞에 방을 얻고 나는 개인 전도를 시작할 작정입니다. 학생만을 위한 채플을 시작했습니다. 샘터, 용광로, 폭풍의 눈, 무엇일지 모르나 만들어보겠습니다. 84명의 대학생들이(대전․공주)집단으로 一周(일주)금식을 했고 우리도 3一間(3일간) 금식을 했습니다. 在美(재미) 형제들도 3一間(3일간)만 이번 여름 금식기도 했으면 싶습니다. 그러나 무리는 말아야지요. 카세트 녹음해 보내겠습니다. 일본의 新國肉彈(신국육탄)처럼 성상문, 박팽년 사육신의 충성처럼 열녀춘향의 절개처럼 주님과 조국과 우리들을 위한 뭉침이 50명만 미국서 굳어질 수 없을까요. 기도해보십시오. 강군, 그것이 100명이면 더욱 좋습니다. 생명공동체인데 어찌하여 자라지 못할까요. 헌금운동은 마음을 묶는 귀한 수단이고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약 50%는 한국 나사렛이 담당합니다. 회관을 수익성 사업으로 만들려고 계획 중입니다. 그리되면 외상으로라도 경제자립하고 싶습니다. 강군의 교회 육성 작업을 축하합니다. 성령 충만도 예수 영접만큼 쉽게 해야 합니다. 동남아 一帶(일대)도 예수의 불이 붙고 있습니다. 그 교재들 보냈습니다. 경수는 귀한 사람입니다. 박원배 군도 귀한 사람입니다. 강군, 사람을 뭉치게 하시오. 뭉침의 힘, 모임의 힘, 운동의 힘을 키웁시다. 김준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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